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육이 가진 문제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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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이 문제다.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교사들은 아이들과 교감하고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일에 주춤하고 있고, 아동학대법에서 얘기하는 정서적 학대 조항에 교사의 교육활동이 포함된 이후 교사의 회비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그러한 교사의 소극적 태도는 다시 악성민원을 야기하고 있고, 늘어나는 악성민원 만큼 교사들의 사회적 지위는 떨어지고 있다. 거기에 사기업 대비 교사의 낮은 경제적 지위는 해가 갈수록 교사의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교원 상호 간의 문제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열정적인 교사는 그렇지 않은 교사의 눈총을 받기 쉽고, 문제가 발생할 때 누구도 책임지려 나서지 않는 관료제 문화는 특히 젊은 교사들의 직무만족도는 낮춘다. 그렇다고 학교일에 적극적으로 임한다고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지도 않는 현실은 시간이 갈수록 회피현상만 심화시킨다. 그러면서 조직을 하나로 이끌어야 할 관리자들은 제대로 된 강력한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어느 새 학교는 단절과 불화의 장이 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외부로부터 받는 공격과 내부에서의 분열이 곧 우리 교육이 처한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교육의 본질, 즉 “열심히 가르치고, 주위로부터 합당한 대우와 존경을 받고, 스스로 보람을 느끼며 더 열심히 가르치고자 다짐하는” 교사의 사도관(師道觀)을 꺾는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 교육이 처한 문제다.
그렇다면 그 문제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불신(不信)’이다.
학부모가 교사를 믿지 못하고, 교사가 선후배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다.
학부모가 교사의 자질과 자격(능력)을 불신하니 교사가 하는 행동이 마음에 안들고, 그런 상태에서 작은 하나라도 실수나 잘못을 하면 ‘어쩐지.. 그럼 그렇지!’ 하며 교사와 학교를 공격한다. 그것이 악성 민원의 출발이다.
교사들 역시 서로의 자질과 자격(능력)에 대한 불신이 결국 상호 불화의 출발이다. 대학때부터 애초에 교사가 될 선배들이 보기에 항상 자신이 한 일에 대한 결과를 보상받으려는 젊은 교사들은 ‘선생님’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해 보이고, 똑같은 일을 나보다 열심히 하는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급여나 대우는 더 많이 받는 선배들은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교직에 들어온 후배들이 보기에 믿고 따를 선배가 되지 못한다. 거기에, 남다른 자질이나 자격, 품성을 갖춘 이가 교감, 교장이 되는 게 아니라, 특정 경력이 있거나, 특정 학교에 근무했던 게 승진에 결정적 기준이 되는 현재의 인사제도 하에서 구성원의 자발적 신임과 존경을 받는 관리자가 나오기는 거의 ‘운’에 달려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관리자의 자질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들이 많고, 그런 관리자를 경험한 교사들은 다른 관리자를 만나도 그의 리더십을 제대로 신임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학교 안의 불통과 불신, 불화는 점점 더 심해진다.
결국 문제의 해결은 ‘신뢰’를 얻는 것이다. 악성민원을 막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민원에 시달리는 교사를 지원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교사에게 적절한 경제적 보상을 하고, 민원처리를 포함한 학교행정을 더 투명하게 공개하고,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이런 정책적 개선들은 오늘날 우리 교육이 갖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단편적 지원책일 뿐,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우리 교육이 갖고 있는 이 깊고도 넓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오직 신뢰의 문화가 확산되는 것 받게 없다. 학부모가 교사를 신뢰할 때 학교가 신뢰받고, 교육이 신뢰받는다. 교사가 서로를 신뢰하고, 교사와 관리자가 서로를 신뢰할 때 학교가 소통하고 화합을 이룰 수 있다. 이런 신뢰의 문화가 확산될 때 자연히 우리의 교육은 그 본질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뢰를 얻을 것인가?
신뢰는 정서적 자세이지만, 우리의 정서는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에 대한 반응이다. 즉, 객관적으로 신뢰할 만한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면 그 결과는 신뢰를 얻는다. 불신의 근본 배경이 자질과 자격(능력)이므로 자질과 자격을 강화하는 제도와 시스템이 필요하다.
흔히 현재 학교가 갖는 문제를 한탄하는 선배교사들은 과거 그들이 교직을 처음 시작할 때와 지금을 비교하곤 한다. 그러면서 대부분 “옛날 80년대까지는 교사 해먹기 좋았는데 말야..” 한다. 그건 따지고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1980년대 학부모들의 경우 대부분 1950년대에 태어나, 196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1960년의 경우 그해 대학진학률이 5% 수준이었다. 전체 고등학생 중에서 대학교에 간 사람이 100명 중 5명 정도였던 것이다. 그나마 당시 중학생의 고등학교 진학률은 20%가 안됐다. 결국, 1960년에 대학생이었던 사람은 또래 중 상위 1% 학력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자식을 낳고, 학부모가 된 게 1980년대다. 즉, 1980년대 초반만 해도 학부모들 중 대학졸업자는 많아야 5% 내외였다. 그런 학부모들이 보기에 4년제 대학나온 교사의 전문성은 감히 의심할 것이 아니다. 그렇게 ‘많이 배운 선생님’이니 ‘선생님은 곧 하늘’이 될 수 있었고, 그런 인정과 신뢰의 문화는 ‘교사하기 참 편한 시대’를 만들어 줬을 것이다.
그러나 2024년 현재의 학부모들은 대부분 19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이다. 그들이 대학을 가던 2000년대 초반은 의무교육 기간인 중학생의 거의 대부분이 고등학교에 갔고, 고등학생의 80% 이상이 대학을 갔다. 즉, 현재 40대 학부모의 절반 이상은 4년제 대졸자들이다. 그들이 보기에 자신과 똑같은 4년제 대학 나온 교사는 그저 ‘교사자격증을 가진 평범한 친구 또는 선후배’일 뿐이다. 그런 학부모가 과거 1980년대의 중학교 졸업자격증 밖에 없는 학부모와 같은 눈으로 교사를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이것이 교사가 학부모들로부터 불신받는 출발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교사가 미숙하거나, 사소하게라도 잘못을 했다? 그래서 내 자식이 피해를 입었다? 그런 경험이 한번이라도 있는 학부모는 해당 교사뿐만 아니라 교사 전체를 불신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소문으로 확산되면 될수록 교사를 불신하는 학부모들은 많아진다. 그래서 학부모의 46.3%가 학교에 민원을 넣고 싶어 했고, 실제로 지난 1년 간 학부모의 12%는 학교에 민원을 넣은 것이다.
교사 간의 불신도 마찬가지이다. 2023년 중등임용시험의 합격률은 전체 응시자의 7.7%이었다. 초등임용시험 역시 25% 수준이었다. 똑같은 2급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끼리 정말 ‘피터지는 경쟁’을 해서 교단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힘들게 들어온 학교를 보면 똑같은 일을 하는데 고참 선배교사와 후배교사 간에 급여 차이는 2~3배가 넘는다. 거기에 고참 교사라고 더 힘든 일을 하거나 솔선수범하는 모습은 적다. 오히려 나만 혼자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러다 실수나 잘못을 해서, 또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로 학부모로부터 민원을 받았는데 누구하나 제대로 도와주거나 같이 책임져주는 선배가 없다? 그러면 그 교사는 더 이상 선배들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목격하거나 알게 된 후배교사 역시 다른 선배교사들을 믿지 않는다. 그게 학교 불신의 출발이다.
거기에 교감, 교장이라고 하는 관리자의 경우를 보면 그들이 평생 동안 교사로서 남다른 실력과 성과, 품성을 갖추고 인정받아 관리자가 된 게 아니라, 장학사 출신이라고, 연구학교에 근무했었다고, 최근 몇 년 교무부장을 했다고, 교장이랑 친했다고 승진했다는 말을 들으면 그런 관리자의 자질과 자격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실제로 학교 경영에서 ‘관리자다운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비합리적 업무를 강요하거나, 책임을 떠넘기거나, 기타 부정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면 교사들은 더 이상 관리자를 관리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그런 인식은 더 심화된다. 이것이 학교의 또다른 불신의 출발이다.
결국, 우리 교육이 갖고 있는 근본 문제는 불신이다. 그리고 이 불신은 교사와 관리자의 자질과 자격(능력)을 높이는 제도와 시스템으로 해소해야 한다. 제도와 시스템의 혁신적 변화가 있을 때 그 결과물인 교사와 관리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게 되고, 그런 인식의 변화가 곧 신뢰의 시작이 된다. 그렇게 교사와 관리자가 자질과 자격(능력)을 인정받을 때 불신을 사라지고, 우리 교육은 다시 ‘열심히 가르치고, 인정받고, 보람을 느끼는’ 본질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그 제도와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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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틀을 고민하고 안가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교육청 장학사들을 보면 늘 뭔가 새로운 일을 벌이려고 해요. 그러면서 자기의 능력을 인정받으려 하죠. 그것들 대부분이 학교에선 교사가 교육에 집중하지 못하는 ’불필요한 행정업무‘가 됩니다..
someshine님의 댓글의 댓글
아이디어님의 댓글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하자 이런 말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하늘빛님의 댓글의 댓글
Badger님의 댓글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그 문제점들에도 공감합니다.
다만 어떻게? 얼마나? 라는 점은 정말 큰 이견이
있을 수 있겠죠.
많은 사람들은 그 문제에 지치고 질려서
삶의 큰 부분을 포기하는걸요.
하늘빛님의 댓글의 댓글
그런 점에서.. 신설도시인 세종이 정말 새롬고 합리적 제도를 만들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였는데, 최교진교육감이 그 좋은 기회를 그냥 버렸죠. 제가 2년 전 3선 당선된 교육감을 독대하며 직접 설명도 했지만, 듣기만 하고 반영은 하나도 없더군요. 오히려 진짜 말도 안되는 이벤트를 만들고 있어요. 참 나.. 능력없는 리더가 진보진영 전체를 망치고 있단 생각입니다..
하늘빛님의 댓글
1980년대 이후 대입진학율이 높아지면서 교사의 전문성이 불신받게 됐고, 능력이나 자질과 무관한 승진제도가 학교 내에서의 교사와 교사, 교사와 관리자 간의 불신을 만들어냈다 생각합니다. 그걸 해소하지 않고는 교육은 앞으로도 쭉~ 문제일 겁니다. 지금보다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