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글쓰기] (10/28) 오늘의 한 단어 - 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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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4.10.2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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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살 딸아이는 어찌나 호기심과 두려움이 많은지 볼 때 마다 귀엽다.
지금 보다 더 어릴 적 일이였다. 사촌 동생들 가족들과 함께 다 같이 펜션에 놀러갔다.
그곳에서 작은 동물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체험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마침 너구리가 한마리 있었다. 그때만해도 딸아이는 너구리를 처음 본거였다.
먹이를 받아먹는 까만 손으로 잽싸게 먹이를 낚아채가는 너구리를 너무 보고 싶었는지 계속 내 품에 안겨서 게속 너구리에게 가자고 내게 요청했다. 혼자가서 봐도 된다고 했지만 내품 꼭 안겨서 안떨어지려고 했다. 그리고 너구리와 거리도 안 멀어지려고 했다.
난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오래동안 딸 아이를 앉고 너구리 앞에 한참 있었다. 결국 딸아이가 충분히 보고 놀이터를 향해 뛰어 갈때까지 꼭 안고있었다.
지금도 동물들을 오랜만에 만나면 내 손을 잡고 간다. 하지만 조금 익숙해지면 내 손을 뿌리치고 동물에게 다가가서 구경하고 만지고 놀다가 온다. 멀지않아 내 손을 잡고 가는 것도 하지 않겠지? 혼자서 두려움을 이기고 호기심을 채우고 온 뒤 조잘 조잘 이야기하는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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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님님의 댓글
가을의 끝자락,
길가에 선 나무들은 마치 노인의 머릿결처럼 색이 바래고 있었지만,
여전히 빛을 품고 있었다.
나뭇잎들이 서서히 하늘로 흩어져 흘러가던 바람에 실려 어느덧 사라지고 말았다.
오늘 딸은 아버지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언젠가, 아주 어릴 때 그녀를 품에 안고 너구리를 바라보던 그와 함께한 펜션이었다.
낡은 입구를 지나며, 그녀는 살며시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의 손은 이제 잔주름이 가득하고, 세월이 스며든 듯 푸석푸석했지만
그 손을 잡는 순간 묘하게 편안했다.
서서히 눈길을 들어 올린 아버지는 딸의 손을 맞잡으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둘은 말이 없었지만 그저 발자국이 일정한 리듬을 만들어낼 때마다 추억이 따라 걸어왔다.
산책로 끝에는 작은 울타리가 둘러쳐진 동물 체험장이 있었다.
딸은 그곳에서 아버지의 손을 더 꽉 잡았다.
그때 그 자리. 먹이통을 들고 아이들이 모여들던 그곳에 이제 아버지가 서 있었다.
딸은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손을 이끌어 먹이통을 쥐어드렸다.
아버지는 한참을 망설였다.
눈빛은 마치 무언가를 더듬는 듯 멀리 있었지만, 손끝은 먹이통에 닿아 있었다.
딸은 조용히 그 장면을 지켜보다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빠, 기억나요? 저 어릴 때 여기서 너구리 봤던 거요.”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눈빛은 아직도 어딘가 흐릿했다. 딸은 더 밝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아빠 품에 꼭 안겨서 너구리 보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때 아빠는 저를 안고선 오래오래 너구리 앞에 서 있었죠.
그래서 제가 무서움 없이 다 볼 수 있었어요.”
조금씩 작은 동물들이 울타리 안으로 모여들었다.
너구리 한 마리가 아버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손에 든 먹이를 바라보며 납작 엎드렸다.
아버지는 천천히 손을 내려 너구리의 머리 위에 얹었다.
사위어가는 햇살이 아버지의 주름진 손과 너구리의 부드러운 털을 은은하게 비췄다.
딸은 그 모습을 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거 보세요, 아빠. 저 애완동물들은 예전과 다르게 여전히 순해요.”
아버지는 머리를 끄덕이며 손가락 끝으로 너구리의 이마를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딸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가, 이거… 너구리 맞지?”
딸은 아버지의 눈을 마주 보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네, 아빠. 너구리에요.
저 옛날에 아빠 품에 안겨서 무서움 없이 봤던 너구리.”
그 대답에 아버지는 희미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웃음 속에는 이제는 기억 저편에 떠나 있던 순간들이 다시금 되살아나고 있었다.
딸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그녀가 바랐던 것은 단순히 아버지를 이곳으로 데려오는 게 아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품에서 느꼈던 그 따스함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비록 이제는 아버지가 나이 들고 기억 속의 많은 부분이 흐릿해졌을지라도,
그 따스함만큼은 남아 있는 듯했다.
조용한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 사이를 스쳐갔다.
딸은 잠시 숨을 고르며 아버지 곁에 앉아 살며시 팔짱을 끼웠다.
그 순간, 아버지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딸은 눈을 감고 그 손길을 온몸으로 느꼈다.
이 순간만큼은 시간도, 세월도 의미 없었다.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은 마치 그녀가 어릴 적 그 자리에 서서 아버지에게 기대어
너구리를 보았던 그때의 감정을 다시금 깨우는 듯했다.
“아가, 네가 나를 이렇게 잘 기억해 주는구나.
이 늙은이가 그때는 너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이제 와선 조금씩 잊어버리려나 보다.”
딸은 아버지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작게 대답했다.
“아니에요, 아빠. 아빠는 저를 잊지 않아요.
이렇게 여전히 기억하고 있어요.”
아버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마치 저 멀리, 세월의 끝자락에서 그가 품어 온 무언가가 그에게 닿은 것처럼.
딸은 그날 아버지와 함께 동물들을 한참 바라봤다.
너구리, 오리, 그리고 몇 마리의 작은 새들까지,
아버지와 함께 나눴던 그 모든 추억들이 다시금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 작은 동물들을 쓰다듬는 아버지의 손길에는
마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한,
어린 딸과 함께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렇게 둘은 오래도록 그 자리에 앉아,
마치 시간조차 잠시 잊은 채,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모든 이야기를 나누었다.
잘 쓰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