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하다 보니...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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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잡일전문가 118.♡.101.64
작성일 2024.06.1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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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명, 인물, 스크립트, 음성, 회사, 단체, 지명, 국명, 사건, 제품, 그리고 모든 고유명사는 전부 실제와는 일절 관계가 없이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같은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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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몰의 기술 임원은 잠시 정리할 것만 정리하고 바로 내려간다며 우리를 먼저 내려보냈다. 회사 맞은 편의 커피숍에서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어우, 진짜 십 년 감수했네요."

"하다 보면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 그래도 다음엔 좀 조심하고."

"아니, 이사님도 보셨잖아요. 저거 저 아니었어도 조금만 아는 사람이면 뚫렸을건데요."

"그런걸 알아채는 것도 실력이야. 너무 실력 믿고 자만하지 말고, 조심해서 진행해."

사실, 공격하기 전에 딱 한 번이라도 이상 패턴을 확인했다면 전체 회원 정보가 바뀔 일은 없었다. 그래도 설마 했지. 아니 누가 비밀번호 찾기 기능에 아무런 검증 과정을 안 넣느냔 말이다.

회원 아이디를 공백 상태로 설정하고 비밀번호 초기화를 강제로 수행하면 전체 회원 패스워드가 초기화되는 희대의 버그요 취약점이었다.

개인정보 확인을 위한 실명 인증 과정을 강제 우회하면 5분 내로 모든 회원 데이터를 삭제할 수도 있었다.

강이사님이 조근조근 나를 까고 계시는 동안 케이몰의 기술 임원이 카페로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바로 이동하시죠."

***

이동한 곳은 간판이 붙어 있지 않은 가게였다. 뭐지?

입구에 서있던 정장을 입고 있던 사내는 기술 임원의 얼굴을 알아보고 바로 인사를 하며 말을 걸어왔다.

"조이사님. 어서오십시오."

"아까 전화드린대로 세 명, 조용한 자리로 부탁해요."

"네. 세팅 완료됐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오늘 귀한 분들이니 신경 좀 써주시면 좋겠어요."

"언제나 그렇듯 만족스럽게 모시겠습니다."

둘은 그렇게 얘기를 하며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와 강이사는 약간 얼빠진 모습으로 뒤로 따라갔다.

"이사님. 이런 가게도 있네요?"

"허~,이런 가게는 나도 처음 와보네."

"비싸겠죠?"

"여기는 아마 돈 많아도 함부로 못 올걸? 소개가 있어야 하거나 검증된 사람만 올 수 있을거야."

맛있게 고기를 먹으려던 계획은 대차게 실패한 것 같다. 이런 분위기에서 맛이나 제대로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엘리베이터에 타시면 됩니다."

직원은 우리를 엘리베이터에 태우고 3층을 눌렀다. 그리고 자신은 타지 않고 우리만 올려보냈다.

"이런 가게는 처음 와봅니다."

강이사님이 약간 긴장하며 말을 꺼냈다.

"저도 간혹 오는 정도입니다. 맛은 보장하니 맛있게 드세요."

나도 뭔가 한 마디 하려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1층에서 우리를 맞이한 직원이었다.

엘리베이터 옆 계단으로 뛰어 올라왔나보다. 힘들텐데.

"이쪽입니다."

사내는 우리를 안쪽 방으로 안내했다.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적당한 조명의 방에는 세 명이 앉기엔 많이 넓은 테이블이 있었다.

좌식처럼 보이지만 안쪽이 아래로 파여 있어서 일반 테이블에 앉은 것 처럼 편히 앉을 수 있는 곳이었다.

자켓을 벗고 앉으려 하는데 뒤에서 직원이 자켓을 모두 받아주며 뒤쪽 옷장에 넣어줬다. 이런 서비스라니...

얼떨떨한 상태에서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다른 직원이 들어와 기술 이사에게 메뉴를 물어봤다.

"오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식사 시간이니 먼저 코스 요리로 주시고, 술은 적당히 주세요."

"와인으로 하시겠습니까?"

기술 이사는 그제야 우리를 보며 물어봤다.

"술은 어떤게 좋으시겠습니까?"

"아, 와인 좋지요. 이사님이 추천해주시는걸로 하겠습니다."

거짓말이다. 우리 강이사님은 일단 소맥파다. 와인? '야. 그거 그냥 포도쥬스에 소주 타마시는게 낫지. 떫기만 하고 머리아프고 그게 뭐야.' 라고 회식 때 얘기하는거 몇 번 들었다.

이렇게 고객이 무섭다. 평소의 신념 따위는 개나 줘버리게 만드는 갑 오브 갑 고객.

그런데 지금은 갑님께서 이런 곳에 데리고 온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거 결제는 누가 하나 싶다. 갑님이 설마 내줄건가?

누가 내건 상관 없다. 박봉의 중소기업 대리에게 돈 내라고 하진 않겠지. 두 이사 중 하나가 내겠지. 난 먹기나 할테다.

"임대리님. 초면인데 제가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소개를 못했네요."

조이사라고 불리는 기술 이사는 나에게 명함을 건네줬다.

'케이몰 CTO 조영진'

그러고보니 이 사람은 꽤 매너가 좋다. 회사 내에서 자기 부하 직원한테도 존댓말을 써주고, 여기 직원들에게도 조근조근 존댓말로 말하는걸 보면 꽤 품격이 있어 보인다.

"임대리님은 이 일을 몇 년이나 하셨어요? 회사 내 에이스라고 들었는데."

"에이스는 아닙니다. 이제 4년차입니다."

"4년만에 그런 실력이 되나요?"

"본업으로 한건 4년이고, 어릴때부터 관심은 좀 많아서 혼자 이것 저것 공부는 했습니다."

"아~ 그러면 전공도 관련 학과이신가요?"

"전공은... 제가 수학을 못해서요. 문과입니다. 관광학부 전공했습니다."

조이사는 조금 당황하며 다시 반문했다.

"관광학부요? 아니 근데 어쩌다 이런 일을 하시게 된건가요?"

"그게... 제가 여행을 좋아해서 전공을 선택했는데, 막상 그 일을 해보니까 제가 여행을 가는게 아니더라구요. 남들 여행만 시키는거다 보니까 오히려 저는 여행을 못가게 돼서 다른 일을 찾아봤죠. 제가 좋아하는 또 다른게 IT 관련인데 아르바이트로 조금씩 웹 개발을 하거나 친구 일 도와주거나 하면서 지식을 쌓아둔게 있었거든요."

"그런 개발 조금 했다고 이렇게 해킹을 하거나 보안 일을 할 수는 없잖아요."

"제가 게임을 참 좋아합니다."

"게임이요?"

"근데 순위 올리는 것도 좋아합니다."

"주목 받는거 좋아하시나봐요."

"네."

"근데 그게 뭔가 관련이 있나요?"

"아... 말씀 드리기 조금 민망하긴 한데, 모두팡이라고... 코코아톡 기반으로 게임하는게 있거든요. 친구들한테 자기 점수 보여지고 순위 나오고."

"아. 제 딸 아이도 자주 하는 게임이네요. 딸 아이도 항상 저한테 하트 달라고 메시지가 날아와서 압니다. 저도 머리 아플 때 잠깐씩 하기도 하고. 근데 그게 관련이 있어요?"

"점수 조작을..."

"네?"

"그러니까... 그거 1등을 하고 싶어서 점수를 조작해버리는거죠. 그것도 항상 압도적으로. 다른 친구들의 한 2~3배 정도 점수차이를 내면 1등으로 고정되니까요."

"그러면, 그 게임 1등하려고 해킹을 배우신건가요?"

"꼭 그 게임 뿐은 아니고, 다른 게임들 복사 방지된걸 크랙한다거나, 게임 내 아이템 구매 같은거를 결제 안하고 한다거나 하면서 실력이 쌓였습니다."

"허허허. 동기가 굉장히 재밌으시군요."

"지금은 안합니다. 지금은 이 일을 하니까, 불법적인거는 안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면 전혀 안하시나요?"

"걸리면 큰일 나잖아요."

조이사는 사람 좋은 미소를 계속 지으며 나에게 조심스레 물어봤다.

"제가 만약에 개인적으로 뭐 좀 조사해달라고 하면 그건 불법입니까?"

내가 생각했던 전개가 아닌데. 이거 어떡하지? 그러나 강이사님이 바로 날 구하기 위해 끼어들었다.

"조이사님. 이게 이 친구가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 보니 함부로 다른 프로젝트를 받거나 하기가 힘듭니다."

"아, 당장 뭔가를 맡기거나 하는게 아닙니다. 단순한 정보보호법 관련 의문을 여쭤보는거죠. 예를 들어서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누군가의 흔적을 찾는다거나, 이메일 주소만 가지고 누군가를 특정한다거나, SNS 계정 주인을 찾는다거나 그런거 있잖아요. 드라마에서도 종종 나오는거."

"아, 그런 정도라면 불법까지는 아닙니다. 특정해서 공개한다거나, 스토킹을 하는게 아닌 이상. 근데 그건 해커보다는 흥신소쪽 일 같군요."

"해커랑 흥신소랑은 또 다른거군요."

"해커 중에서 지금 임대리처럼 기업의 취약점을 찾아내고 공격 방법을 공유해서 보안성을 높여주는게 화이트해커의 역할이지요. 그래서 케이몰의 보안이 점차 좋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하하. 언제나 그건 감사합니다. 오늘 자리에서는 그 감사에 대한 보답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요리들이 들어왔다. 이건... 어디 임금님 수랏상 같다. 만들어진 요리들이 끝없이 테이블 위로 올라가는데, 빈 자리가 없다.

언제 다 먹지?


댓글 1

아라님의 댓글

작성자 아라 (49.♡.11.6)
작성일 06.16 16:59
저는 요즘 웹소를 잘 못 읽는 사람인데 잡일전문가님 문장은 훅 읽히네요.. 헣ㅎ.. 넘 재밌어요.. (대충 팝콘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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