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버지는 제가 군입대 전 까지 해병대 나오신 걸 입 밖에 꺼내신 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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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이 218.♡.158.97
작성일 2024.07.0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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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군 입대 할 나이가 되었을 때. 


아버지께선 "너 해병대 가" 라고 항상 말씀 하셨습니다. 


전 막연하게 힘든데 왜 더 힘든 해병대를 가야 하나? 싶었고. 

제가 군 입대 할때 처음으로 인터넷에서 입영날짜를 지정하는 게 도입 되어서 


어찌어찌 육군으로 입대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입대 하는 전날까지 

"해병대를 가지 왜… " 하며 못내 아쉬움을 토로 하셨습니다. 


제가 입대하고 처음 면회를 오시는 날. 

원래는 면회소에서 기다리시고 제가 내려가면 되는데 

대대장님 지시로 면회 오신 부모님들을 전부 부대 막사로 올려 보내셨고


전혀 예상에도 없던 부모님과 식사를 부대에서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소대장님이 부대 행정실로 저희 부모님을 모시고 

이런저런 부대 소개를 하다가 저희 아버지께 여쭈었습니다. 



"실례지만 아버님은 어느 부대를 나오셨습니까?"



"아.. 저 해병댑니다"




그 소리를 들은 소대장이 "필승!!" 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빳빳하게 저희 아버지께 경례를 했습니다. 

당시 저희 소대장은 해병대 병에서 소위 임관을 한 특이 케이스였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아휴… 아닙니다." 하면서 자리에 일어나서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셨고

소대장은 뻣뻣하게 "영광입니다 XXX기 입니다" 하며 악수를 받았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말하는 군생활은 

행복한 나날들이라고 하셨습니다. 


8남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서

제대로 교육도 못 받고 동생들 건사하려고 연탄을 나르고, 막일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군대에 들어갔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삼시세끼를 먹여주는 곳에 들어가니 너무나 행복했다고 하셨습니다. 


내무반에 치약뚜껑에 머리를 박고 밥을 퍼먹어도

실미도에 훈련하러 가서 칼 하나로 뱀 잡아 구어 먹을 때에도. 

내 끼니 걱정없이 사는 게 그렇게 행복했다고 합니다. 


그럴거면 군대에 말뚝 박지 그러셨어요? 라고 여쭤본 적이 있는데. 


그럴때 아버지께선 "쯥… " 하는 탄식과 함께 고개를 저었습니다. 





제대를 하고 아버지께선 매년 여름 저와 동네 보신탕집(상호가 보신탕집이었습니다)

에서 같이 저녁을 먹곤 했습니다. 

술도 안 드시는 분이 여름엔 몸보신을 해야 한다며 저와 같이 보신탕집에 가서 사슴고기 전골을 먹었습니다. 



어느날은 술이 거하게 취하신 분들이 오셔서는

저희에게 몇마디 말을 건내시는데 


저는 좀 귀찮아서 잠깐 말상대 해드리고 가시라고 했습니다. 


4명이었는데. 그중 두명이 오셔서는 자기네가 해병대 전우회다. 이 동네 우리가 다 지키고 그런다 하시길래

아버지께선 "네 수고 하십니다." 하고 아무말 없으셨습니다. 



"어~ 보아하니 연배도 있어 뵈이는데? 군대는 어디 나오셨소?"


"그냥 바다 있는데 근무 했습니다. "


"서쪽? 동쪽?? 에이 육군이면 바다 근무를 안할텐데?"


"해병대 XXX기 입니다."


"!!!!!!!"




그 술에 취한 사람들이 갑자기 무덤에서 부활한 강시 마냥 바짝 서서 "필승" 구호를 외치며 경례를 하더군요. 


아버지께서는 예전 소대장에게 하셨던 것 처럼 경례도 받지 않으시고



"거.. 술 많이 드셨는데 건강 생각하십시요"



하시고 저와 자리를 나오셨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동년배 보다 기수가 빠른건 자기가 그만큼 빨리 군대를 가서 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왜 저를 해병대에 보내고 싶어 했는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봐라.. 저 술에 취한 사람들도 아빠가 기수가 높다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인사를 하지 않냐? 

해병대가 물론 악습도 많지만. 아빠는 네가 어디가서도 정신을 놓지 않고 우뚝 설 수 있는 저 정신을 

배우길 바랬다. 그래서 해병대를 가라고 한거야."




"해병대 정신이란게 기수 챙기고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냥 거들먹 거리는 게 아니라. 세상 풍파에도 해병이란

단어만 들으면 내가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자부심. 이 세상에 개차반 같은 사람들이 많아도 해병이라 하면

자세를 바로잡고 떳떳함을 재무장할 수 있는 자세. 세상 사람들이 저게 뭐야 손가락질 해도 떳떳하게 필승하고 경례를 하는게 그게 해병대 정신이다."




"그런데.. 세상에 나오면 저렇게 해병대 정신을 잃어 버리고 살아서.. 아빤 어디가서 해병대 나왔다고 안해."



그 말씀을 하시곤. 아버지는 그 이후 두번 다시 그 가게에 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농사일을 도우러 가서. 

TV에 채해병 이야기가 나오는데. 티비를 끄시고는 리모컨을 붙잡고 상념에 빠지신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과연 아버지께서는 어떤 슬픔을 느끼실까… 생각해봤습니다. 




자부심을 가져야할 해병대 후배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준 사단장은 

해병대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것 입니다. 

댓글 23 / 1 페이지

우주난민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우주난민 (89.♡.101.226)
작성일 07.08 17:33
수필 한 편 읽은 느낌이네요... 왠지 서글픕니다 ㅠ

하산금지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하산금지 (220.♡.69.181)
작성일 07.08 17:37
아버님이 원하시던 그 정신은 이미 물려받으셨군요. ^^

mutul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mutul (114.♡.24.133)
작성일 07.08 17:38
아버님의 슬픔이 너무 크시겠네요.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 집니다.

부서지는파도처럼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부서지는파도처럼 (120.♡.110.181)
작성일 07.08 17:41
멋진 아버님이십니다. 😌

Typhoon7님의 댓글

작성자 Typhoon7 (118.♡.73.57)
작성일 07.08 17:44
그 해병대의 명예를 시궁창에 쳐박았죠.
https://biz.heraldcorp.com/view.php?ud=20240624050364

지속가능한노가다의억군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지속가능한노가다의억군 (223.♡.248.198)
작성일 07.08 18:25
@Typhoon7님에게 답글 필요할때 죽을수도 있겠지만 그때 만큼은 아니었지요.......

Cornerback님의 댓글

작성자 Cornerback (106.♡.193.139)
작성일 07.08 18:15
저랑 반대시네요

저는 아버지 해병대 나오신거 오래전부처 알았고
아버지께서 겪으신 해병대의 내부 폭행 부조리 너무 심해서 개병대라 하시는 소리 듣고자라 해병대 갈 생각은 아예 없었어요
어머니 왈 '너무 불쌍해서 듣고있으면 눈물이 났다' 정도

그래서 아버지도 해병대든 뭐든, 어디 가는거 관여 안 하셨습니다만
제가 군대를 늦은 나이에 가니, 아들이 걱정되고 눈에 밟히셨는지 강화도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 피의자 변론 맡으셨었네요

인생은경주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인생은경주 (218.♡.64.138)
작성일 07.08 18:16
별들은 이미 똥별이 되었습니다.

지족지족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지족지족 (223.♡.148.155)
작성일 07.08 18:18
제가 겪어본 해병대는 두가지 부류가 있었습니다.
해병대와 개병대.

도무지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도무지 (180.♡.10.157)
작성일 07.08 18:25
추천하려고 로그인했습니다. 해병대의 선한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멋진 아버지시네요.

문없는문님의 댓글

작성자 문없는문 (119.♡.18.31)
작성일 07.08 18:32
아버님은 멋진 해병대셨지만...
저는 대학교때 대학로에서 휴가나온 술취한 해병대 들에게 이유없이 두들겨 맞은적있습니다.
여자친구 발로차는거 막다가 제 등을 차고서는...
옆에 지나가는데... 자기는 고생하는데 연애하는 자유로운 대학생 보니 화났나봅니다.
다시 떠올리니 화가나지만...  케바케라고 생각해야죠.. 이 글을 왜봤나 싶습니다.

Icyflame님의 댓글

작성자 Icyflame (211.♡.240.220)
작성일 07.08 18:41
아버님 멋지시네요.
말씀하신대로 기수로 거들먹거리고 똥군기 부리는게 해병대 정신은 아닐텐데, 방송 나오는 어떤 사람이나 임모씨 같은 장교들이 하는짓을 보면 어이가 없습니다.

뱃살대왕님의 댓글

작성자 뱃살대왕 (121.♡.67.115)
작성일 07.08 18:42
그게 사실 해병대정신이라기보다는 군인정신아닐까 합니다.
아버님은 멋진 신념을 가진 분이셨네요.
근 30년전 학교에서 복학해서 해병전우회하는 애들보면 술쳐먹고 지들끼리 충성거리며 윗기수로 보이는 애들이 아랫기수애들 굴리고 옆테이블에 피해끼치곤 했죠.
당시 과후배중 얌전한 애였는데 거기 모임에서 후배기수애들 굴리는 거 보고 나중에 한소리했네요.
해병의 자부심을 갖는 건 좋은데..그게 이상한 쪽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래비티님의 댓글

작성자 래비티 (220.♡.99.52)
작성일 07.08 18:46
정말 멋진 아버님, 진정한 해병대이십니다.
그리고 글 참 잘 쓰십니다. 잘 읽었습니다.

조형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조형 (211.♡.145.193)
작성일 07.08 18:48
수필같아서 술술 읽었습니다. 요즘 시국에 좋은 글이네요.

북명곤님의 댓글

작성자 북명곤 (211.♡.64.148)
작성일 07.08 19:01
똥별이 진급과 영달에 눈이 뒤집혀 해병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폴셔님의 댓글

작성자 폴셔 (121.♡.117.112)
작성일 07.08 20:04
저 감동받았습니다 ㅠㅠ
아버님도, 심이님도 참 대단한 분이십니다

장군멍군님의 댓글

작성자 장군멍군 (108.♡.52.134)
작성일 07.08 20:24
지금은 저 빨강 명찰이 참 부끄럽죠
요즘은 볼 때마다 그냥 한심해 보입니다
이 지경이 된게 과연 누구 때문일까요?
굳이 말 안해도 다 아실거예요

nice05님의 댓글

작성자 nice05 (223.♡.250.45)
작성일 07.08 21:16
늘 빌런은 소수죠. 그리고 그것들이 전체를 욕 먹이고요.

굥사마 하나가 이 나라를 아작성 박살을 아주 성공적으로 내 가고 있는 걸 봐도 그렇고요.

정의롭고 선의 가득한 나머지가 전체 조직이 좋은 소리 듣도록 애쓰고 있는 건 아무래도 빌런 한두개 보다 표가 덜 나죠.

아버님 입장에서 채해병 생각하면 가슴 답답하시고 임군 자식 생각하시면 열불 나고 그러시겠습니다.

바탕골님의 댓글

작성자 바탕골 (175.♡.204.64)
작성일 07.08 21:52
흠..... 참 좋은 글입니다. 오랜만에 진심이 바탕인 글이네요.

시간금방간다님의 댓글

작성자 시간금방간다 (183.♡.119.117)
작성일 07.08 22:13
채상병사건때문에 해병대지원수도 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댓글쓸려고가입함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댓글쓸려고가입함 (1.♡.1.49)
작성일 07.08 22:37
아버께서 이 시대 어른이시네요. 한 편의 수채화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

ㅋㅋㅋ님의 댓글

작성자 ㅋㅋㅋ (1.♡.116.133)
작성일 07.09 08:40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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