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호의원님 프로그래머 경력도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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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정계 입문 이전[편집]
22살이 되던 1995년, 전역 후 돌아간 고향집은 아버지의 빚 보증으로 잠겨있었고, 연락조차 닿지 않았다. 가족들과 연락이 끊어진 상황에서 고향 전주시를 떠나 무작정 군 생활을 보낸 서울특별시로 올라왔고, 서초구 방배동의 어느 신문배급소에서 10개월간 일했다. #
꿈은 가질 수 없었고, 대학 진학도 어려웠다. 그러나 항공사의 계약직 고졸 사원으로 입사하여 조종사 인사기록 카드를 수기로 작성하는 단순 업무로 1년간 일하면서, 그들의 대학이나 전공을 손수 적으며 예상외로 조종사의 대학과 전공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도 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꿈과 대학 진학을 꿈꾸게 되었다. 대학 진학 이후 조종사 시험을 준비하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최종 시험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10]
이후 수능을 친 뒤 1996년 연세대학교 이과대학 수학과(96학번)에 입학했고, 이후 생활과학대학 생활디자인학과를 복수전공했다. 연세대학교 진학 후에도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기에 주유소, 공사판, 커피숍, 여행사 가이드, cf 단역, 과외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하면서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살았다. 본인의 회고에 의하면 하숙비를 아끼기 위해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던 주유소 한켠에서 살았을 정도로 빠듯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본인에게 과외를 받던 한 학생의 학부모가 시간 허비하지 말고 사업을 해보라고 초기자금을 대주는 형태로 그에게 거액을 건넸고, 이대 앞에 2평짜리 아이스크림 가게를 차려 사업을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가게는 나름 잘 되었는지 전세 자취방을 구하기도 했다.
졸업 후에 희망직종이 아닌 안정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공기업인 데이콤ST[11] 프로그래머로 입사했다. 하지만 1년 뒤 민영화되어 한국거래소(현 코스닥)으로 이직했다.[12] 애널리스트로 통계 업무를 담당했는데 언론 인터뷰와 시황방송(상품·주식 매매 상황을 알려주는 방송)을 맡기도 했다. 곧잘 하기에 선배들이 방송을 하라며 권유했고, 본인도 고민하다가 방송 분야 이직을 결심하여 애널리스트 경력 4년만에 퇴사했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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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출신인줄만 알았는데..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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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230991님의 댓글의 댓글
제2의조국이네요
못하는게없어...
ThinkMoon님의 댓글
다앙근님의 댓글의 댓글
이렇게 적혀있네요
ThinkMoon님의 댓글의 댓글
세상여행님의 댓글의 댓글
한준호 의원과 류호.. 그 물건이었습니다.
민구니님의 댓글
희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