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글쓰기] 오늘의 한 단어 - 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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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한강 작가에 대한 모 언론의 노벨 문학상에 대한 작가 공격, 고 김대중대통령에 대한 노벨평화상에 대한 폄하' 와 관련하여 '회견' 이라는 창작글임을 밝힙니다]
2024년 10월 ㅇㅇ일 서울 프레스센터
ㅇㅇ 일보의 ㅇㅇㅇ 기잡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 후 기자회견을 치루지 않는다고 하셨는데요.
갑자기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ㅡ 네. 일단 성원해주신 국민여러분께 감사드리구요.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기자의 질문에 답변드리자면 저는 좌파도 아니고 빨갱이도 아닙니다. 하지만, 저의 부친과 저에 대해서 또한 서촌에 직접적인 테러행위가 있기에 밝혀두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근거없는 비방과 테러행위를 멈추어 주십시오. 저는 빨갱이가 앞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빨갱이가 아닙니다.
또 북한을 옹호하거나 찬동하지 않습니다.
북한은 우리국민이면 누구나 다 알다시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그런 제가 왜 좌파이며, 주사파 작가입니까?
ㅇㅇ 신문의 ㅇㅇㅇ 입니다.
먼저 노벨 문학상 축하드립니다.
김규나 작가에 의하면 "동양권이라 받은상이다. 동양권에게 주어야 했다면 중국의 옌렌커가 받아야 했다" 라는 발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ㅡ 스웨덴의 한림원이 이미 답을 했을텐데요... 인용하자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 와 '제주43사건' 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언급하면서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 평가했습니다.
옌렌커 작가님은 저도 존경하는 작가입니다. 하지만, 김규나 작가의 글은 저의 글과는 전혀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것이
논리적이지 않고 또 저에대해서 아주 저급한 표현 ('뭣도 모르는' 鳥ㅅ 도 모르는이라 표현한듯) 에 김규나 작가에 대한 이름조차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ㅇㅇ일보 ㅇㅇㅇ입니다.
노벨문학상으로 선정되신 ㅇㅇ 작가에게 먼저 축하드리고 싶구요.
ㅇㅇ 작가님은 스웨덴 한림원이 정치적이거나 물질적이라고 생각해보신적이 있습니까?
ㅡ 전혀요. 그들의 결정에 당연히 존중하며, 이 논란 자체가 그동안의 노벨상 수상자 들과 위원들에게 모욕적인것이라 생각합니다.
인터넷 독립언론 ㅇㅇㅇ의 ㅇㅇㅇ 기자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ㅡ 그 당시에는 암울했지요... 이미 저의 아버지께서 말씀하신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겠습니다.
한강 작가의 아버지이지 소설가 한승원씨 : "대통령이 축전 안 보내주기를 잘했다고 생각을 했다"며 "딸은 박근혜 대통령의 축전을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고 영광스럽게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
더 많지만... 정말 창피해서 더 적기도 그렇습니다.
기자회견을 상상하며 지어봤습니다.
벗님님의 댓글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어쩌면 가장 많은 눈과 귀가 모인 자리에서조차 기자들의 질문은
마치 한 발짝 뒤로 물러난 듯한 상투성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들은 묻지 않았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
즉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 그 이유,
작품 속에 담긴 인간의 고통과 역사적 비극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는 질문은 없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에게 던져진 첫 질문은
"왜 기자회견을 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이제 와서 하시는 건가요?"라는 표피적인 물음이었다.
이것은 진정으로 문학적 깊이에 대한 궁금증인가?
아니면, 단지 그들이 알아야 할 자극적인 정보에 대한 갈증인가?
518 민주화 항쟁과 제주 4.3 사건은 단순한 대한민국의 역사적 비극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억압받은 이들의 고통과 저항을 상징하는 상처다.
이와 같은 비극이 문학 속에서 다시금 재조명되었을 때,
그 중심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있었고,
그로부터 우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기자들은 왜 묻지 않는가?
왜 그들은 이 비극이 우리 사회,
더 나아가 인류 전체에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가?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로 자처하며,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정작 그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드는 사건들에 대해 묻지 않는다면,
그들이 어떤 답을 찾을 수 있겠는가?
한강 작가의 작품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역사의 나열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상처이자, 해결해야 할 과제로서 남아 있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었다.
어째서 기자들은 그 간극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가?
이 자리에서 질문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유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상의 의미나 작가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의심스러운 의제들 만을 던졌다.
그러나 노벨 문학상이란 그 이상의 것이다.
단지 한 작가의 업적을 칭송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 작가의 작품이 담아낸 문제들이 시대를 초월하여 어떻게 인간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성찰하게 했는가에 대한 반응이다.
문학이란 것은 단순한 서사나 사건을 넘어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창문이다.
한강 작가가 518과 4.3 사건을 그려낸 것은 단지 한 시대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처를 직면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거울이다.
그런데
왜, 기자들은 그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는가?
기자들이란 사회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사람들인데,
정작 그들이 던진 질문은 왜 이처럼 피상적인가?
정작 묻지 않는 그 질문들 속에서
그들이 과연 기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저널리즘이라는 직업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기록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라면,
왜 그들은 이 자리에서 518 민주화 항쟁과 4.3 사건이라는
대한민국의 가장 아픈 역사적 상처에 대해 묻지 않는가?
기자의 질문은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여정이어야 한다.
노벨 문학상이 주는 메시지는 그저 문학적 성과에 대한 칭송이 아니라,
그 작품을 통해 전 세계가 성찰해야 할 가치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기자들이 그저 "중국의 작가가 받았어야 했다"는 식의 비교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그저 상의 정치적 의미나 작가의 정치적 입장을 묻는다면,
그것은 진정 문학이 지닌 힘을 경시하는 태도가 아닌가?
문학은 인간의 삶을 반영하고,
그 속에서 우리는 희망과 절망, 진실과 거짓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그 과정에서 그저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하지만 기자들은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사회가 어떻게 그것을 이해하고, 또 변화시켜 나가야 할지 질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자들은 그저 표면적인 질문만을 던지고 있다.
그들의 역할은 진실을 추구하는 것인데, 그 진실을 향한 질문은 왜 사라졌는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은 그저 대한민국의 역사적 사건을 다룬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고통과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절박한 소망,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국가와 민족의 역할에 대한 성찰이다.
이런 깊은 주제에 대해 묻지 않는 기자들은 자신들의 직업에 대해 회의를 느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은 진정으로 문학을 이해하고 있는가?
잘 쓰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