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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페이지]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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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2024.07.04 14:24
분류 한페이지
49 조회
1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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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침이 움직이다.
57, 58, 59, 00.
벽면을 붉게 물들였던 LED 등이 번쩍 하더니 녹색으로 바뀌었다.

짧게 몇 번인가 들리는 잔 기침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묵직한 바리토너가 한 곡 뽑으면 공간을 가득 채우며 흘러넘칠텐데, 허함만이 가득하다.

녹색 LED등이 점열되자 마자, 몇몇은 바로 고개를 숙이며 마치 종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다.
머리, 아니 목구멍 속까지 차올랐던 이야기들을 토해해는 듯 했다.
몇몇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분명 어떤 걸 써야지 하며 마음 먹었을 텐데,
이 불빛, 이 분위기가 그들의 머릿 속을 들춰내며 한 손으로 들어내버린 듯 했다.
잔뜩 준비해왔던 모든 것들을 한 순간에 강탈당한 듯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자신감도 함께 빼앗겨버린 것일까.

그래서..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나 역시도 펜을 잡았다.
글을 시작해야 하는데, 첫 줄을 써야 하는데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는다.
그래, 이럴거라 예상했다. 난 프로페셔널이 아니잖아.
이 대회에 참석한다고 마음 먹었을 때부터 이런 모습의 나를 예상했었다.
평소 글쓰기라고 하면, 어둠은 짙게 깔린 공간, 장막으로 나를 감추로, 나를 잊고,
그렇게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는데,
그래야 비로소 글이 술술 풀렸는데, 여기에서는 그런 건 꿈도 꿀 수 없다.
수 십 명이 자신의 작은 책상에 붙어서 세기의 명작을 뽑아내고 있지 않은가.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의 끈, 살짝 닿기만 해도 핏방울이 맺힐테지.

자,
이렇게 주위만 둘러볼 수는 없다.
나 역시 참가자이지, 심사원이 아니지 않은가.
펜을 잠시 내려본다. 손가락을 오무렸다 폈다를 반복하며 손을 풀어본다.
길게 호흡을 들이 쉬고, 내쉬어본다.
다시 펜을 잡는다.

자, 첫 줄을 써보자.
한 줄 읽고나면, 눈을 못 땔 만큼 치명적인 첫 줄을 써 보자.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ㅈ...'


끝.

댓글 1

적운창님의 댓글

작성자 적운창 (42.♡.63.161)
작성일 07.05 00:21
...시작한 행운의 편지다. 과연 행운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137여 년간 행운의 편지를 추적한 영국 옥스퍼드 대 사회과학 현상조사팀에 따르면,
놀랍게도 행운을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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