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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 글쓰기] 오늘의 한 단어 -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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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하늘걷기 121.♡.94.37
작성일 2024.09.3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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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만의 외출이다.

 

몇 년 전, 스트레스 때문에 연휴 내내 두문불출한 게 시작이었다.

연휴가 끝나고 회사에 출근하는 날.

문밖을 나서는 게 덜컥 겁이 나서 주저앉았다.

 

회사에 병가를 내겠다고 전화했다.

 

―병가? 어이구 연휴 내내 놀다가 출근하는 날 병이 나셨어요?

 

“저…그게.”

 

―당장 튀어와! 점심때까지 오지 않으면 너 해고야!

 

“….”

 

―대답 안 해?

 

“…해고해. 그러면.”

 

―뭐? 김 대리! 너 미쳤어!

 

“그래. 너 같은 새끼한테 절절맸다니 내가 그동안 미쳤었나 보다.”

 

―뭐?

 

전화를 끊고 방금 통화와 그동안의 녹취를 모두 모아서 사장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지만, 찾아오는 사람도 만나지 않고 전화도 꺼놓았다.

메일로만 소통했다.

 

사장의 꿈은 구의원이었다.

장문의 편지로 자기 아들인 장 부장의 갑질을 사과했다.

퇴직금과 그 몇 배의 위로금을 받고 조용히 퇴사하기로 했다.

 

어차피 가족도 친구도 없다.

집을 나가지 않아도 앉아서 모든 일이 해결됐다.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었다.

 

오래전 옷걸이로 변해 버린 러닝머신을 꺼내서 운동했고 각종 비타민과 건강 보조 식품으로 건강을 관리했다.

 

집에 은둔했다.

 

아니 은둔이나 은거라기 보다는 세상에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은 긴 휴가였다.

 

밖에 나갈 시도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제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없으니 언제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문 앞에서 멈추고 말았다.

 

그냥 사람들을 마주 보는 게 무서웠다.

 

한동안 절망하며 우울해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냥 여기서 나가지 말고 살지.

그런 사람도 있는 거지 하면서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 긴 머리와 수염을 잘랐다.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됐다.

 

어느날.

 

―찌이이이잉!

 

머리가 깨질 듯 이명이 들리면서 머릿속에 갑자기 정보가 들어왔다.

 

지구의 신이 빚을 졌고 파산했다.

 

@#$ 관리국은 지구인들이 빚을 갚을 의무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빚은 노동으로 갚을 것이고 순서대로 소환하겠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이명이 끝났다.

 

바로 인터넷을 켰다.

나는 내가 미친 줄 알았는데 전 세계인들 모두 같은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왔다고 한다.

 

게시판에는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올린 글들이 밤새 계속됐고 나 또한 글을 읽으며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부터 사람들이 사라졌다.

 

게시판 글에 의하면 옆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다고 했다.

차를 몰던 사람이 사라진 자동차는 사고를 일으켰다.

차뿐만 아니다.

 

비행기가 추락했고 배가 침몰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로 가스와 전기가 끊겼고 바깥에는 화재와 폭발이 계속됐다.

 

그러기를 한 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세상 모두가 사라진 것 같았다.

 

비축해 둔 식량은 충분 하니까 언젠가 내 차례도 오겠지, 하며 기다렸다.

 

육 개월이 지나고 식량이 떨어질 때까지 내 차례는 오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게 은둔한 사람은 찾지 못하는 것인가?

은둔자가 나 혼자만은 아닐 텐데?

 

식량이 떨어지고 이틀을 물만 마시며 기다렸지만 여전히 내 차례는 아직이었다.

더는 배고파서 안 되겠다.

 

나는 빈 가방은 등에 메고 호신용 야구 배트를 들고 문 앞에 섰다.

 

문고리를 잡아봤다.

떨리거나 땀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문을 열었다.

 

―끼이익―!

 

하도 열지 않아서 녹이 슨 모양이다.

녹 제거제를 구해서 뿌려야겠다.

아니, 구리스 같은 윤활제를 뿌려야 하나?

천 원마트에 물건은 있겠지?

 

열린 문을 앞에 두고 쓸데없는 생각을 계속하다가 생각을 멈추고 숨을 다시 깊게 들이마시고 오른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홀린 듯 걸어서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내려가서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햇볕이 좋은 어느날 몇 년 만에 외출했다.

댓글 2

벗님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09.30 11:51
사람들이 만들어냈던 환경 오염은 사람들의 사라짐과 같이 했고,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청명함으로 되살아 났다.
사람들이 상처를 내고, 또 그 상처를 비집고 상처를 내봤자
가만히 두면, 이렇게 자연은 자신의 모습으로 다시 되돌아온다.

지구의 신, 그가 무슨 빚을 졌던 것일까.
그 빚을 왜 사람들이 사람들이 갚아야 한다고 여겼던 것일까.
사라진 사람들, 그들이 어떤 노동으로 그 빚을 갚게 되는 것일까.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작은 돌맹이 하나가 어디선가 날아와 발등을 맞췄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멀지 않은 단층 건물이었다.

"들어가요! 들어가! 위험해요, 얼른 들어가요!"

내가 문을 열고 나온 것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왜요? 괜찮은 것 같ㅇ.."

온몸이 뜨거워졌다. 시야가 온통 하얗게 뒤덮였다.
발끝부터 머리 끝까지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차갑게 식었다.
어지로움이 동반되는 가 싶더니, 밝은 빛이 줄어들고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어딘가에 서 있었다. 서 있는 게 맞는가? 중력, 중력이 느껴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이 보였다. 지평선이 맞나, 땅이 맞는가?
아무 것도 없었다. 짙은 갈색의 투명한 바닥에 오로지 나 혼자 서 있었다.


잘 쓰셨습니다. ^^

팬암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팬암 (203.♡.217.241)
작성일 09.30 13:35
페르시아 고레스 왕이 레반트 지방에 일부 주민을 남겨놓은것 처럼
우주 채권단은 지구라는 별에 생명체를 일부 남기고 있었나보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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