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리새우 (125.♡.170.42)
2026년 7월 9일 PM 02:49
운전을 시작한 지 어느덧 3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얼마 전 차를 바꾸고 나서 문득 옛날 생각이 나더군요. 처음 운전을 배우던 그 시절과 지금을 비교해 보니, 참 많은 것이 변했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제가 처음 몰던 차는 마티즈 수동변속기 차량이었습니다. 왼발로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넣고, 클러치를 서서히 떼면서 액셀을 밟아야 했지요.
언덕길 신호 대기라도 걸리면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뒤차와의 간격을 곁눈질하며 사이드 브레이크를 살짝 당겨 놓고 출발하던 그 긴장감은 겪어 본 사람만 아실 겁니다. 그러다 자동변속기가 보편화되면서 그냥 D에 놓고 액셀과 브레이크만 밟으면 되는 세상이 왔지요.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신세계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전기차를 타 보니 한술 더 뜨더군요. 전진과 후진마저 차가 알아서 판단해 주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왼발은 이제 완전히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에어컨과 히터도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덥다 싶으면 다이얼을 돌려 바람 세기를 조절하고, 춥다 싶으면 또 손을 뻗어 온도 레버를 움직였지요.
옆에 탄 여자친구가 최대한 편하게 느끼도록 1~2분 마다 설정을 계속 바꾸어 가며 점수 따려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또, 여름철 뙤약볕에 세워 둔 차에 타면 창문부터 내리고 에어컨을 최대로 틀어 놓고 한참을 달려야 했습니다.
지금은 온도만 맞춰 놓으면 차가 알아서 풍량과 방향을 조절해 주고, 심지어 타기 전에 미리 실내 온도를 맞춰 놓을 수도 있습니다.
라이트는 또 어떻습니까? 터널에 들어갈 때 수동으로 켜고, 나오면 끄고, 깜빡 잊고 라이트를 켠 채 내렸다가 다음 날 아침 방전된 배터리 앞에서 전화기 들고 긴급출동 부르던 기억이 다들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이제는 어두워지면 알아서 켜지고, 시동을 끄면 알아서 꺼집니다. 와이퍼도 마찬가지입니다. 빗줄기가 굵어지면 속도를 올리고 가늘어지면 늦추던 그 손놀림이 필요 없어졌지요. 비의 양을 차가 감지해서 알아서 움직여 주니 말입니다. (테슬라 빼고)
주차 브레이크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힘껏 당겨 올리던 사이드 브레이크가 어느새 버튼 하나로 바뀌더니, 이제는 그 버튼조차 누를 일이 없습니다. 기어를 P에 넣으면, 아니 차에서 내리기만 하면 알아서 채워지니까요.
열쇠도 이젠 필요 없지요?
예전에는 열쇠 구멍에 키를 꽂고 돌려야 시동이 걸렸지요.
한겨울에는 몇 번을 돌려도 엔진이 부르릉거리기만 하고 걸리지 않아 애를 태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버튼 시동이 나왔을 때 참 신기해했는데, 지금 타는 차는 아예 시동 버튼 자체가 없습니다.
휴대폰을 들고 다가가면 문이 열리고, 앉아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그게 곧 시동이고, 내려서 걸어가면 알아서 문이 잠기더군요.
처음에는 문을 안 잠그고 온 것 같아 몇 번이나 되돌아가 확인했습니다. 30년 몸에 밴 습관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 않더군요.
안전 사양도 격세지감입니다. 예전에는 오로지 운전자의 눈과 반사신경이 전부였습니다.
졸음이 오면 창문을 열고 뺨을 때려 가며 달렸지요.
지금은 차선을 벗어나면 차가 잡아 주고, 앞차가 급정거하면 차가 먼저 브레이크를 밟아 줍니다.
사각지대에 차가 있으면 경고를 해 주고, 후진할 때는 뒤에서 다가오는 차까지 알려 주더군요. 기계가 사람보다 먼저 위험을 알아채는 시대가 된 겁니다.
이제는 자율주행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스스로 차선을 유지하고 앞차와의 간격을 조절하며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운전이라는 행위 자체가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FSD가 허용되면 더욱 편하지겠지요.
돌이켜 보면 운전이라는 것이 참 많은 손과 발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왼발은 클러치, 오른발은 액셀과 브레이크, 오른손은 기어와 에어컨, 왼손은 핸들과 라이트와 와이퍼. 온몸이 바빴지요. 그 바쁨이 하나둘 사라지고, 이제 운전자는 점점 승객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편해진 것은 분명 편해졌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클러치를 떼는 발끝의 미세한 감각으로 차와 대화하던 느낌, 언덕에서 밀리지 않고 출발에 성공했을 때의 그 뿌듯함과 고속도로에서의 터질듯한 엔진음도 나와 차가 같이 이 길을 달려가는 여정을 함께하는 기분이었지요. 요즘 차는 확실히 똑똑해졌지만, 그만큼 운전의 재미랄까, 손맛이랄까 하는 것은 조금씩 옅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내 손과 발로 온전히 차를 다룬다는 감각 말입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고, 기술은 계속 발전하겠지요. 아마 10년쯤 뒤에는 지금 이 글을 읽으며 "그때는 그래도 핸들은 사람이 잡았지" 하고 추억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클러치 밟던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이 변화의 한가운데를 지나올 수 있었던 것도 나름 복이라면 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안전 운전들 하시기 바랍니다.
최근 글
댓글 (23)
-
팜팜3
07.09 · 106.♡.6.184
- 채
채리새우
→ 팜3 작성자
07.09 · 125.♡.170.42
공감합니다!~^^
-
해해방두텁바위
07.09 · 166.♡.5.43
조금 다른 영역으로 눈을 돌리자면 직업 운전자들은 자율 주행 등에 따라 일자리가 위협받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점점 커지고 있기도 합니다. 해외에는 무인택시가 이미 확대 중이고, 서울에도 심야버스 노선에 무인운전 버스가 다니고 있지요. 이제 택배나 화물 쪽도 무인 물류시스템이 확대되고 자율 주행이 확대되면 사람의 힘을 더 쓰지 않아도 될 수 있겠구요. 기술 발전에 따라 발생하는 명과 암이 공존하고 있는만큼 이런 부분들도 논의가 더 활발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채
채리새우
→ 해방두텁바위 작성자
07.09 · 125.♡.170.42
비단 운전 뿐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인공지능이나 로봇에 의해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계에 밀려나는 실직자는 구매력이 감소할 것인데 이러한 사람들의 비율이 작으면 사회적인 문제가 덜하겠지만 제법 높은 비율의 사람들이 기계에 의한 실직으로 구직이나 경제 활동을 못하게 된다면 그것 역시 큰 사회적 혼란이 올 수 있을 듯 합니다. 기본소득이든 무엇이든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미
미항여수
07.09 · 112.♡.172.67
저는 클러치 밟던 건 그다지 그립진 않은데,
가끔 모든 순간 풀악셀 밟던 건 가끔 그립습니다. ㅋㅋ.... 뉴코란도 290s. 드럽게 안나가서요 ㅋㅋ
겨울에 돼지꼬리 쳐다보다가 제발 시동 걸려라 하고 기도한것도 기억나네요.
- 채
채리새우
→ 미항여수 작성자
07.09 · 125.♡.170.42
구형 LPG 차량들도 겨울에 시동 걸기가 참 힘들었지요 ㅎㅎ 차 안은 냉골인데 시동도 안걸리고 맘은 급하고 ㅎㅎ
-
인인터루드
07.09 · 172.♡.10.42
결국 언젠가는 운전 = 승마 이렇게 변해가겠죠
소수 부자들이 즐기는 취미정도
- 채
채리새우
→ 인터루드 작성자
07.09 · 125.♡.170.42
지금 부지런히 즐겨야(?) 겠습니다.
-
얼얼남인즐
07.09 · 211.♡.131.158
4단수동으로 운전을 시작해서 수많은 자동차들을 거쳐 왔지만, 아직도 그때 그 캬부레타 털털이가 그립네요.
- 채
채리새우
→ 얼남인즐 작성자
07.09 · 125.♡.170.42
스타킹으로 팬 밸트 응급 처치가 가능했던 그 때 였지요!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차가 더 스마트해질 수록
운전은 점점 더 안전해 지는것 같아요
이제 운전은 마치 승마처럼 점점 즐기는 영역이 되서
더 기계적이고 아날로그한 드라이빙이
더 고급 취미처럼 될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