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페이지]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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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하늘걷기 121.♡.94.37
작성일 2024.09.05 14:54
분류 한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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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늦여름의 오후 3시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예전에 에어컨을 틀기엔 시원한 오후 3시 선풍기 1단을 틀어 놓고 의자에 기대어 낮잠을 자는데.

 

멀리서 색소폰 소리가 들린다.

 

아직 한창 배우는 중인지 소리는 어설펐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트로트의 한마디가 계속 반복됐다.

 

어설픈 연주 소리지만 살짝 땀이 나는 노곤한 오후의 낮잠과 잘 어울렸다.

 

적당히 기분 좋은 소음과 노곤함.

 

대단한 행복은 아니지만 늦여름의 여유와 안온한 일상.

 

그 후로 매해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에는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마음이 편안해진다.

 

문득, 늦여름 오후 3시에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름이 끝난 것 같다.

댓글 1

벗님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9.05 15:21
그의 이목을 끌기 위해 '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
'해보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 건,
용기가 나지 않아서 하지 않은 것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들을 해봤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외출이 많지 않았단 그 였기에,
정기적으로 식료품을 사기 위해 마트에 들리는 기회는 놓일 순 없었다.
꼭 사는 물품들을 확인하고, 그의 동선을 확인하고, 어떻게 자연스럽게
잠시 옷깃이 스치거나, 혹은 살짝 부딪치거나 할 때를 대비해서
그가 좋아하는 취향을 확인하고, 그가 선호하는 향을 확인하고,
그가 눈길을 어디에 두는 지를 확인했다.
만반의 준비를 했었지만, 결국 실천에 옮긴 것은 두 번에 그쳤다.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 한다. 무색무취.
그에게는 내가 그런 존재이리라. 공기 같은 존재.

그에게 다가서고 싶었으나, 이것이 내 용기의 한계였는지 모른다.
설익은 상태로, 그의 눈 앞에 나타났다가
행여 멀리 떠나버리기라도 한다면, 나는 그 고통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지금처럼 이렇게, 곁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지만
내내 그를 지켜볼 수 있는 이런 상태가 더..

그는 음악을 즐긴다. 채널을 무심하게 옮기다가 음악 방송이 나오면,
그가 선호하는 음악이 흘러 나오면 한 참을 그렇게 빠져든다.
그는 음악을 즐긴다. 클라리넷, 색소폰.. 내가 선택할 것은 명확했다.

어쩌면 내 모습이 아니라, 내 향취가 아니라, 내 소리가 아닐까.
내가 들려줄 수 있는 그 소리로 그와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두 달을 연습했다. 그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그를 사로잡기 위해서.

그리고, 마침내 그가 창문을 열었을 때 나는 숲 속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어설픈, 연달아 실수를 하면서, 그렇게 나와 그가 하나가 되었다.


잘 쓰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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