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글쓰기] 오늘의 한 단어 -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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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찰칵!
“같이 사진 한 번 찍어요.”
검에 베인 거대한 사마귀의 사진을 찍던 청년이 검에 묻은 점액을 닦는 무사를 보며 이야기했지만, 무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저는 싫습니다.”
청년은 카메라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무사님도 사진 찍으면 영혼이 사라진다는 걸 믿으세요?”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꺼림칙합니다.”
“그러시구나.”
“이제 출발하시죠.”
“예. 그래요.”
두 사람은 공을 가지고 놀고 있던 승용견에 탔다.
주변 풍경을 보며 천천히 걷다가 앞서가던 무사가 입을 열었다.
“전, 솔직히 사진이라는 걸 믿지 않습니다. 현실과 똑같은 걸 옮겨 놓는 장치라니…영혼을 빼앗아 가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런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저는 호위하려고 나오셨어요?”
“그게 제 임무니까요. 그리고….”
“다른 무사들이 거부했나요?”
“….”
청년은 가문의 아픈 손가락이다.
주변을 장악한 대단한 무사 가문의 아들인 청년이다.
하지만 청년은 몸을 조금만 격하게 움직여도 근육이 뒤틀리는 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무사도 청년이 어릴 때부터 호위로 발탁된 게 아니었다면 다른 무사들처럼 무관심이나 무시로 일관했을 것이다.
“전 이해해요. 무사 가문에 아무런 힘이 없는 둘째가 영혼을 빼앗아 간다는 사진을 찍고 다니니 이상하죠.”
“….”
무사들끼리는 청년이 무사들의 영혼을 빼앗아서 힘을 얻으려 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자도 있다.
사악한 마법을 부린다는 불길한 혐의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런 자들은 모두 처리됐다.
가주는 청년을 아끼고 안쓰러워한다.
그래서 호위로 백인장 급의 무사가 붙어 있다.
“대격변 이전에 우리 가문이 무사는커녕 장사꾼이었다는 건 아세요?”
대격변 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는 엄청난 전쟁이 터졌다고 하고 누구는 태양이 분노했다고도 한다.
수백 년 전 인류의 문명은 철기시대로 되돌아갔었다.
쌓아 놓은 지식이 있어서 빠르게 회복했지만, 중세와 증기 시대가 이상하게 뒤섞인 상황에서 정체 중이다.
화석연료라고 부르던 석유와 석탄, 가스 등은 악마의 물건이라며 접근 자체가 불허됐지만 누가 왜 그렇게 규정했는지도 모른다.
“가문보다 훨씬 큰 집단인 나라가 있고 그 나라들을 오가는 큰 장사였다고 들었습니다.”
“대단한 것처럼 말하는데 예전에는 다른 나라의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이 무지 많았다고 해요. 우린 그중에 하나인 거죠. 잡화를 수입하는 사람들요.”
무사는 청년이 하는 말 중에 상당수는 못 알아듣고 있다.
잡화를 수입한다는 말 역시 알아듣지 못하는데 굳이 묻지 않았다.
한 번 물으면 청년의 말이 너무 길어져서이다.
청년은 말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도 저력이 있는 가문이시니 지금 이런 세상에서 큰 성세를 구가 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 정도일까요?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아무튼 이 카메라나 필름도 그때 장사하는 물건 중에 하나에요. 특히 필름은 가문 창고에 엄청나게 쌓여 있던 물건이죠.”
“그렇습니까.”
무사가 보기에 카메라는 청년이 들고 있으니, 무언지 알지만 필름이 뭔지도 모르겠다.
그 안에 들어가는 무엇이라는 것만 눈치로 알 뿐이다.
“우리 가문이 이렇게 사는 것도 과거의 조상들이 남겨둔 물건 때문이에요. 의외로 지금까지 쓸 수 있는 물건들이 많았고 창고가 무사했기 때문이고요.”
“하늘의 선택을 받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사는 정말로 청년의 가문이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고대의 유물 창고를 멀쩡히 소유하고 있는 건 청년의 가문밖에 없다.
오래된 세월에 바스러지는 물건도 많지만, 아직도 멀쩡히 쓸 수 있는 물건들이 많다.
지금 손에 끼고 있는 빨간색 장갑도 내구성은 형편없지만 검을 잡으면 손에 착 달라붙어서 아무리 땀을 많이 흘려도 검을 놓치는 법이 없다.
무사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하하, 그런 건 형이 하는 이야기고요. 저는 그 물건 중에 이 카메라와 필름을 발견했어요. 가문의 물건 중에 현재의 모습을 미래에 남겨둘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요.”
“현재 모습을 남겨서 무얼 하는 겁니까?”
“먼 미래에 대격변 이후의 인류가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연구할 자료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사진들을 가지고 책을 만들 거예요.”
“책이라는 건 과거 유물이라고 듣기만 했습니다. 그걸 만들기도 하는 겁니까?”
청년은 책 이야기에 신이 났는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주 예전에는 손으로 글을 써서 책을 만들었다고 해요. 지금 그렇게 하는 게 이상하지는 않죠.”
“잘 모르겠습니다. 누가 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글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지 않습니까?”
“하하, 만들어 놓으면 누군가 보겠죠. 아무도 안 읽으면 유물로 남겨 놓으면 되는 거고요.”
두 사람은 짧은 외유를 마치고 가문의 성에 도착했다.
이 고대 유물 같은 성에는 물류창고라는 간판이 아직도 붙어 있다.
벗님님의 댓글
성 안은 고요했다.
두 사람이 탄 승용견이 성 입구를 지나가자,
무사들은 침묵 속에서 고개만 살짝 숙이며 예를 표했다.
청년은 주위를 둘러보며 어딘가 묘하게 어둡고 습기 찬 공기를 느꼈다.
"오늘따라 더 으스스하네요."
무사는 묵묵히 청년을 따라가면서 주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늘 그렇듯이 정적만이 그들을 둘러쌌다.
"이제 방으로 들어가서 정리 좀 해야겠어요. 오늘 찍은 사진도 확인해보고요."
청년이 작은 한숨을 쉬며 무기력하게 웃어 보였지만, 무사는 말없이 뒤따랐다.
둘은 성의 복잡한 복도를 지나가며 끝이 보이지 않는 통로의 어두운 구석을 지나쳤다.
그때, 멀리서 우지끈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나무가 오래되어 금이 가는 소리처럼 섬뜩한 느낌을 주는 소리였다.
"무사님, 들었어요? 이거… 설마?"
청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멈춰 섰다.
무사는 긴장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폈다.
"위쪽에서 난 소리 같습니다. 따라오십시오."
무사는 즉각 움직였고, 청년도 무사 뒤를 쫓았다.
복도의 끝자락, 성의 오래된 부분에 다다랐을 때 또 한 번 쾅 소리가 나더니 천정의 한 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먼지가 뿌옇게 흩날리고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이건…!"
두 사람은 얼른 뒤로 물러났지만, 무너진 천정 틈으로 무언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천장이 내려앉은 곳에는 낡고 오래된 방이 있었고,
그 방 안에는 한 늙은이가 이상한 물건들을 두고 도술을 부리고 있었다.
그는 어깨가 구부정한 채, 흐릿한 눈으로 자신이 만든 작은 테이블 위에 빛나는 무언가를 놓고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죠?"
청년이 속삭이며 물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저 고물 같은 방에서 누군가 숨어 있을 줄은… 가까이 가보죠."
둘이 천천히 다가갔을 때, 늙은이는 갑작스레 몸을 돌리더니 그들을 쳐다봤다.
그의 눈은 매섭게 빛났고, 손에 들린 작은 물건이 반짝였다.
그것은 금빛을 띤 작은 보석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그 보석을 만질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때로는 칼, 때로는 병, 때로는 기이한 동물의 형상이 보였다.
"이게… 뭐죠?" 청년은 어리둥절했다.
늙은이는 가만히 웃음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목소리는 쇠약했지만 확고했다.
"이 물건은 내가 가진 쓸모없는 것들을 쓸모 있는 것으로 치환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
오래전부터 이곳에 남몰래 숨어서 이걸 연구하고 있었지."
"어떻게 여기서…" 무사가 경계하며 물었다.
"아, 나도 이 성의 주인처럼 여기에 오래 있었을 뿐. 대격변 이전부터 말이야.
아무도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지. 나는 이곳의 물건들을 손봐서 더 나은 것으로 바꾸고 있었거든."
그 순간, 청년은 손에 든 카메라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그럼 그 물건들, 진짜가 아닌가요?"
늙은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바꾼 것들이지. 그 대신… 그건 더 오래가지 않지.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어."
"우린 왜 몰랐죠?"
청년이 따져 물었다.
"넌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이해할 필요가 없어, 어린 녀석아.
난 단지 살아남기 위한 내 방식을 찾아낸 것뿐이야."
그때, 무사가 검을 반쯤 빼들었다.
"당신, 위험한 짓을 하고 있군. 이제 그만하시죠."
그러자 늙은이가 다시 천천히 웃었다.
"이게 위험하다고? 더 큰 위험은 저 너머에서 다가오고 있어, 젊은이들. 이 정도로 겁먹지 말라고."
청년과 무사는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오래된 비밀과,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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