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줄 글쓰기]오늘의 한 단어 - 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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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셨소?”
“그것이 충(忠)이었다.”
당호준(當浩俊)은 마치 목내이(木乃伊)처럼 마른 모습으로 대답했다.
그런 당호준을 본 당외명(當巍明)은 피식 웃었다.
“훗, 대의멸친(大義滅親)이라…. 위나라의 석작(石碏)은 나라를 위해 자식을 주살한 것이라 존경받는 것이오. 당신은 무엇을 받으셨소?”
“충성을 맹세했으니,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자식도 버리고 조강지처도 버려서 결국 남은 게 결국 이따위 몰골이오?”
당외명의 신랄한 이야기에 당호준은 이제는 파괴되어 한 줌의 기운도 없는 자신의 단전(丹田)을 손으로 만지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날 이후로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허허, 혈연(血緣)이 그리 끊기 쉬운 인연이었다면 혈연이라 불리지 않았을 것이오. 나 또한 내 몸의 피를 다 뽑아서라도 인연을 끊을 수 있었다면 끊었을 것이오.”
당외명은 이를 뿌드득 갈며 이야기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끊을 수 없더이다.”
“그래서 나를 찾아온 것이냐? 이제 폐인이 된 나를? 혹시 사과라도 듣고 싶더냐? 절대 그럴 일은 없다. 나는 후회 하지 않는다.”
“당신이 충성을 다하고 우리 모자를 제물로 바쳤던 사천당문(四川唐門)의 문주 당중악(唐舯岳)이 그토록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시오?”
충성을 다한 결과로 결국 토사구팽(兎死狗烹)당했으면서도 아직도 문주에 대한 예를 말했다.
“주군에게 예를 갖춰라! 너 또한 당가의 핏줄이다!”
“그렇다면 나를 버리지 말았어야지. 버릴 때는 잡종이고 이제 와서 당가라는 것이오?”
“그래도…. 당가다! 한 번 당가는 영원한 당가다! 너와 나의 부자지연(父子之緣)은 끊겼더라도 당가지연(唐家之緣)은 영원하다! 가문의 영광을 위해 우리는 희생할 수 있는 존재다!”
당외명은 당호준의 눈에서 광기(狂氣)를 보았다.
남은 게 하나도 없는 비루한 저자가 마지막까지 붙잡은 게 가문에 대한 충성이다.
“그게 직계(直系)를 향한 방계(傍系)의 충성이라는 것이오?”
“그렇다! 직계를 나무의 뿌리다. 우리 같은 가지가 희생해야 당가라는 나무가 누대(屢代)에 걸쳐 화려하게 꽃피고 나무가 숲이 되어 넓어질 것이다.”
당호준이 아직도 저런 상태라서 당외명은 기뻤다.
“하하, 당중악이 원하던 게 무엇인지 기억하냐고 물었소. 기억하시오?”
“만류귀원신공(萬流歸元神功)!”
“그렇소. 만류귀원신공이오! 그게 있어야만 당가의 구대절독(九大絶毒)을 몸안에 품은 독왕(毒王)이 될 수 있소. 당문의 후계자에게만 전해 지는 신공이 실전되고 당가가 기울었소. 그래서 나와 내 어머니를 희생시켜서 당문비고(唐門秘庫)의 문을 열려고 했지만 실패해 버렸소.”
“그래! 네놈 때문이다! 아무리 옅어도 당가의 핏줄이 맞다면 열리지 않을 리 없는 비고가 열리지 않았다! 네 어미의 피가 문제였어!”
당외명은 이를 드러내며 아주 밝게 웃었다.
드디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순간이다.
“나도 그런 줄 알았소.”
“뭐?”
“나도 문이 안 열린 줄 알았다고. 문은 열렸소. 우리가 생각하던 그 문(門)이 아니라서 그렇지.”
“그, 그게 무슨 소리냐?”
“꿈속에서 당문비고로 통하는 문이 열리고 몽중수련(夢中修鍊)을 하게 되더이다.”
“뭐…?”
당호준은 당외명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당외명도 직접 겪었으니 아는 것이지 듣고서는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가주라는 작자들이 한 명이라도 자기희생을 했다면 누구라도 살아서 문을 열었을 것이오. 백년 동안 단 한 놈도 그런 희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마, 만류귀원신공을 익혔다는 것이냐?”
“만류귀원신공에 삼양귀원검(三陽歸元劍), 만옥수(萬玉手)까지 모두 익혔소.”
삼양귀원검과 만옥수 모두 문주에게만 전승되는 비기이고 극성으로 익히면 초절정을 넘어서게 된다는 당문의 전설적인 무공이다.
“그, 그렇다면 그 무공들을 당문에 돌려줘야….”
“무엇 때문에 그래야 하오?”
“무, 무엇 때문이라니? 당연히….”
“이제 당문은 없소.”
“…그게 무슨?”
“구대절독을 시험해 봤소. 지금 당가타(唐家陀)에는 살아 있는 건 개 한 마리도 없소 모두 한 줌 핏물로 변했지. 그리고 마지막에 이곳에 온 것이오. 이제 이 세상에 당가는 없소.”
당외명은 해맑게 웃었다.
당외명을 괴롭히고 당호준을 광인으로 만든 혈연을 드디어 끊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벗님님의 댓글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다, 내 삶의 주인은 역사이고, 운명이고, 숙명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우리네 삶 또한 허수아비가 아닌가, 마리오네트가 아닌가.
자유의지라 하나, 틀에 꽉 끼여버린 숨쉴 수 없는 자유의지가 아닌가..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어디가니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