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오늘도 삶이 가혹한 숙제 같을 나의 벗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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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diynbetterlife 220.♡.37.28
작성일 2024.10.18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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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천상병 선생을 생전에 딱 한 번 업어보았다. 맥주 한 병쯤 드시고 나서 걸음을 걸을 수 없어서였다. 그때 나는 갓 군대 제대한 청년이어서 제법 씽씽한 근육이 살아있었다. 어허라? 왜소해 보이던 모습과 달리 천상병 선생은 몹시 무거웠다. 진짜로 낑낑, 무거웠다.
그때 이외수 선생도 곁에 계셨는데 내가 슬며시... 생각보다 너무 무거워요. 어찌 이럴 수가 있지요? 라고 물었다. 천상병 선생은 섭식도 않고 규칙적으로 맥주만 드실 때였다. 이외수 선생은 아주 느긋하게 대답하셨다. 그게 시인의 무게야!
천상병 선생은 무슨 말이든 꼭 연달아서 세 번씩 하셨다. 발작적으로 재채기하는 사람 같았다. 사람을 불러도 외수야! 외수야! 외수야! 이러셨고 시간을 물어도 몇시냐? 몇시냐? 몇시냐? 이런 식이었다. 나중에야 나는 그게 고문 후유증에서 기인한 무슨 정신적 질환이라는 걸 알았다.
그날 이외수 선생이 애교부리듯 뭔가를 토로하자 천상병 선생은 잠시의 틈도 없이 대답하셨다. 외수야! 외수야! 외수야!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재채기 같고 속사포 같았다. 시인의 무게가 실릴 겨를조차 없을 것 같았다.
때로 삶이 가혹한 숙제 같을 때 나도 속으로 외치곤 한다. 류근아! 류근아! 류근아!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그러고 나면 신기하고 신비하게도 곧 마음에서 괜찮음의 샘물 같은 것이 솟아나는 게 느껴지곤 했다. 오늘도 삶이 가혹한 숙제 같을 나의

벗들에게 시인의 무게를 합쳐서 대신 말해드리고 싶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다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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