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권리당원 탈당이 완료되었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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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권리당원이셨는데…
뒤늦게 발견한 담도암.
지난 9개월간 열심히 투병하셨는데,
유전자검사를 통해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 암세포라는 최종 결과로
이 나라 가장 큰 병원 중 하나인 곳에서 치료중단을 선언하더군요.
다른 병원을 열심히 찾았으나, 지금의 사태로 3차병원은 초진거부, 관련진료과가 있는 유명한 2차병원도 초진거부.
(난 네 년놈들의 처절한 끝을 꼭 보고 말꺼야. 아니 그렇게 매일 기도하고 저주할꺼야.)
큰 병원에서 실패 또는 중단한 암환자들을 끝까지 돌보는 것으로 소문난 교수를 만나기 위해
어머니의 주거지인 부산으로 내려와 다른 병원에 입원해서 기다렸지만,
그 교수의 대학병원 또한 초진거부, 입원한 병원에서도 치료불가판정 받고,
의사가 말한 시간보다 3주 빠르게 떠나셨네요.
어머니와 저, 둘 뿐인 단촐한 가족.
다행히 어머니 형제분들이 있어서 외가의 도움으로
어제 잘 모셨습니다.
한 때 야도였으나 지금은 변질된 부산, 그리고 저짝들만 찍는 외가 형제들 사이에서
홀로 고군분투한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 같은 미안함이 있었지만,
부고를 알리기 위해 열어본 전화기.
평소 관리차원에서 제 지문과 저만 알 수 있는 뻔한 비번으로,
문자와 카톡에서 어머니의 자취를 되짚어 갔습니다.
그 과정속에서 만난 ‘XX(지역명)오빠‘.
73세의 노인이 투병 중에 이렇게 다정하게 이야기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었던 문자는
2월 이후로더이상의 주고받는 문자가 없더군요.
투병 중이었던 3월 초 즈음에 어머니가 외삼촌과 총선관련 대판 싸우고 연락안한다고 했었는데,
XX(지역명)오빠 라고 저장된 분은 ’꼰머‘의 표본, 외삼촌이셨더군요.
국힘 찍으라는 전화에 대판 싸우고 연락두절.
그 외삼촌이 7월 중반에 병문안 왔을 때,
눈을 떠 외삼촌 얼굴을 확인하고 그냥 다시 눈을 감고 돌아누우시던 어머니.
투병 중에 저와 의견차이로 많이 다퉜습니다.
30년 넘게 해온 일에 대한 애착과 미련으로 쉽게 일을 놓지 못하는 모습에
만날 때마다 제가 잔소리를 했습니다.
그냥 하고싶으셨던 대로 다 해드릴껄…
LA에 있는 바람에 지키지도 못한 임종.
의사가 말한 시간도 짧았는데…
지난 3일동안, 홀로 2줄 차고 입관, 발인, 화장을 거치며
세상 못난 아들 만나서 어머니가 고생한 것같아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후회에 자책을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꼭 낫게 해준다고 약속했었는데…
엄마, 내가 미안해.
후~~ 피곤한데 잠도 안오고 눈물은 그치지도 않고 힘드네요.
‘상주’라는 자리를 통해
고마운 분들도, 진심으로 애도와 위로를 해주는 분들도 많이 뵈었지만,
상주한테 20년 지인이라는 보험관리하는 분은 ‘사망보험금’ 얘기를 꺼내지를 않나, (시간많은데 왜…)
전 첨뵙는어머니 친구라는 분은 어머니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지를 않나,
직업의 난이도를 고려해도 장례지도사라는 인간들이 말하는 꼬라지가 견디기 힘든 수준도 있더군요.
옆에서 많이 도와주신 어머니 동생, 이모님이 선택한 장소였지만… 이 또한 후회만…
지난 날의 경험에서 느낀 한국의 장례문화 때문에
언젠가 하게 될 장례식만큼은 잘 해드리겠다고 다짐했는데,
그마저도 그렇게 못해드렸네요.
이 와중에 유툽이 선정해서 보여주는 쇼츠에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https://www.youtube.com/shorts/eLiYf2GT1ec
2024년에 가족분들과 함께
종합건강검진들 꼭 받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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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뎃)
LA에 있었던 이유는 하는 일이 ‘해외출장’이 아주 잦습니다.
한국에선 쉬는 날, 어머니의 큰병원통원과 올라와서 지내신 암요양병원으로 출퇴근을 했었습니다.
다리운동이 뭔지 배워 보지도 못한 분을 상대로 짐볼(작은 사이즈)을 등에 대고 하는 스쿼트도 가르쳐 드렸습니다.
튼튼해지는 당신의 다리를 신기해 하며 근처 공원도 마실가는 좋은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배액관을 달고 나니 힘들다 하셨지요.
엄마 집에서 유품을 정리하는데, 보물찾기 같은 재미가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나오는 엄마의 연도별 증명사진을 찾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렇게 고운 분이셨는데…
입대하고 엄마한테 보낸 입대 후 사진도 나오네요.
제가 일본문화를 즐겼던 증거도 찾았습니다. 사전커버에 이따구 짓을 해 뒀네요.
오성이야기에 한 때 미쳤었던… 이걸 다 가지고 계셨…
그리고,
원글의 ‘네 년놈들’은 딱 2명을 일컫는 말입니다. 딱 그 두 년놈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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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코카콜라님의 댓글
저도 바다 건너에 살면서 늘 걱정하는건 한국에 계신 부모님입니다. 자식이라고 하나 남은거 가까이서 보지도 못하니 얼마나 마음이 쓰이실지..
돌아오시기 전까지 남은 가족들과 시간 많이 보내셔요.. 물론 처리해야할 일이 잔인하리만큼 많지만요..
풍운의개발자님의 댓글
메타세쿼이아님의 댓글
부디 좋은 곳이 있다면 그 곳에서
편안 하시면 좋겠습니다.
언주야언니여기왔단다님의 댓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파랑꼬리님의 댓글
저의 가족도 같은 병으로 돌아가신지 막 3년이 되었네요....
진단 받고, 수술하고 2년을 못견뎠네요.....
아직까지 치료가 어려운 병이 맞는 거 같습니다.
말로 무슨 위로가 되겠냐마는 고인이 바라시는 게 무엇일지 생각하시고 힘내고, 당신몫까지 행복하세요...
crystalcastle님의 댓글
쨍그랑님의 댓글
주변지인도 투병중에,, 모든병원에서 진료거부해서 결국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겼습니다.
잘추스리시고 일상으로 돌아오시길바랍니다.
둠칫두둠칫님의 댓글
2082님의 댓글
저도 좋은 아들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영면하신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지낭님의 댓글
+ "눈이 부시게" 좋은 드라마이지만 지금은 말고 다른 때 보세요. 그리고 아무 때나 마음껏 우셔도 괜찮습니다. 문득 괜히 울컥할 때 있을텐데... 굳이 참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Runatic님의 댓글
KalqTrapZ 님도 너무 많이 슬퍼하시지 말고 기운내시길 바랍니다.
2방in님의 댓글
저도 어머니랑 남은 시간 많이 함께 하려고 노력 중인데...
남은 생이 얼마인진 모르겠지만 많이 아프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저희 어머니도 달에 1천원씩 나가더라구요.
저도 당비낸다고 하니 잘 했다고 하셨던...
얼마전 옷장 서랍을 빼니 서랍아래마다 돈봉투를 숨겨 두셨더군요. 그걸 보니 눈물이 왈칵 쏟더라구요.
KalqTrapZ님의 댓글
추천클릭으로 대신해서 죄송합니다.
캐스톨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