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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당 응원] 서울의 결핍
비대면남친

Lv.1 비대면남친 (210.♡.235.3)

2026년 7월 27일 PM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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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결핍"이라는 주제로 예전에 와이프 글쓰기 모임에 제가 대리로 작성한 글입니다.

메인에 "글쓴당" 게시물이 보이길래 글쓴당의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로 올립니다.

화장실 같은데서 "똥쌀때" 생각 없이 읽기 좋은 짧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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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결핍

‘아뿔사…!’

마흔 언저리쯤 되어보이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자의 낯빛이 서리맞은 모기마냥 사색이 되었다. 그런 남자를 종종걸음으로 지나치며 곁눈질로 슬쩍 본 여자의 표정에서 조차 깊은 애석함이 감돌았다.

‘이차가 막차인데…’

남자는 분명 눈을 뜨고 있었고 그의 눈은 그를 종종 바삐 지나치는 사람들을 부지런히 뇌로 전송하고 있었으나 남자의 뇌는 연신 하얀 백지만 뱉어내는 잉크 나간 팩시밀리처럼 아무것도 그려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놈 탓이었다. 살면서 처음 서울에 왔는데 초저녁부터 내려가냐며 그를 아주 이치도 모르는 백치로 매도 했었다.

‘육시럴 만수놈, 서울 올라가서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도록 고향 한 번 안내려 온 놈이 막차시간은 어찌나 또 기가 막히게 외우든지!’

난생 처음 올라온 서울에서 가방을 잃어버린데다 만수놈이 막차시간 이십분 전에만 도착하면 된다며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덕분에 이제 남은 시간도 십분 남짓,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할까 말까 얼치는 동안에 이제 지나가는 사람조차 쉬이 안보였다.

안되겠다, 표파는 이에게 한 번 부탁이라도 해보자 하고 여전히 사색인 얼굴로 표파는 여자에게 다가가 입을 열려는데, 옆자리서 먼저온 부랑자처럼 보이는 놈이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차비 삼천원만 꿔달라고 옆 매표원 한테 진상을 놓다가 쫒겨나는 통에 한층 수척해진 얼굴로 왠지 모르게 비굴해진 목소리를 내었다.

“내일 포항가는 첫 차가 몇 시에 있습니까?”

막차시간에 내일 첫차 시간을 물어보는 놈이라믄 옆엣놈 처럼 에둘러서 돈 꿀려고 하는 작자렸다.

“6시에 있습니다. 이제 막차시간이 지나서 문을 닫아야 해서요.”

매표원은 냉랭한 답을 남긴 채, 서둘러 매표소 셔터를 내렸다.

‘이 선생요,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다들 깍쟁이들이라 안캅니까. 코 안베이게 조심하이소.’

남자는 문득 알고 지냈던 포항역 매표원이 서울행 기차표를 끊어주며 했던 우스갯소리가 생각나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힌 콧잔등을 얼른 쓸어 내렸다.

‘분명 그 국밥집이렸다.’

딱 한 잔만 더 하고 가라고 마지막에 술국에 소주 한 병을 나눠마셨던 동대문 앞 그 국밥집에서 가방을 놓고 온 것이 확실했다. 내일이라도 기차표를 사서 돌아가려면 가방에 든 돈이 꼭 필요했다.

이수일이 심순애를 뺏어간 그 김중배놈을 찾으러 갈 때 이랬을까? 가슴이 연신 뛰는 통에 귀는 맥박소리에 먹먹하고 늦가을녁 시린바람에도 연신 식은땀을 흘려대면서도 남자는 한달음에 국밥집에 당도했다.

일흔은 되보이는 국밥집 노파가 그륵그륵하며 문고리를 잠그려던 찰나였다.

“이보시오, 혹시 두고 간 까만 손가방 못 보셨소?”

노파는 가만히 남자를 훑어보더니 까만 손가방 만큼 까맣게 흑빛이 된 남자의 얼굴에 고개를 저으며 남자가 부리나케 뛰어오며 지나친 가로등 밑을 가리켰다.

가로등 밑에는 검은색 손가방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는데 반쯤 열려 있는 지퍼 사이로 햐얀 내의가 삐져나와 있었다. 누가봐도 가방안에 꼭 있어야 할 돈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인듯 보였고 아무 쓸짝에 없는 내의만 그대로였다.

남자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가방을 집어들었다. 잠시 가방을 뒤적거린 남자의 등에 새하얀 식은땀이 위에서 아래로 날카롭게 내리그어졌다.

‘이제 어떡하나…?’

남자는 울고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나 무슨영문인지 가로등에 남자의 눈이 그렁그렁하게 반짝였다. 먼 발치에서 남자를 보고 있던 노파가 다가와 검은비닐 봉지 하나를 남자에게 내밀었다.

“오늘 남은 국밥인데 이거 가져가요.”

남자의 그렁그렁한 눈이 가로등에 빛나는 바람에 노파의 마음이 동했으리라.

“...고맙습니다.”

노파는 떠났고 남자는 저도 모르게 서울역으로 걸었다. 막차도, 차표를 살 돈도 없었지만 집에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겠지.

문닫은 서울역 앞에서 잠깐 서성이다가 남자는 벽에 기대 털썩 주저앉았다. 퀭한 눈으로 초점없이 하늘을 올려다 봤다.

‘밤인데 밝다 했더니, 보름이구나.’

남자에게 꽉찬 보름달은 마치 검은 하늘에 휑한 구멍이 뚫려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이보슈, 뭐 필요하오?”

남루한 행색의 예순쯤 되보이는 노인 하나가 남자에게 슬쩍 다가오며 물었다.

낯선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 남자는 고개를 돌려 노인을 바라봤다. 그러자 남자의 눈에 노인과 여태껏 보이지 않았던 곳곳에 자리를 잡고 눕거나 앉아있는 노숙자들이 보였다.

“...네?”

남자가 되묻자, 노인은 자연스럽게 남자의 곁에 주저 앉으며 한숨 쉬 듯 말했다.

“뭐 필요한 게 있냐고 물었소.”

남자는 질문이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필요한 것이 있나 잠깐 생각에 잠겼다.

“나는 필요한 것이 마침 있는데, 당신 필요한 것과 바꿉시다.”

“네?”

노인은 남자가 들고 있는, 하지만 자신이 들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검은 비닐봉지를 가리켰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 필히 국밥 냄새고 아직 김이 새어나오는 것을 봐선 먹을 때를 놓치지 않은 것 같은데, 당신은 그것을 가지고도 먹을 낌새가 없는 것을 보니 배는 불러보이는구려. 그러니 그 먹을 것을 나에게 주면 내가 당신이 필요한 것 하나를 드리리다.”

여지껏 술과 먹을 것을 양껏 먹었던 남자는 노인의 말대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다만, 남자는 아직 자기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여기 드세요. 저한텐 국밥이 필요 없나보네요.”

남자는 봉지를 노인에게 내밀었다. 딱히 배고프지도 않았고 마음도 심란한데 노인과 대거리 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노인이 국밥을 먹는 동안에는 서울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겨진 신세에 대한 외로움을 덜 수 있을것 같기도 했다.

노인은 비닐봉지를 뺏듯이 낚아 채더니 익숙한 손놀림으로 국에 밥을 말아 한숟갈 입에 퍼넣었다.

“맛이 일품이구만”

“...”

노인은 연신 숟가락을 노련한 지휘자의 지휘봉마냥 놀리며 국밥을 퍼먹었고, 중간 중간 추임새를 넣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남자는 그 모습과 보름달을 번갈아 바라보며 멍한 눈을 옮겨 냈다. 노인이 국밥을 반쯤 먹었을 때, 남자는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그동안 식은땀을 줄줄 흘린데다 늦가을 밤의 한기가 옷섶에 베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거라도 입는게 낫지 않소?”

노인이 가리킨 곳에는 아직 여미지 않은 손가방에 여전히 삐져나와 있던 내의였다.

‘서울은 북쪽이라 춥다캅니다. 이거 얇은 내의인데 꼭 넣어가요.’

하루 서울 갔다 오는데 부산스레 아침부터 옷장을 뒤적인 아내가 기어코 넣어놓은 내의였다.

“허, 무당이랑 결혼 했나봅니다.”

남자는 저도 모르게 탄식하듯 노인에게 말했다. 노인은 무슨이야기인지 알겠다는 듯 씨익 웃어보인 후 다시 국밥에 숟가락을 옮겼고 남자는 구석배기 조경수 뒤에서 내의를 입고 나와 다시 노인 옆에 앉았다.

“따뜻하네요. 얇은데…”

“있는 사람들은 모르지, 얇디 얇은 내의 한 장이 얼마나 따뜻한지~ 흐흐”

노인은 국밥을 먹고서도 한참을 남자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남자도 처지가 처지인지라 싫지는 않았다. 국밥값으로 말동무를 얻은셈 쳤다.

드르륵-

애초에 두어시가 넘은 새벽이었던지라 금세 주위가 부산해지더니 매표소의 문이 열렸다. 날도 밝아왔다. 보름달이 밝아서 어슴프레 밝아오는 동녁을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다.

“후…”

남자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매표소는 열렸지만, 표를 살 돈은 없었다.

“이거 받으슈”

노인이 종이 한장을 남자에게 건넸다.

“...허…?”

남자는 종이를 건네 받아 읽고는 외마디 탄성을 낮게 질렀다.

종이에는 또렷하게 ‘서울-부산 정기권’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댁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검표소는 통과할 수 있을거요. 아니면 부산가는 사람한테 팔아보든지…여기 이렇게 살다보면 가끔 하나씩 줍게 되지”

남자는 금세라도 절을 올릴 기세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이걸 주셔도 됩니까? 값으로 치면 비싼 물건인데”

“어차피 여기 노숙하는 나같은 사람이 팔다 들키면 괜히 도둑으로 몰리기 십상이지. 내가 부산가서 노숙할 것도 아니고… 나한텐 필요 없는 물건이오. 그리고 애초에 서로 필요한걸 맞바꾸기로 이야기 했잖소.”

노인은 남자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어적 어적 발길을 옮겼고 남자는 연신 노인에게 인사를 해대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남자는 더이상 바랄게 없는 마음으로 검표소를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댓글 (2)

  • 벗님

    벗님 Lv.1

    16:02 · 175.♡.156.146

    노인은 검표소로 뛰어가는 젊은이를 힐끔 쳐다보더니, 혼잣말을 했다.

    '그나저자 저 젊음이... 이름이 영 마음에 걸리긴 하는 구먼. 적힌 걸 보니 김춘자..던데.'

    '어찌 잘 넘길 수 있을테지.'

    재미있는 글 잘 보고 갑니다. ^^

  • 비대면남친

    비대면남친 Lv.1 → 벗님 작성자

    16:05 · 210.♡.235.3

    예전에는 저런 티켓에는 이름이 적혀있진 않았습니다. ㅎㅎ

    그래서 훔쳐가기도 하고 다른사람것을 빌려쓰기도 했죠.

    그리고 김춘자라면 어떻게 잘 넘길 수도 있을지도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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