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사라져 가는 걸 본 후 맘이 좀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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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녀꾸씨 211.♡.187.27
작성일 2024.09.1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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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옆에 새끼 고양이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걸 봤습니다.

비쩍 말랐더라구요. 코에는 농처럼 보이는 콧물도 보이고...


강아지 습식 사료 줘봤는데 몇 번 핥기만 하고 먹질 못합니다.

물을 주니 먹길래 물배 채우기보다 우유가 좋을 것 같아서 줬더니 좀 먹네요.

그런데 그마저도 많이 못 먹고 관심을 안 둡니다.


그냥 두면 비틀거리다가 로드킬을 당할 것 같아서

집 창고에 기력이라도 회복할까 싶어서 데리고 왔는데

갑자기 먹은 걸 다 토합니다. ㅠㅠ

채소 쪼가리들이 있는 걸 보니 음식찌꺼기들을 먹은 것도 같고...


다시 우유를 주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물을 줘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생의 의지가 없는 것처럼 바닥에 쓰러지기만 합니다.

어미가 버릴 정도이니 어찌 보면 이미 가망성이 없었던 같기도 했습니다.


로드킬 안 당하도록

그리고 어찌 보면 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시간을 보내도록

집 옆 숲 그늘에 눕혀줬습니다.

일어나려고 하지만 비틀거리다가 그냥 힘이 드는지 눕더라구요.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가 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 그냥 왔습니다.




야외에서 살아가는 동물이 겪는 흔한 일들이겠지만

눈앞에서 그 마지막 즈음에 해당되는 동물을 보니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아는 수의사께 상황들, 증상들, 영상들을 보내드렸습니다.

만약 가망성이 조금이라도 있다 하시면

앞뒤 생각 않고 다시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보고 싶기도 했구요.


한참 후에 답이 왔는데

고양잇과 동물들에게 전염되면 치명적인 전염성 복막염이고

비틀거리는 것이 못 먹어서 기력이 없는게 아니라

신경 쪽 문제가 오면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하시네요.

병원에 데려가도 해줄 수 있는게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누군가는 지적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지금도 굶어죽는 사람들 많고, 전쟁으로, 사고로, 병으로 죽는 사람들 많은데

고작 길고양이 새끼 한 마리 가지고 호들갑 떤다구요.

맞습니다. 경중을 따지면 더 중한 일들이 많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이란게 참 일차원적인 것이

멀리 있는 큰 일보다 당장 눈 앞에 있는 가벼운 일(?)에 더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흔하디 흔한, 지금도 많이들 죽어가는 길고양이일 뿐인데

그 죽음의 과정을 눈앞에서 목격한 것이 제게 꽤 큰 타격이 된 것 같습니다.

우울해져서 다른 일에 집중하다가 그래도 좀 풀어놔야 괜찮을 것 같아서

그냥 앞뒤 생각 없이 넋두리를 풀어놓게 됩니다.


고작 고양이 한 마리에 대해서도 이리 심적인 상처가 꽤 길게 여운이 남는데

의료 대란과 관련해서 다친 사람, 위급인 사람,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을 그냥 무기력하게 보기만 해야 하는

구급대원, 응급실 의료진들, 지역 의료진들..

무엇보다 그 가족들께서 겪게 될 심적인 상처는

제가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지 않을까 그냥 상상이라도 한 번 해보게 됩니다.


아무쪼록 모두들 건강하시구요.

늘 좋은 것들만 보면서 마음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댓글 15 / 1 페이지

현이이이님의 댓글

작성자 현이이이 (140.♡.29.2)
작성일 09.10 15:35
도스토옙스키는 그런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어용 좋은 하루되세용~

Simlady님의 댓글

작성자 Simlady (220.♡.172.6)
작성일 09.10 15:35
수십 수백명이 돌아가시는것을 (아마도) 일하면서 지켜 보았을텐데
매번 힘들고 매번 울적합니다...
그리고 그 어느 죽음도 크고 작은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음 아프셨을텐데 그래도 마지막에 돌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경삼림님의 댓글

작성자 중경삼림 (14.♡.109.30)
작성일 09.10 15:37
그런 마음을 갖는게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국민이 배가 침몰해 가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생중계로 봤던 적이 있죠  (세월호...)
끊임없이 기억하고 추모하고 같은 일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현 정권은 저런 것들엔 관심이 없어 보여요..

스위스쵸코님의 댓글

작성자 스위스쵸코 (58.♡.93.170)
작성일 09.10 15:46
저도 사무실에 돌봐주는 고양이 한마리가 있긴한데, 그런마음이 측은지심이 아닐까 합니다.

산다는건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산다는건 (218.♡.216.130)
작성일 09.10 15:47
저는 개인적으로 길고양이를 그렇게 반기는 입장은 아닙니다만 간혹 집 주변에 앙상한 몰골의 길고양이들을 보면 그래도 먹이라도 좀 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얼남인즐님의 댓글

작성자 얼남인즐 (106.♡.66.44)
작성일 09.10 15:55
정상이십니다.
이러니저러니 말들이 많지만 죽어가는 생명을 보는것은 안타까운 일이지요.

날개달기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날개달기 (121.♡.1.128)
작성일 09.10 15:56
읽는 내내 눈 앞에 그려진 광경에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작고 여린 것을 지켜주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가 참 오래 가지요. 누군가에게 어떠한 존재도 되지못한채 쓸쓸히 먼 길을 갈 수도 있었는데 기억할 누군가가 되어주셨으니 고양이는 세상에나와 그냥 사라진 것은 아니네요.
외면할 수도 있는데 기꺼이 살펴봐주신 녀꾸씨님 같은 분들덕에 그래도 아직 좋은 사람은 있구나 싶습니다.

루네트님의 댓글

작성자 루네트 (175.♡.133.110)
작성일 09.10 15:57
"지금도 굶어죽는 사람들 많고, 전쟁으로, 사고로, 병으로 죽는 사람들 많은데"

이런거에 신경쓰라고 정치인을 뽑는거죠.
우리는 우리 눈 앞의 일에 충실하면 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goom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goom (223.♡.169.246)
작성일 09.10 15:58
측은지삼이야말로 모든 생명에대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생명을 소중히 하는데는 인간, 동물, 식물 구분이 필요없습니다. 힘내세요

네로우24님의 댓글

작성자 네로우24 (110.♡.202.51)
작성일 09.10 17:10
원래 멀리있는 큰일(?)인 죽어가는 아이들, 전쟁, 기아 등에 진짜로 관심 있어하는 사람들은 주변의 작은 안쓰러움에도 다 공감하더라고요.

풍운의개발자님의 댓글

작성자 풍운의개발자 (218.♡.18.87)
작성일 09.10 17:45
지극히 정상이십니다. 똑같은 경험이 있네요. 그러다 벌써 3마리 집사가 되긴 했습니다. ㅎㅎㅎ. 힘내세요. 복받으실 껍니다.

마카로니님의 댓글

작성자 마카로니 (126.♡.220.94)
작성일 09.10 19:26
우선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어린 녀석이 로드킬 당하는 일 없이 곱게 떠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ㅠ

많이 힘드시겠지만 최선을 다하셨다는 점을 마음에 새기며 이겨 내주시길 빕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이해해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다이해해 (123.♡.41.164)
작성일 09.10 19:29
고작 고양이 한마리에도 연민의 감정이 드는 분들 덕에 그나마 살만한 세상으로 바뀌는거지요

페퍼로니피자님의 댓글

작성자 페퍼로니피자 (121.♡.149.195)
작성일 09.10 20:01
사람이 사람다운건 측은지심이 있을때죠.. 요즘 시대는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녀꾸씨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녀꾸씨 (121.♡.230.114)
작성일 09.10 23:40
말씀들 감사합니다
아기 고양이 둔 곳이 매우 궁금하지만
도저히 못 가보겠어요 ㅠㅠ
그냥 안 아프게 편히 떠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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