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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추악한 개독교인" - *주의 개독교 신앙관으로 쓴 글
팬암

Lv.1 팬암 (211.♡.60.65)

2026년 6월 24일 PM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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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저는 매일 4명의 자녀들에게 묵상한 내용을 편지형식으로 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랜만에 이곳에도 글 남겨봅니다.
ㅡ *주의 : 개독교 신앙관에 입각한 글이므로 불편하신분들을 패스하세용~

요나서 4장 4절.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요나서 4장 9절.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사랑하는 ㅇㅇ,ㅇㅇ,ㅇㅇ,ㅇㅇ 아.
한.. 10년전인가? 아빠는 고모부와 대화중에
노무현 대통령때의 "공동어로구역" 이라는 일을 가지고
대화를 나눈게 떠오른다.

아빠의 고모부는 강화도 사람이고 서울 목동의
어느 대형교회에 다닌지 오래되어
고모부 역시 권사라는 직책으로
신앙생활과 또 여러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다.

고모부는 가족모임중에 나를 보면
어떠한 이슈에 대해서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고 질문하고 아빠는 아빠가 생각하는 상식선에서
대답하곤 하였다.

무슨 대화중에 노무현 대통령때의 '공동어로구역'에
대하여 얘기하였고
아빠는 아빠의 생각을 대답하였다.

아빠의 소신대로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에 가려서 북한의 어민들이 배를끌고 나오지 못하니
노무현의 공동어로구역 논의는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 평화노선을 선택한것이
잘한일이다 라고 말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자 고모부는 무척 화를 내면서
왜 풍부한 어족자원을 북한놈들에게 내어주느냐 호통을 쳤던 기억이 난다.

아빠는 속으로 그의 생각이 매우 편협하다 생각했다.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하였지만 그날은 매우매우 편협하다 라고 규정하였다.

오늘 본문내용은 '요나' 라는 사역자가 물고기 뱃속에서
자기가 살아난 은혜(2장)에는 감사했지만, 원수 니느웨가 살아난 은혜(3장)를 보고는
죽고 싶을 정도로 분노하는 장면이다(1절).

나의 구원과 축복에는 너그러우면서
타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인색한
우리 안의 '편협한 신앙'을 바라볼 수 있다.

심지어 하나님께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3절) 이라고도 말한다.

이에 4절에 네가 성내는것이 옳으냐? 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이에 요나는 9절에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라고 한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예수님의 시선에 머무르거라.

너희는 기억하여라.

ㅡ 내가 선 자리가 바뀔지라도 나는 같은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겠노라 라는 마음가짐을.

‘내’ 은혜는 당연한 자리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남’의 은혜는 분통 터지는 자리에서 바라보는
이기심의 시선을 경계하거라.

또 박넝쿨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시선을 경계하거라.
니느웨 백성 12만 명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할 때는 눈 하나 깜짝 안 하더니,
고작 자기 머리 위의 햇볕을 가려주는 박넝쿨 하나에 '크게 기뻐하고'(6절),
그것이 사라지자 '죽는 게 낫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요나에 대해 (9절).
묵상을 하면서
과연 예수님은 북한을 바라볼때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바라보고 사랑으로 생각하였으면 좋겠다.

3. 기도

함께 기도하자.

주님. 내 영혼이 살아난 은혜는 당연하게 여기면서 타인을 향한 주님의 자비에는 인색했던
편협함을 회개하오니,
내 눈앞의 박넝쿨 같은 안락함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예수님의 애끓는 시선을 품게 하소서.

전광훈, 손현보 같은 추악한 신앙인에에서
멀리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시선을 함께 바라보는 사랑의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 (1)

  • 벗님

    벗님 Lv.1

    06.26 · 211.♡.72.215

    정말 신실하시네요. ^^

    저는 무교이긴 하지만,

    어느 종교에 한정하지 않고, 좋고 괜찮은 부분들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받아드립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내가 아픈 만큼 다른 이의 아픔을 소홀히 하지 마라'와 같은 메시지는

    살아가는 동안 내 것으로 체화하고 싶다는 마음이 진하게 듭니다.

    천국과 지옥, 윤회와 같은 걸 믿지는 않지만,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 한 번의 삶이다'라고 마음 먹는다면

    '이 삶을 보다 아름답고 멋지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니,

    그냥 막.. 사는 것보다는 좋지 않을까, 이런 순작용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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