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 미해군의 미친 방공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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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초창기부터 Japs의 날파리들에게 고통을 받은 미해군은
8인치 양용포, 20mm 기관포로 만족 못하고
40mm 보포스포를 대거 도입하고 장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해군은 대전 후반으로 갈수록
1. 레이더 관제와 전투기를 통한 1차 방공
2. 구축함~전함에 이르는 항공모함 중심 방공원형진
>이 방공원형진은 최초의 실용 근접신관인 VT 신관을 장전한 전함 부포와 순양함 8인치, 구축함의 5인치, 40mm, 20mm 대공포으로 구성되어, 날파리들을 갈아버리는데에는 손색이 없었습니다. 특히 사우스다코다 전함은 산호해 해전 당시 크리스마스 트리를 연상할 정도로 대공포를 쏟아부었다고 하죠.
VT신관. 당시 고오급 기술인 진공관을 양산하여 밀어넣었습니다.
순양함의 8인치포
각종 부포와 구축함 주포로 사용된 5인치 양용포
40mm 2연장 보포스포
20mm 오리콘 기관포
3. 최후의 방어, 항공모함의 개함방공
> 그렇다고 항공모함 자체의 개함 방공 능력도 부족한 건 아니라서, 후반기 주력인 에식스급의 경우 5인치 38구경 Mk.12 양용포 12문, 보포스 40 mm 기관포 32문, 오리콘 20 mm 기관포 55문이라는 어마어마한 대공포 양을 자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해군은 비정상적인 수단으로 미해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죠. 카미카제.. 자살공격이 등장하면서 어쩌다 1,2대 들어오는 자살공격기에 공격을 당해 큰 피해를 입었던 것입니다. 실제 전과보다 막는 미해군의 심리적 문제가 더 커서...
결국 미국은 RIM-8 탈로스부터 오늘날의 SM 시리즈인 스탠다드 미사일, 시스패로 미사일에 이르기까지 각종 미사일을 개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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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V4030님의 댓글의 댓글
전쟁 후반에도 가미카제에 어쩌다 뚫리는 경우가 있어서
1945년 4월부터 오키나와 전투인데, 그 전투 당시 에식스급 벙커힐이 카미카제에 당해서 용궁 갈 뻔 했습니다.
PINECASTLE님의 댓글의 댓글
만약 특정한 사건이나 주력함이 대상이라면 느낌이나 그 충격이 다를 순 있겠지요.
EggM님의 댓글의 댓글
EggM님의 댓글의 댓글
일단 1차 레이더 관제에 의한 요격 전투기를 떨쳐내야 하는데, 당시 수준 낮은 파일럿으로는 여기 부터가 난제였던거죠. 거기다 대공포 경계망에 들어와 주변에 폭탄이 터지기 시작하면 대충 아무데나 항폭 던져버리고 돌아오는 모랄빵이 이미 심각해져 있었고, 처벌받기 싫은 파일럿들은 대충 진짜 배에다 던졌어요 라고 보고함으로서 적함 격파를 지휘부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돼 버렸구요.
결국 인간조차 소모되는 자원으로 판단한다면, 사실 당시 일제에게 미 함대를 요격할 확률을 올리는 방법은 카미카제 밖에 없었다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PINECASTLE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