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퍼를 내려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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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2024.09.11 13:53
분류 살아가요
83 조회
4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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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살살 흔들어봅니다.

등 뒤에서 무슨 소리가 나죠.

뭔가 부딪치는 소리.

네, 맞습니다.

지퍼 소리에요.

등 뒤에 달린 지퍼. 뒷목 아래까지 바짝 지퍼가 채워져 있죠.

팔을 어깨 뒤로 돌려서.. 잘 되지 않죠.

제 고등학교 친구의 여자친구가 무용을 다녔습니다.

몸이 정말 가늘고 예뻤는데,

가장 놀라웠던 것은 양쪽 팔을 등 뒤로 해서

팔꿈치끼리 탁탁탁 하고 부딪칠 수 있다는 점이었죠.

어떻게 저런 게 되는 지 저는 보면서도 이해할 수가 없었죠.

우리는 그런 구조의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얘기가 조금 샜는데,

그런 분들은 스스로도 가능하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옆에 계신 분에게 등 뒤에 채워져 있는 지퍼를 내려달라고 해야 합니다.


지퍼를 스스륵 내리면,

드디어 자신이 쓰고 있는 '나'라는 옷을 벗을 수 있어요.

'나'라고 규명되어 있는 나를 벗고 나면,

이제는 자유롭게

'누군가의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성별이 달라도 좋고, 인종이 달라도 좋습니다.

어떤 옷이든 '타인'의 옷을 입어볼 수 있어요.


그리고,

잠시 내 '새로운 몸'과 '정신'의 교감을 시작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닫게 됩니다.

'아, 이렇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구나.'

굳이 생로병사를 모두 거치고 난 후, 윤회의 과정의 거치지 않아도

이렇게 기존의 옷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게 낯선데, 소위 '연기자'라 불리는 분들은 이런 걸 많이 합니다.

완전히 타인이 되어 연기를 하죠. 메소드 연기라도 하나요.

그런 게 가능합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말이죠.


그런데,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바로, 글쓰기를 하면서 겪게 되는 그 불편한 옷을 벗어던지는 방법을 제시하는 겁니다.

우리는 살아오며 '글쓰기'라는 걸 보통 처음 경험하는 게 '일기쓰기'입니다.

'일기'라는 게 하루를 어떻게 지냈나와 같은 걸 적는 것이다 보니,

지난 하루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적습니다.

여기에 하나 제약 사항이 있어요.

'거짓'을 적으면 안된다는 거죠.

'자신이 경험한 일상'을 적어야 하는 거에요.

이게 하나의 습관이 되어서 '사실만 적는다'라는 규칙이 달라붙어버리는 겁니다.

'사실을 적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사실을 적는 것은 내 내면을 발가벗고 보여주는 것 같아서 부끄럽다.'

이런 생각이 바로 뒤따라 오니, 글쓰기가 어려워지는 겁니다.

'나'라는 옷을 벗어던지질 못 해요.

모든 글들이 '진실', '경험'을 담보로 써야 하는 게 아닌데, 몸이 관성대로 움직이죠.

'사실을 적어야 해, 나의 본 모습, 나의 생각을 적어야 해.'

그런 규칙 같은 거 없습니다.


잠시 다른 사람의 옷을 입고,

잠시 다른 사람처럼 살아봐도 괜찮아요.

그렇게 글을 적어봐도 괜찮아요.

물론, 전재 조건은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이 근반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글쓰기 입니다.' 라는 걸 명시해야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의도치 않더라도 누군가를 속이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다른 분들도 충분히 인지할 수 있게 해놓은 상태라면,

이렇게 '타인'이 되어서 '타인의 생각과 생활'을 적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 번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는 거죠.


자, 준비 되셨나요?

지퍼를 내려봅시다.


자, 이제 당신은 누구인가요?



끝.

댓글 1

마성의물방개님의 댓글

작성자 마성의물방개 (125.♡.111.103)
작성일 09.11 16:39
남자에게 지퍼란 등뒤가 아니라 아랫도리에 있을터인데.. 지퍼를 내리라니요.. 철컹철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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