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글쓰기] 오늘의 한 단어 - 필름

알림
|
X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하늘걷기 121.♡.94.37
작성일 2024.10.02 18:06
분류 연습하기
37 조회
0 추천
글쓰기

본문


―찰칵!

 

―찰칵!

 

“같이 사진 한 번 찍어요.”

 

검에 베인 거대한 사마귀의 사진을 찍던 청년이 검에 묻은 점액을 닦는 무사를 보며 이야기했지만, 무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저는 싫습니다.”

 

청년은 카메라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무사님도 사진 찍으면 영혼이 사라진다는 걸 믿으세요?”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꺼림칙합니다.”

“그러시구나.”

“이제 출발하시죠.”

“예. 그래요.”

 

두 사람은 공을 가지고 놀고 있던 승용견에 탔다.

주변 풍경을 보며 천천히 걷다가 앞서가던 무사가 입을 열었다.

 

“전, 솔직히 사진이라는 걸 믿지 않습니다. 현실과 똑같은 걸 옮겨 놓는 장치라니…영혼을 빼앗아 가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런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저는 호위하려고 나오셨어요?”

“그게 제 임무니까요. 그리고….”

“다른 무사들이 거부했나요?”

“….”

 

청년은 가문의 아픈 손가락이다.

주변을 장악한 대단한 무사 가문의 아들인 청년이다.

하지만 청년은 몸을 조금만 격하게 움직여도 근육이 뒤틀리는 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무사도 청년이 어릴 때부터 호위로 발탁된 게 아니었다면 다른 무사들처럼 무관심이나 무시로 일관했을 것이다.

 

“전 이해해요. 무사 가문에 아무런 힘이 없는 둘째가 영혼을 빼앗아 간다는 사진을 찍고 다니니 이상하죠.”

“….”

 

무사들끼리는 청년이 무사들의 영혼을 빼앗아서 힘을 얻으려 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자도 있다.

사악한 마법을 부린다는 불길한 혐의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런 자들은 모두 처리됐다.

가주는 청년을 아끼고 안쓰러워한다.

그래서 호위로 백인장 급의 무사가 붙어 있다.

 

“대격변 이전에 우리 가문이 무사는커녕 장사꾼이었다는 건 아세요?”

 

대격변 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는 엄청난 전쟁이 터졌다고 하고 누구는 태양이 분노했다고도 한다.

 

수백 년 전 인류의 문명은 철기시대로 되돌아갔었다.

쌓아 놓은 지식이 있어서 빠르게 회복했지만, 중세와 증기 시대가 이상하게 뒤섞인 상황에서 정체 중이다.

 

화석연료라고 부르던 석유와 석탄, 가스 등은 악마의 물건이라며 접근 자체가 불허됐지만 누가 왜 그렇게 규정했는지도 모른다.

 

“가문보다 훨씬 큰 집단인 나라가 있고 그 나라들을 오가는 큰 장사였다고 들었습니다.”

“대단한 것처럼 말하는데 예전에는 다른 나라의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이 무지 많았다고 해요. 우린 그중에 하나인 거죠. 잡화를 수입하는 사람들요.”

 

무사는 청년이 하는 말 중에 상당수는 못 알아듣고 있다.

잡화를 수입한다는 말 역시 알아듣지 못하는데 굳이 묻지 않았다.

한 번 물으면 청년의 말이 너무 길어져서이다.

청년은 말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도 저력이 있는 가문이시니 지금 이런 세상에서 큰 성세를 구가 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 정도일까요?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아무튼 이 카메라나 필름도 그때 장사하는 물건 중에 하나에요. 특히 필름은 가문 창고에 엄청나게 쌓여 있던 물건이죠.”

“그렇습니까.”

 

무사가 보기에 카메라는 청년이 들고 있으니, 무언지 알지만 필름이 뭔지도 모르겠다.

그 안에 들어가는 무엇이라는 것만 눈치로 알 뿐이다.

 

“우리 가문이 이렇게 사는 것도 과거의 조상들이 남겨둔 물건 때문이에요. 의외로 지금까지 쓸 수 있는 물건들이 많았고 창고가 무사했기 때문이고요.”

“하늘의 선택을 받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사는 정말로 청년의 가문이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고대의 유물 창고를 멀쩡히 소유하고 있는 건 청년의 가문밖에 없다.

오래된 세월에 바스러지는 물건도 많지만, 아직도 멀쩡히 쓸 수 있는 물건들이 많다.

 

지금 손에 끼고 있는 빨간색 장갑도 내구성은 형편없지만 검을 잡으면 손에 착 달라붙어서 아무리 땀을 많이 흘려도 검을 놓치는 법이 없다.

 

무사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하하, 그런 건 형이 하는 이야기고요. 저는 그 물건 중에 이 카메라와 필름을 발견했어요. 가문의 물건 중에 현재의 모습을 미래에 남겨둘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요.”

“현재 모습을 남겨서 무얼 하는 겁니까?”

“먼 미래에 대격변 이후의 인류가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연구할 자료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사진들을 가지고 책을 만들 거예요.”

“책이라는 건 과거 유물이라고 듣기만 했습니다. 그걸 만들기도 하는 겁니까?”

 

청년은 책 이야기에 신이 났는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주 예전에는 손으로 글을 써서 책을 만들었다고 해요. 지금 그렇게 하는 게 이상하지는 않죠.”

“잘 모르겠습니다. 누가 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글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지 않습니까?”

“하하, 만들어 놓으면 누군가 보겠죠. 아무도 안 읽으면 유물로 남겨 놓으면 되는 거고요.”

 

두 사람은 짧은 외유를 마치고 가문의 성에 도착했다.

이 고대 유물 같은 성에는 물류창고라는 간판이 아직도 붙어 있다.

  • 게시물이 없습니다.
댓글 0
글쓰기
전체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