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페이지] 응급구조팀 플래티넘_미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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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창 너머, 벚꽃 위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양립할 수 없는 계절이 겹쳐진, 모순 같은 풍경.
삶 또한 이처럼, 부조리했다.
대부분의 중증 외상 환자들은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가혹한 운명이란 룰렛의 장난 속에서
가난하고, 불운하게 태어났지만,
그들은 삶에 감사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성숙하고, 근면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세상에서 조용히 멸시당했고, 끊임없이 차별받았다.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나
더럽고, 위험하며, 고된 일을 떠맡은 끝에
결국 사고라는 불행의 악마가 덮칠 때,
팔, 다리, 때로는 목숨까지 잃었다.
그리고 ‘예산’이라는 미명 아래, 조용히 버림받았다.
‘자 또 한번 출동이야…’
트리스는 휠체어에서 몸을 옴겨 내리며 생각했다.
가브리엘 슈트와의 동기화에 앞서 슈트는 점차 트리스의 혈류를 가속시켜 나갔다.
뉴럴 커넥트 로 연결된 신경 API 는 초인적인 반응속도를 자랑하였으며
그녀의 장애로 인한 육체 신경계의 퇴화는 오히려 다른 뉴럴 커넥트 시술자를 능가하는 슈츠 코어와의 동기화 수치를 보장해 주었다.
‘가브리엘 슈트의 인공 근육들은 동기화율이 높을수록 제원 이상의 성능과, 힘을 뽑아내준다.’ ‘저주가 축복이라니 모순이지….’
지나, 트리스
그녀는 재능있는 단거리 스프린터 였으나 루게릭병(근위축증)에 걸린뒤,
다시한번 뛰고싶어, 뉴럴 커넥트 수술을 받고, 플래티넘_미닛 팀에 들어오게 된다.
가브리엘 슈트는 뉴럴 커넥트 수술을 받은 소수만이 착용할 수 있는, 특수 외골격 슈트다. 그중에서도 정식 응급구조사로 훈련받은 인원만이,
‘플래티넘_미닛’ 팀에서 출동 자격을 얻는다.
응급구조헬기의 음영 지역과 응급차의 속도의 한계를 커버하기 위한 팀이었다.
이로써 트래픽에 구애받지 않으며 응급구조헬기보다 느리지만 응급차에 2배에 달하는 평균 속도를 확보하게된다.
응급차로 이송시 환자들의 이송 시간은 평균 245분.
결국 4시간 5분이 걸린다.
전원(타 병원으로 이송)을 두번 이상 하면 그들은 이미 죽은 목숨에 가깝다.
그녀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달려도
시스템이 극복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죽어간다
이건 그녀의 노력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니였다.
한국의 응급 의료체계에서 32.6%의 소생 가능했던 응급 환자들은…
551명중 179명들은 매일매일 매분 리프트 슬링에서 싸늘하게 죽어갔다.
‘예방 가능한 사망’이라는 통계치 하나로
그들은 겨우 숫자로, 쓸쓸하게 자리매김한 뒤 사라져갔다.
시스템 부제로 현실의 부조리함은 트리스가 환자를 실어와 살릴때마다 병원에 적자를 안겨줬으며,
병원의 적자는 자본주의 사회의 직장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이자, 타 부서 공동체들의 적이였다.
팀 전체가 언제나 배척받고 냉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팀장 이스카리옷은 언제나 예산으로 건강보험공단과 다투며 하루를 시작했다.
모멸감과 서러움속에서도 하루하루 할일을 하며 살아갔다.
응급구조팀 플래티넘_미닛 소속되어 환자들을 이송하며 생명을 살릴때마다 더욱 미움받는 모순되는 고독한 싸움을 하는 그녀.
몇번이고 이 병원 저 병원 전원을 거듭하고
등에 점점 꺼져가는 생명을 느껴가며
항상 울지만 눈물 범벅으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가 포기하는 순간 살수있는 사람들이 죽는다… 도망치면 안돼…’
천천히 방염 롤스크린이 올라가며 살을 도려내는 듯한 추위와 바람을 느꼈다.
스타팅 블록위에 올라 이스카리옷의 교통 통제를 기다렸다.
‘4월에 벚꽃과 눈이라니…’
스며드는 한기에, 병약한 몸은
허리를 살짝 굽히며, 이미 만성이 되어버린 기침을 반사적으로 내뱉었다.
"크 콜록콜록.."
익숙해진 긴장감 속에 지나는 눈앞을 응시했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깊게 들이마신 숨을 내뱉었다.
마음은 한결 차분해졌고, 새하얘진 머릿속에서는 다음 절차를 생각하며 말했다.
"동기화를 시작해 줘"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싱크율을 올려갑니다]
10.. 24.. 31
인공 근육의 근섬유들이 과 충전되며 하나하나 깨어나기 시작했다.
섬유들은 몇 배로 부풀어 오르며 근육의 아데노신 삼인산(ATP) 와 같은 충분한 전자를 머금어냈다. 인간을 초월한 각력이 완성되어갔다.
또 그녀의 눈과 귀와 촉각등, 전신의 오감이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왜곡된 시각에 빛의 향연을 느끼며
주위 모든 사물의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느껴졌다.
86.. 94.. 101…
그리고 인간의 최대 능력을 넘어서는 그 한순간, 마치 모든 시간이 멈춘 듯했다.
입에서 나오는 수증기는 멈춰버렸고, 그녀는 공기의 진동까지 느낄 수 있었다.
인공 근육이 충분한 전자를 머금고 넘쳐 누설된 전류가 번쩍이며, 몸을 감싸올라갔다.
기침은 점차 사글어들었고
눈빛에는 섬광이 깃들어 있었다.
…
이스카리옷:
“매교사거리. 교통사고.
환자… 여섯 살 추정, 여아.
의식 흐림. 양측 대퇴부 골절 가능성.
교통 통제 들어갔고,
내비에 위치 전송했어. 바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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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가 차에 치였다.
내장은 으스러지고, 머리는 처참히 파열되었다.
“조금만 참아… 제발…”
리프트 슬링에 아이를 들쳐매던 순간, 문득 이상한 위화감이 스쳤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
교통 통제를 요청한 뒤, 곧장 아주대병원으로 내달렸다.
아이는 너무 야위어 있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고, 체구는 또래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았다.
더럽고 늘어난 옷은 그마저도 피와 범적으로 물들어 있었다.
헐거운 옷 틈새로 드러나는 멍자국들이 계속 눈에 밟혔다.
그 흔적들은 아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너무도 또렷이 말해주고 있었다.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진실이, 작은 몸 위에 고요히 새겨져 있었다.
몹시 침울한 기분에 사로잡혔고,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표정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에 이어진 또 하나의 불행은,
그 작은 생명에게 삶을 붙들 힘조차 남기지 않았다.
아이는 몇 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간호사 : “보호자는 누구시죠?”
울음을 참는 게…
정말, 너무 힘들었다.
매번 마주치는 현실의 좌절감을 애써 삼키며,
트리스는 조용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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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너의 잘못이 아니잖아..."
"..."
“내가 좀 만 더 서둘렀으면…”
그녀는 죄책감에 조용하게 흐느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부서에서 일하며 살면, 매일되는 사람들의 죽음과, 그 과정에 이르는 혹독한 삶의 조건, 비극들을 보면 점점 세상의 색깔이 사라져간다.
행위에 충분하게 납득이가는 사회의 조용한 폭력과 비참한 삶의 조건들.
그냥 운명의 룰렛 이었을뿐, 나 또한 이런 삶을 부여받았으면 아마도 똑같이 되었으리라.
가끔 생각이 든다.
내가 사람들을 구하는게 이유가 있을까?
어짜피 언젠가 다들 죽을텐데.
자살을 위해 투신하여 한강에 빠지고도 사람의 무의식중 파충류의 뇌와 본능들은 살려고 한다.
수많은 자기의 바다속에 의식은 겨우 빙산의 일각이다.
분화된 의식속에 한순간 자살이라는 가장 큰 결정을 내렸음에도 그보다 더 거대한 무의식과,
무한에 가까운 집단 무의식은 언제나 영혼에 외친다.
‘살라고. 다 잘될꺼라고.’
심 정지후 뇌사 시작까지 4 분, 플래티넘 미닛에 적절한 심폐소생술을 제공하는건 한정된 시간 만큼이나 촉박하고, 어려운일이다.
과다 출혈자의 혈액 수혈은 30분, 뇌졸증은 3시간 정도가 주어진다.
그녀는 특별하다. 뉴럴 커넥트 수술자. 슈트를 운용할땐 말 그대로 초인(超人). 서울내 반경을 10분안에 주파할 능력을 지녔지만.
그 가능성이 오히려 그녀의 영혼을 좀 먹는게 아닐까.
모순되게도, 그 누구도 이런 고통받는 비참한 삶을 원하지 않을꺼야.
"거기서 계속 쭈그리고 있을꺼야?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줄께"
그녀의 휠체어를 꺼내며 말했다.
"고마워."
손잡이를 밀며 언제나 처럼의 도보 길을 따라 걸어갔다.
머리카락 사이로 목 뒤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거대한 흉터와 인터페이스.
전자 커넥터들이 빛을 받아 작게 반짝였다.
그녀는 외부에 나올때면 늘 머리를 풀어 흉터를 가렸다.
겉으로 내색하진 않지만, 스스로 흉측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설령 타인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해도.
“가끔은… 너무 지쳐." 그녀가 낮게 말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기다렸다.
"내가 구한 사람들, 그중 일부는 다시 같은 선택을 하기도 해."
어떤 사람들은… 내가 막아도 소용이 없었어. 그럴 때마다 생각이 들어. 내가 이걸 계속해야 하는 걸까 구조가, 정말로 의미가 있는 걸까?"
"나는 루게릭병에 걸린뒤, 내 죽음 앞에 정말 살고싶었어..."
그녀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이 조금씩 녹아 손끝을 적셨다.
"하지만…" 그녀는 입술을 지끈 깨물었다
"그래도, 그녀도 그 순간만큼은 살고 싶어하는 게 보였어."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아니었으면, 그 순간조차 없었을 거야. 네가 있었기에 누군가는 다시 살아볼 기회를 얻은 거고."
"프로파일링중이니 나중에 필요한 정보는 알려줄께 너무 슬퍼하지마."
"그래."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그녀가 아이스크림을 한입 더 베어 물었다.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구구크러스터가 역시 최고야."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하, 너 도대체 몇살이야!~”
그녀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캐러멜이 이게 최고라고, 흠~ 가자, 센터 사람들이랑 시아가 쉬프트 기다리겠다."
"아이스크림들 안녹게 넣어줘봐."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녀의 뒷모습이 조금은 가벼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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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한국 중증 외상 환자들을 지켜낼수 있을것인가?!
아이들의 미소를 지켜라!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싸워라!
왜냐하면 그녀는 성배이자 즐거운 시지프스니까!
응급구조팀 플래티넘_미닛
개봉박두~(예정없음요.)
현이이이님의 댓글의 댓글
몰랐는데, 이국종분 주장하는 헬기주차장도 이재명분이 다 건설 도와주셨더군요. 역시 위인입니다.
그냥 하루하루 잘 살면 되는거 같다는, 결론이 서글프면서도 또 안도가 됩니다~
팬암님의 댓글

언젠가 "일산 국민의료보험공단 병원" 에 갔을때 십대~20대초반 여자 아이가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나오는 "타스" 같은 기계를 이용해서 팔 다리를 움직여 혼자 걷고있는 모습을 봤어요. 실례될까봐 보는듯 안보는듯 고개를 돌리고 마음속으로 응원해주었지요. 걸을때 얼마나 웃고있는지 참 아름다운 소녀였습니다.
트리스랑 그 소녀가 하나로 투영되네요.
생각난김에 검색해보니 제가 봤던 기계가 이거였네요.
https://www.nhimc.or.kr/conts/104005024000000.do
현이이이님의 댓글의 댓글
맞습니다. 보행기계가 프로토타입이라 저렇지 기술이 발전해서 세련되지면 많이 변할꺼 같아요 ㅎㅎ
벗님님의 댓글
운명인가, 우연인가.
어쩌다 마주친 현실에 낙담하듯 무너져 내릴 때가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현실,
몇 번을 되돌아본다고 해도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는,
달라질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고 또 부정하고.
체념하고 수긍하는 험난할 길을 걸은 후에야 결국 받아들이게 된다고 하죠.
운명이었을까, 우연이었을까.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를, 사랑스럽기를..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