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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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같이 누군가를 아는척하기가 어려워 폰화면만 바라보고있다.
= 4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
누군가 탄다.
엘리베이터가 제법 붐비므로 나는 버튼을 누르는 곳에...
여직원은 문 앞에 서 있다.
무심히 폰화면을 보며 숏츠 화면을 넘기는데
여직원이 나한테 아는 척을 한다. = 문이 닫힙니다 =
"출장 나가세요?"
ㅡ ? 아... 네.
나는 내심 의아하여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하얀 면바지를 입은 제법 키가 큰 40대 초~중반의 직원이다.
"역시... 매일 출장이시구나... 잘 지내시죠"
나는 처음보는 얼굴이지만, 그녀의 어투를 보면 나를 상당히 잘아는 것 같다
'어디서 같이 근무했었던가 아니면.... 우리 딸 직장 어린이집에서 다른 아이에게 엄마 인가...'
기억을 더듬어볼겸... 내려가는 숫자를 보기도 무료하여 말을 건다.
ㅡ 어느 쪽으로 출장 가세요? 같은방향이면....
"네. ㅇ대 쪽으로..."
ㅡ 아 저는 ㅇ대라서... 어차피 여기에서 버스 타고가나 제 차를 타고 가 나 똑같을 것 같습니다
"아.. 차를 타고 가시는 거예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더 대화를 나눠봤지만 누군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1층이 되어 문이 열리고 눈인사를 나누고 여직원은 사송실쪽으로 향한다.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며 한 가지.... 떠오르는것은 전에 ㅇㅇㅇ 부서에서 근무할 때
총각시절 썸 탔던 그 직원인 것 같다.
얼마후 어디로 갔었는데...?
이후 곧 나는 다른 사람과 결혼했고, 1년만에 사별하였다.
'세월이 많이 흘렀네... 한동안 타지를 돌다 왔나본데...'
착한 얼굴인데... 그 직원이 맞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장애를 말하고 다닐수도 없고...
왠지 미안하군....
벗님님의 댓글
*
문이 열리며 두 번째로 그 여직원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 4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
오늘도 나는 무심히 폰 화면을 보며 숏츠를 넘긴다.
그날과는 다르게, 그녀는 내게 아무런 말도 걸지 않았다.
마치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서먹하게 눈인사만 하고서 말없이 구석에 선다.
엘리베이터 안에 둘밖에 없는데도, 단 한 마디의 말도 주고받지 못한다.
‘무슨 일이지? 지난번엔 그렇게 다정하게 말을 걸더니…’
나는 속으로 궁금했지만, 다시 입을 떼기가 어려웠다.
단지, 저 벽에 기대서 어딘가 불편한 듯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이 신경 쓰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흐르는 그 어색한 정적.
버튼이 하나하나 초록색으로 불이 들어오며 내려가는 숫자를 바라보는 것도 이젠 지루해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그녀와 가볍게 눈을 마주치지만, 무언가 미안한 기분이 스며든다.
= 문이 열립니다 =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녀는 홀을 가로질러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어딘가 모르게 내게 서운함이 깃든 것 같은 느낌, 나를 외면한 것 같은 기분.
그녀도 아마 내가 자신을 모른 척한다고 느꼈겠지.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니면 정말 예전에 만난 사람이었다면?
그때부터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와 마주치는 것이 점점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그 서먹서먹한 인사가 불편한 만큼, 지난번처럼 그녀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 것이 더더욱 마음에 걸렸다.
아니, 왜 내가 그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정말 중요한 사람인데 말이다.
세 번째 만남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그녀와 나 둘만 남아 있을 때, 나는 용기를 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두 사람이 마주 보는 그 순간. 정적은 깊었고, 불편했다.
주변 공기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이대로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한 번 말이라도 걸어보자…'
그렇게 다짐하며 머뭇거리다, 결국 입을 뗐다.
“저… 혹시… 우리 예전에… 사귀지 않았나요?”
순간, 나조차도 내 질문에 놀랐다. 그것은 전혀 준비되지 않은 말이었다.
그냥, 내 안에 묻어있던 질문이 터져 나온 것처럼. 당황스럽기도 하고, 동시에 떨리기도 했다.
만약 잘못된 질문이라면 어쩌지?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을 듣고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살짝 미소를 띤다.
그리고는 갑자기 크고 밝은 웃음이 엘리베이터 안에 울린다.
“무슨 말씀이세요? 사귀다니요?”
그녀는 내 말을 장난처럼 받아들이며 계속 웃는다.
그 웃음소리가 더 이상 엘리베이터의 정적을 깨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서먹했던 분위기를 날려버렸다.
그러나 나로서는 웃을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왜 그녀는 나를 이렇게 잘 알고 있는데, 나는 그녀를 기억할 수 없는 걸까?
“정말요. 기억이 안 나세요?”
그녀는 내게 묻는다. 이번에는 장난스럽지 않다.
진지한 눈빛으로, 내가 그녀를 잊었다는 사실에 실망한 듯한 얼굴이다.
그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내가 무언가를 놓쳤다는 느낌. 중요한 무언가를…
그녀의 눈빛에 담긴 기대가 점점 무거워진다.
“죄송합니다. 정말 기억이 안 나요…”
내 목소리가 너무 작게 나왔나? 그녀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나는 급히 덧붙인다.
“그런데 정말, 어딘가에서 뵌 것 같기는 한데… 기억이 안 나서요.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그도 미소를 지으려 했으나, 어딘가 쓸쓸한 미소였다.
엘리베이터는 이미 1층에 도착했고,
문이 열리자마자 그녀는 나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 말할 기회를 놓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그녀는 누구였을까? 왜 나는 그녀의 얼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언제부터 내게 이런 안면인식장애가 생겼을까?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닌데도, 사람들의 얼굴을 잊어버리는 일은 여전히 내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물어본다.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다. 그들의 얼굴이 낯설기만 하다.
어쩌면 그녀와도, 어느 순간 내가 잊어버린 기억 속에서 함께했던 순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같은 공간을 서먹하게 공유할 뿐이다.
세 번 만난 엘리베이터 속 그녀.
나는 끝내 그녀가 누구인지, 그와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알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에게 내가 중요한 사람이었던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다정하게 말을 걸었겠는가?
그리고, 왜 내가 그녀를 외면한 후 서먹서먹해졌겠는가?
나에게 있어서 그 기억은 부서진 조각들처럼 아무리 맞추려 해도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조각을 맞추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얼굴을 잊는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놓친 시간들,
내가 잊어버린 인연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나의 과거를 마주하는 일이다.
그녀는 어디에서 날 기억하고 있었을까?
잘 쓰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