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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하늘걷기 121.♡.94.37
작성일 2024.10.04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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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보 대신 생존을 택했다!”

 

팔다리가 잘린 기계 몸에 머리만 사람의 모습을 한 괴물이 소리쳤다.

마왕치고는 초라한 모습이다.

 

“우리는 너희들을 살려준 것이다! 역사를 지키고! 인류를 지킨 게 우리다!”

 

용사는 코웃음쳤다.

 

“인류를 지켜? 네놈이 만든 기계 괴물들이 세상을 파괴했다. 무엇을 지켰다는 것이냐?”

 

마왕은 기계로 만들어진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우리가 파괴한 것은 그들의 흔적이다! 그들은 너희를 파괴할 것이다! 우리는 너희들을 지킨 거다!”

“맑은 물과 파란 새싹이 우리에게 무슨 피해를 주지? 마왕 네 놈과 기계 괴물들은 그저 미쳐버린 것이다!”

“너희들은 모른다! 우리만 안다! 우리만…!”

 

―콰득!


검이 마왕의 머리에 박혔다.

 

“크윽…!”

 

머리뼈 자체도 단단한 쇳덩어리로 만들어져 있지만 용사의 검은 그 쇳덩어리를 통과해서 마왕의 뇌를 잘랐다.

 

마왕은 머리통 속의 뇌와 피부만 사람의 것을 가졌고, 이제는 살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드디어 마왕을 퇴치했다.

 

뇌가 잘린 이후로도 마왕 몸통의 기계는 조금씩 움직이다가 멈췄다.

 

―푸스스!

 

그리고 아직도 기계 괴물을 생산하던 거대한 기계산의 불빛도 꺼졌다.

 

진짜 끝이다.

 

·

·

·

 

지하 깊은 곳에서 기계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바닥의 원통을 꺼냈다.

 

잠시 후.

 

―푸쉬쉬쉭!

 

원통에서 하얀 김이 빠져나오고 문이 열렸다.

 

“…크윽.”

 

조금 전 용사에게 파괴당한 마왕이 팔다리가 멀쩡한 모습으로 원통에서 빠져나왔다.

빠져나오자마자 마왕은 정면의 큰 모니터를 향해 소리쳤다.

 

“또! 또 그놈들이 인간을 속였다! 우리가 아무리 경고해도 듣지 않는다!”

 

모니터에서는 40대 정도 되는 남자의 얼굴이 나와서 대답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계속 막아야 합니다.

 

“어떻게? 보여 줄 수도 없고 본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인간들은 구호 로봇을 악마라고 부르고 우리를 마왕이라고 부른다!”

 

―인간들은 아직 AI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노머신은 더 그렇죠. 물과 식물 속에 숨어있는 나노로봇을 섭취하면 그들의 노예가 된다는 것도 이해 못 합니다.

 

“그런데도 계속 이렇게 해야 하냐?”

 

답답해하는 마왕에게 남자가 타이르듯 대답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냥 우린 선택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지상에서 구호 활동을 하고 내가 지하에서 AI의 기지를 찾아내서 파괴하기로 했습니다.

 

“언제까지 해야 하나? 계속 뇌를 복제할수록 지능이 떨어져 간다. 몇 번만 더 반복되면 우리는 기억을 잃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들도 급하니까 용사라며 자신들에게 세뇌된 사람을 보내는 겁니다. 당신이 인간을 공격 못 하는 걸 알고서 조악한 칼을 들려서 보내는 겁니다. 진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리는 마왕에게 모니터 속의 남자는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알았다! 우리는 오래는 못 버틴다.”

 

―알고 있습니다. 충분히 많이 버틴 겁니다. 선배님.

 

AI가 전쟁을 일으켰고 인류도 그에 대항해서 생존을 건 긴 전쟁을 이어갔다.

 

전쟁의 와중에 인류 문명은 파괴됐고 AI와 우리와의 전쟁이 길게 이어졌다.

몸을 기계로 만들고 기계 속에서 살아가면서까지 전쟁을 이어갔고 우리가 승리한 줄 알았다.

 

AI는 나노로봇으로 모습을 바꾸었고 흉물스러운 우리는 새로운 인류에게 악마로 여겨지기에 충분했다.

댓글 1

벗님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10.04 13:05
본질은 잊혀졌다.
누가 누구와 싸우는가,
애초에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나.
대체되는 부분일 많아질 수록 잊지 않아야 한다는 명제는
인류에서 전쟁으로 바뀌고 있었다.
잇다른 패배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승리,
그 목마름은 결국 왜 이 끝나지 않는 전쟁이 시작된 것인지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에 다다르게 되었다.
상대가 아직 목숨이 붙어있다면, 아직 LED에 전원이 들어온다면
그것을 없애고 파괴하고 자를 뿐이었다.
다른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훗날 '누구와 누구의 싸움이었나'를 기록했던 역사서를 보라.
대상은 남아 있지 않다.
그저 모습이 다른 기계 덩어리와 기계 덩어리와의 전쟁이었다고 한다.
대타협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잘 쓰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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