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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페이지] 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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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2024.07.08 13:06
분류 한페이지
72 조회
1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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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째다.
훈련을 나온 것도 아닌데,
멀쩡한 세탁기를 두고 왜 난 이렇게 빨랫감을 들고 개울가에 나와서,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며 빨래를 하고 있는 것인가.
손가락이 얼어붙는다.

홍콩 영화였던가, 게으름뱅이처럼 보이는 스승이 방 안에서 농땡이를 치며
밥 해라, 물 길러라, 빨래 해라.. 쓸모도 없는 온갖 잡일들을 제자에게 시키는데,
알고 보니 이 쓸데없다고 여겼던 모든 잡일들이 결국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스승님의 깊은 뜻이 담긴 수련이었다는 사실을 훗날 깨닫게 된다.
그런데, 그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얘기고,
이 추운 날 이렇게 야외에서 빨래를 하라고 하는 건 아무리 봐도 그런 스승님의 수련과는 무관하다.
그냥 개고생시키는 거지. 전기세를 아껴보겠다는 속셈이 아니냐.
하아.. 물이 차가워서 거품도 잘 안나는데.


김 차장은 뒷짐을 지고 계곡을 천천히 내려온다. 방망이질 소리가 계곡을 울린다.
부당한 지시를 따르고 있다는 생각에 입을 꽉 다물고 박 대리는 빨랫감을 두들기고 있다.

'어허, 그렇게 쎄게 두들기면 구멍 나겠어.'

박 대리가 고개를 돌린다. 재밌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내려오는 김 차장.

'아, 차장님.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아, 뭘..?'

방망이를 내려놓고, 아니 옆으로 휙 던져 놓고 박대리가 말을 잇는다.

'아니, 세탁기가 망가진 것도 아니고, 이 추운 날 왜 밖에서 빨래를 해요?'
'허허, 뭐 시원하고 좋기만 하구먼. 봐봐, 공기도 좋고 잠도 깨고..'

박 대리가 울컥 화가 났는지 벌떡 일어나려고 하는 것을 김 차장이 어깨를 누른다.

'그래, 그래. 내가 잘못했네. 그냥 난 또 이렇게 시원하게 한 번..'
'시.. 시원이요? 차장님! 이거 정말 제가 마음만 먹었으면..'

'알았네, 알었어. 나머지는 올라가서 빨자고..'

박 대리는 울분이 올라오는 걸 겨우내 참아내고 있었다.


밥 한 번을 지어봤을까, 빨래 한 번을 해봤을까. 성격 좋고 괜찮은 친구이긴 하지만,
내 딸래미를 맡기기에는 아직 부족한 게 너무도 많다.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외동으로 자라, 구김 없이 반듯한 녀석이지만,
자신의 역할만 할 줄 알지, 아내의 역할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는 이 친구에게
아무 것도 경험하게 하지 않고 내 아이를 맡겼다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친구야, 이제 겨우 빨래 하나 끝낸 것 뿐이네.'


* 시점 변화를 연습 삼아 짧게 써봅니다.


끝.

댓글 1

적운창님의 댓글

작성자 적운창 (42.♡.63.161)
작성일 07.08 21:01
빨래! 중요하죠. 잘 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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