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구조팀 플래티넘 미닛(Platinum Minute), 4. 싱클레어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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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싱클레어의 고민
사람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모든 걸 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이젠 팀이 유지되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나는 하루하루, 내색하지 않기 위한 연습을 하며 버티고 있다.
환자 한 명을 구할 때마다
우리 팀의 행정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양의 서류가 쏟아진다.
나도 그 일부를 받아서 직접 처리하기 때문에,
행정절차의 서류의 양은 나도 알고있다.
인력수급도 문제다.
응급구조사로 3년이상 경험이 있는 뉴럴 커넥트 수술자는 귀하다
게다가 AW140 조종 경험까지 갖춘 인재라면 더더욱 귀하다.
수요도 적지만 공급도 전무하다.
AW140 가브리엘라 슈트의 운용에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출동할 때마다 소모품을 전부 교체해야 하고,
리액터 유지비만 해도 만만치 않다.
한 번 출동에 들어가는 비용은 천만 원을 가뿐히 넘는다.
응급헬기보다는 저렴할지 몰라도,
역시 정부의 예산 지원 없이는 운영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모든 팀원들은 항상 과부하 상태다.
응급실 뺑뺑이라고 불리는 전원(타 병원으로 이송) 끝에
초과 운용으로 매번 코피를 흘리며 돌아오는 트리스를 볼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팀원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건 아닐까.
너무 미숙했던 나는, 몇 번의 요청이 묵살당하고 불합리한 명령에 맞서 다툰 끝에
우리 팀과 나는 어느새 공공의 적이 되어 있었다.
중간관리자인 내게 남은 선택지는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부탁하는 것뿐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계속되는 정치판 속에서 무력함만 커져갔다.
나와 팀을 향한 뒷말과 모욕은 점점 더 견디기 힘들어졌고,
결국 나는 관계자들과의 접촉 자체를 줄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게 또 다른 악순환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환자 앞에서,
출동한 대원에게 그냥 돌아오라고 말해야 했던 순간엔—
정말 아무 말도, 명분도 없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우리가 계속 사용해온 소모품들에 대해
급여 지급을 인정하지 않거나, 점점 삭감하고 있었다.
팀이 소속된 상위부서에서는 이를 토대로 감사를 한다며 적자를 힐난하기 바빴다.
내가 좀 더 사람들과 잘 어울렸어야 했는데 나 같은놈이 팀의 장을 맡아서 사람들이 고생하는건지 죄책감이 말이 아니다.
“어이 얼굴에 다 티 나, 그러지 마”
시니어 엔지니어 아스 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액터랑 소모품은 내가 좀 손봐둘게. 몇 번은 더 재사용 가능하게 튠해놓을 수 있어.
출력을 70%로 제한하면 몇 번은 더 쓸 수 있지.
이 정도면 소모품비, 20%는 아낄 수 있을 거야.”
“AW140이면 이 정도 출력이어도, 충분히 구급차보단 빠르다고.”
“…아, 고마워요. 홍차도 비품에서 빼도 될까요?”
“악! 그건 안 돼! 난 티 드렁크 없이는 일 못한다고!
…아니, 농담이야. 믹스커피 카페인정도면 충분하지.”
은하영웅전설을 정말 재미있게 읽은거 같은 그는 슬퍼하는척 장난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아스는 주름진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고,
그 모습을 보자 나도 마음 한켠이 조금은 환기된 것 같았다.
자, 다시 서류와 메일 더미 속으로 들어가야겠지.
시작으로는 이번 달 비품 사용내역과 청구내역을 전부 맞춰서
행정 서버에 올려야 한다.
"자 홍차 삭제..."
옆에 경위서라고 쓰여진 서류가 보였다.
하아... 차라리 일만 많았더라면 하루가 더 나았을텐데...
벗님님의 댓글

겉다리에 머물던 것이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운데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는
무심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의 그 심정이 되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하고 자문해보게 됩니다.
'업'이 아닐 때가 좋았지, '쌀'이 아닐 때가 좋았지.
무거워진 어깨, 잔뜩 힘이 들어간 손..
재미있는 글 잘 보고 갑니다. ^^
팬암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