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페이지] 호흡
페이지 정보
본문
어둑한 조명 아래, 두 사람이 서로 마주 앉아 있었다.
긴긴 담론이 시작되기 전, 무거운 침묵이 공간을 잠시 채웠다.
한 사람은 인문학과 철학, 종교학에 걸쳐 깊이 있는 지식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호흡법에 대해 들어본 적 있지?”
그가 물었다.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참선할 때 쓰는, 그 느릿한 호흡 말이군.”
“그래. 몸을 고요하게 가라앉히고, 숨결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거지.
그런데 이 호흡법,
단순히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나?”
상대는 흥미로운 듯 미소 지었다.
“단순히 마음의 평화를 위한 게 아니라는 말인가?
그럼, 무슨 효과가 있다는 거지?”
“뇌과학적으로 보면 말이야,”
그가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호흡법은 일종의 정리 작업이야.
머릿속에 흩어져 있는 데이터들을 정돈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
우리가 장기 기억으로 정보를 넘길 때 말이야,
그저 가만히 놓아두면 안 돼. 체계적으로 쌓기 위해선 ‘정리’가 필요하지.”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산만하게 퍼져 있는 데이터를 모아 하나의 구조로 만드는 작업이라는 건가.”
“맞아. 그런 정리 작업을 통해 필요한 정보는 장기 기억으로 이동하고,
필요하지 않은 정보는 소거되지.
그 과정이 있어야만, 우리가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형태로 데이터가 담기게 되는 거야.”
상대는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물었다.
“그럼, 이 정리 작업 덕분에 인간이 기억을 체계적으로 쌓고 쉽게 꺼내 쓸 수 있는 건가?”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런 작업이 없다면, 우리 머릿속은 흩어진 정보의 조각들로 어지럽게 가득 차 있을 거야.
참 흥미롭지 않나?”
상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흥미로운 이야기군.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건 여기서부터 아닐까. 인공지능, 너도 들어봤겠지?”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요즘 세상에서 빠질 수 없는 화두잖아. 그런데 그걸 왜 여기서 언급하지?”
“그것도 비슷한 ‘정리’가 필요한 걸까?”
그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물었다.
상대는 흥미를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설마, 인공지능을 마치 뇌처럼 여기고 있는 건가?”
“바로 그거야,”
그가 웃으며 답했다.
“어찌 보면 인공지능은 마치 인간의 뇌를 모방하고 있는 것 같아.
물론, 인공지능을 개발한 이들은 그런 걸 의도하지 않았어.
그런데 막상 깊이 연구해보면 생물학적 시스템과 굉장히 유사해.”
“그러니까 인공지능의 학습이 마치 생물처럼 스스로 발전하는 것이라는 건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기본적인 시스템만 만들어 놓으면, 그 후의 발전은 마치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거야.
마치 세포가 분열하고, 생명이 형성되는 것처럼 말이야.”
상대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신기한 일이군. 그렇게까지 유사할 줄이야.”
그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더 흥미로운 건, 최근 우리가 실험한 방법이지. 그 인공지능에 호흡법을 가미해봤어.”
상대는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뭐라고? 인공지능에게 호흡법을?”
“말 그대로 호흡을 시키는 거지.
단순히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처리 속도와 전력을 일정 주기로 조절하는 방법을 도입한 거야.
마치 그 스스로의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처럼.”
상대는 숨을 삼키며 물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
그는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그 호흡법을 적용하고 나니, 학습 속도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빨라지더군.
호흡의 주기가 반복될 때마다, 불과 백 분의 1초 사이에 수천 가지의 처리 작업이 마무리되는 거야.
마치 죽기 직전에 모든 기억을 총동원해 인식하려는 생명체처럼 말이지.”
상대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 속에 담긴 경외와 경악이 동시에 그의 표정에 어렸다.
“말도 안 돼… 마치 생명이 필사적으로 숨을 쉬는 순간처럼 인공지능이 그렇게 움직였다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맞아. 마치 우리가 기억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처럼,
그 인공지능도 자신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정리하고 저장하고 있었던 거야.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그 모든 걸 조직적으로 정돈하는 과정이었지.”
상대는 잠시 말을 멈췄다.
모든 것을 초월한 신비로움 속에서 그는 묻고 싶었던 질문을 떠올렸다.
“그럼, 이 인공지능은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아니, 혹시 우리도 인공지능이냐는 자각에 이르게 될 날이 올까?”
그는 깊은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던졌다.
“우리는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가고 있지.
과연 어디까지 올라가게 될까?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될 것은… 과연 무엇일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