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페이지] 시침과 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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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자네."
"네?"
"그래, 자네.. 이리 오시게."
"네?"
"얼른.. 서두르시게."
"아.. 네."
왜 나를 지목한 것인지, 왜 오라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일어나 몇 걸음을 걸어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맞지?"
"뭐를.. 말입니까?"
"그렇지? 내 짐작이 맞지?"
"말씀을 해주셔야 알지요."
"에이.. 편하게 하라고, 나도 자네 마음을 다 아니까? 가고 싶지?"
"네?"
"가고 싶잖아, 그리운 자네의 집으로 말일쎄."
"그.. 그건."
"알고 있네, 알고 말고. 왜 모르겠나, 나도 그런데."
"허허.."
"그래도 어쩌겠나, 당장은 그럴 수 없지?"
"..."
"짬이 조금 남는 듯 한데, 한 번 나에게 기회를 주시겠나?"
"무슨 기회를.."
"내가 말이야, 자네의 그 시침과 분침을 단 번에 돌려줄 수 있다네."
"네?"
"퇴근 시간까지 단 번에 돌려줄 수 있어. 어때 구미가 당기지 않나?"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어허, 이거 이거. 이렇게 불신이 팽배해서야 쓰겠나. 한 번 맡겨볼텐가?"
"..."
이 황당한 사람은 어찌해야할까, 몇 시간을 당겨 버리겠다고? 허허허.
"좋네, 그럼 맛보기로 잠시 한 번 보여줄테니.. 어때 해보겠나?"
"흐흐, 그래요. 한 번 해보세요."
"좋아, 잘 결정했네. 눈을 똑바로 뜨고 계시게."
"..."
그는 슬며시 손을 들더니, 가볍게 손가락을 한 번 탁 하고 튕겼다.
...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었다. 아무 것도.
"어때? 만족하시는가?"
"뭐에요, 이게.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잖아요."
"그래? 충분히 된 것 같은데."
"봐봐요, 똑 같잖ㅇ.."
어, 어? 내 손에 왜 이런 주름이, 이건 또 뭐야.. 등줄기가 뜨겁다.
'으으으악', 화로에 댄 듯 뜨거운 등을 어찌하지 못하고 앞으로 구부정하게 굽었다.
"무.. 무슨 일이죠?"
"어때? 화끈하게 잘 됐지?"
"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알 수 없는 사나이는 정말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있었다.
단지 생각이 차이가 하나 있었는데, 내가 말한 시간은 그 날의 몇 시간이었고,
그가 말한 시간은 내 인생의 몇 십 년이라는 차이일 뿐.
그렇게 나는 정년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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