어스시 연대기 - 어슐러 르 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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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인 연대기로 어슐러 르 귄을 만난 후부터 어스시 연대기에 대한 고민이 생겼습니다.

6권, 꽤 많은 분량, 새로운 세계, 판타지, 예상되는 작품의 분위기.

결국 끝나지 않은 헤인 연대기와 함께 번갈아 가며 읽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책을 읽고 난 후 받은 구체적인 느낌과 인상이 괜찮은 단어와 문장들로 표현할 수 있을만큼 분명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끄적였다면 괜찮은 글을 적었다는 건 아닙니다만...

책을 안 보신 분이나 혹시나 읽을 계획이 있는 분들을 위해 가장 중요한 소재가 되는 ○○은 적지 않았습니다.


1. 어스시의 마법사 A Wizard of Earthsea (1968) 296쪽.

작은 마을의 주인공이 두 번에 걸쳐서 심한 이동을 합니다.

검색해서 찾은 영문지도를 출력해서 주인공 '게드'의 여정을 표시한 것이 기억납니다. 등장인물의 여정을 지도와 대조하며 책을 읽은 것은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책 중간쯤 갑자기 튀어나온 '겝베스 Gebbeth'라는 단어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결국 책을 다 읽을 때까지도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원서와 비교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2. 아투안의 무덤 The Tombs of Atuan (1970) 252쪽.

책 뒤에 접힌 어스시 전체 지도가 부록으로 실려 있는 줄도 모르고 또 구글로 검색하고 종이에 출력하고... 그것도 2권을 중간 정도 읽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1권에 비해 지도가 크게 필요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좁은 지역과 장소, 건물 등의 묘사를 머릿속에 그리는 게 힘들었습니다. 아투안의 묘역과 미궁 지도를 괜히 책에 넣어둔게 아니었습니다.

1권의 '게드'가 주인공으로 다시 등장하지만 그보다는 새로 등장한 주인공, 무녀 '테나'가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잡았습니다. 그녀의 모습을 표현할 방법을 못 찾는 제 머리와 손가락이 원망스럽네요. 




3. 머나먼 바닷가 The Farthest Shore (1972) 358쪽.

연대기는 모두 6권까지 있는데 일단 3권으로 잠시 멈췄습니다.

인생의 첫 판타지 소설을 '로도스도 전기'가 아니라 이 책으로 먼저 시작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꽤 여러 번 읽지 않았을까...

'반지의 제왕'처럼 화려하거나 '얼음과 불의 노래' 같은 묵직한 맛은 부족하지만 영웅의 성장과 모험으로 보면 가장 판타지스러운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다른 버전의 '어린 왕자'를 읽은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다 읽은 건 아니지만 또다른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대강 알게 되었습니다.

헤인 연대기의 각 행성들, 서부 해안 연대기, 작가는 새로운 세계와 세계관을 만드는데 정말 탁월합니다.



4. 테하누 Tehanu (1990) 388쪽.

3권까지 읽은 어스시 연대기를 '테하누'로 다시 시작했습니다.

읽기 전부터 작가의 '어둠의 왼손'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이번엔 어떤 여정이 있을까, 어스시 지도를 미리 출력해야 할까...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법은 존재하지만 사용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어스시 세계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이전과 같은 긴 여정과 모험은 없습니다. 그래도 3권의 대단한 여정과 모험의 '결과'를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2권 '아투안의 무덤'의 주인공 '테나'를 다시 만나는 것도, 그리고 세월에 따른 그녀의 변한 삶을 보는 것도 반가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좋았다'나 '괜찮았다'라는 말로 적기에는 부족하고 미안한 느낌이 드는 '테루'라는 아이.

지브리의 '게드전기'를 보지 않았지만 흉터가 있는 소녀의 이미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는 원작의 테루에 한참 부족하지 않았을까, 그 아이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아픔과 고통, 즐거움, 그리고 그런 테루를 바라보고 지키는 테나를 그 작품에서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5. 어스시의 이야기들 Tales from Earthsea (2001) 568쪽.

5편의 중단편. 어스시 연대기를 읽고 있는 사람에게 반갑고 친절한 책입니다.

4권까지 읽으면서 느낀 막연함과 비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을 채워 줍니다.

마지막에는 부록으로 역사와 언어, 문화 등을 포함한 '어스시의 세계관'까지 실려 있습니다.

4권 '테하누'도 그렇지만 이 책에서도 주인공들의 여정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 진사(辰砂)

* 응유 凝乳 curd

* 뒝벌 뒤영벌 bumblebee Hummel (460)



6. 또 다른 바람 The Other Wind (2001) 392쪽


같은 작가의 다른 시리즈가 끝났습니다.

'또 다른 바람'은 '테하누' 2권으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3권 '머나먼 바닷가'의 주인공 '아렌'을 떠올리면 그의 다음 이야기로 봐도 괜찮습니다. 또 5권 '어스시의 이야기들' 중 '잠자리'의 다음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누구 한 명이 주인공이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등장인물 대부분이 존재감 있게 그려집니다.

이렇게 느껴지는 건 인물들의 행적이 이어진다는 점 때문만은 아닙니다. 3권의 마지막 여정과 그 담장 너머의 세계, 2권의 어스시 세계의 대립의 역사, '테하누'와 '잠자리'로부터 등장한 '용'과 인간의 관계 등에 대한 등장인물들을 통한 해설과 요약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3권 '머나먼 바닷가'를 다시 제대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듭니다.


헤인 연대기와 함께 어스시 연대기도 끝났습니다. 남아 있는 두꺼운 서부 해안 연대기를 쳐다봅니다...



댓글 9 / 1 페이지

뉴턴님의 댓글

르 귄 여사님의 판타지는,
판타지이지만 사실 판타지가 아니고,
어스시의 주인공은,
정말 대단하지만 갈수록 진실로 초라해져서 결국 너무 대단해지는,
이상한 소설입니다.

초반 3권과 후반 3권은,
내용은 이어지지만 사실 다른 얘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 초반편이 더 좋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반지의 제왕은 무척 재미있었지만,
어스시와는 다른 방향으로서의 대단함이었다고 생각되고,
얼음과 불의 노래는 ..
그 끝간데 없는 K드라마식 서양 판타지는,
초반 두서너 파트에서 그냥 잘 마무리 했어야 하지 않겠나 싶은 마음이라 ..

재미있는 판타지 찾으시며 어스시를 보신다면 실망하시겠지만,
책 읽는 것 좋아하시는 분이신데 아직 안보셨다면 꼭 보셔요.
어스시와 서부해안 연대기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먹먹한 느낌을 주는 즐거움입니다.

Vagabonds님의 댓글의 댓글

긴댓글 고맙습니다. 뉴턴님 덕분에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제가 글을 적은 목적이 이런 게 아닐까 합니다.

Vagabonds님의 댓글의 댓글

저는 어둠의 왼손이 더 힘들었는데 ㅎㅎ;  나중에 어둠의 왼손에 대해 조금 끄적인 것도 올려 보겠습니다.

하늘아이님의 댓글

어스시의 마법사를 아는 분이 거의 없으신데, 이 명작을 보셨군요. 언령이라는 개념으로 마법을 하고, 진짜 이름을 알고... 정말 독특한 작품이라 더욱 인상 깊었죠. 저도 본지 하도 오래되서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날 잡고 다시 한 번 읽어야겠네요.
저는 아주 오래전에 읽고 지금은 리디북스로 있네요.

Vagabonds님의 댓글의 댓글

말씀하신 부분을 소설과 비슷한 느낌으로 적지 않았습니다.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ㅎㅎ;  책을 다시 찾아보신다니 허접한 글을 쓴 보람이 있네요. 고맙습니다.

aicasse님의 댓글

읽은지 한참 되네요.  첫번째 권은 상당히 즐겁게 읽었고, 그 뒤는 첫번째 권까지는 아니었습니다만 그래도 아주 나쁘진 않았습니다.  첫번째 권의 경우에도 이야기 자체는 사실 중간까지 읽으면 거의 결말이 짐작이 가는, 약간 전형성을 지닌 이야기긴 한데, 그걸 끌고 나가는 힘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세계관도 좋고요.

약간 스포일러일 수도 있긴 합니다만, 오래된 책이니까… 읽다가 어느 순간에 게드가 백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슬쩍 드러납니다.  ‘나는 백인이 아니야’라고 선언을 한다거나, 그게 이야기의 진행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는 전혀 아닌데, 문장 중간에 당연하다는 듯이 슬쩍 그 정보가 들이밀어집니다.  흑인 정도까지는 아니고, 적갈색 정도. 

여기에 대해 그다지 뭔가 생각을 많이 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 그렇구나.  약간 의외네. 정도로 여기고 넘어갔었는데, 나중에 르귄의 에세이를 읽다 보니 여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오래 전에 읽어서 아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대강 골자는, 의도적인 것이었고, 처음에는 피부색에 대한 얘기를 일부러 전혀 안 하다가, 독자가 (뭐 여러 독자들이 있겠지만 아마도 영미권 백인을 염두에 둔 듯) 대부분 소설을 읽으면 그러하듯이 주인공과 어느 정도 동일시하는 시점 이후에 아주 슬쩍 피부색에 대한 정보를 줘서, ‘어, 내가(?) 백인이 아니었네’라고, 독자가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사람 속에 ‘들어간’ 상황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뭐, 백인이 아니다 보니 별다른 감흥은 없었습니다만, 어쨌든 일종의 가상 체험을 시켜주고 싶었다는 아이디어는 흥미로웠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판타지 장르의 전형을 살짝 비튼 것이기도 합니다.  톨킨 류의 판타지를 비롯해서… 어쨌든 문화적으로 유럽이나 영국이나 백인 위주의 사회나 신화, 혹은 가상적인 배경이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이런 데에 바탕을 둔 판타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백인이 주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르귄은 이걸 한번 비틀어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일단 배경이 되는 장소부터가, 비록 지어낸 세계이기는 합니다만 폴리네시아 같은 섬들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판타지 소설의 배경과 구분이 되는 배경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고, 그 배경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 또한 백인이 아닌, 어디 적도에 섬나라 사람같은 사람들을 채워넣은 다음, 시치미 뚝 떼고 하이 판타지인 양 이야기를 끌고 가다가, 은근슬쩍 어이쿠 그게 아니고 알고보니 백인이 아니었네…를 쓱 들이미는… 재미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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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을 좀 해보니 피부색 묘사가 나오는 장면 인용해놓은 게 있네요.

"Jasper took Ged to sit with a heavyset fellow called Vetch, who said nothing much but shoveled in his food with a will. He had the accent of the East Reach, and was very dark of skin, not red-brown like Ged and Jasper and most folk of the Archipelago, but black-brown."

능구렁이같은 묘사입니다.  이 부분이 묘사하고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마치 Jasper인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노리고 있는 것은 Ged의 피부색 정보를 노출시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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