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쩔 수 없는 <그믐달> 사람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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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diynbetterlife 220.♡.37.28
작성일 2024.10.2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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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그믐달>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서 자료를 찾다가 


  • 빛이 거의 사그러져 가는 달
  • 그믐달은 보름달의 반대로서 가장 작아진 달을 말한다.
  • 저녁에 관측되는 초승달과는 반대로, 새벽녘에 뜨기 때문에 의외로 관측이 어렵다. 


보름달과 비교한 설명에 이어, 나도향이라는 시인의 <그믐달> 시와 김동리의 <보름달>이라는 수필을 비교한 자료를 찾았습니다. 


***

참조: <나도향의 그믐달과 김동리의 만월>

출처. 해드림 출판사


위 링크에서 두 작품의 비교를 읽어보면:


<그믐달> 

나도향 저


나는 그믐날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날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버리는 초승달은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婦)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의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女王)과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


초승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한등(客窓寒燈)에 정든 임 그리워 잠 못 들어 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 잡은 무슨 한(恨)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 주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고요한 꿈나라에서 평화롭게 잠들은 세상을 저주하며, 홀로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우는 청상(靑孀)과 같은 달이다. 내 눈에는 초승달 빛은 따뜻한 황금빛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나는 듯하고, 보름달은 치어다보면 하얀 얼굴이 언제든지 웃는 듯하지 마는, 그믐달은 공중에서 번듯하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이 푸른빛이 있어 보인다. 내가 한(恨)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러한지는 모르지마는, 내가 그 달을 많이 보고 또 보기를 원하지만, 그 달은 한 있는 사람만 보아 주는 것이 아니라 늦게 돌아가는 술주정꾼과 노름하다 오줌 누러 나온 사람도 보고, 어떤 때는 도둑놈도 보는 것이다.


어떻든지, 그믐달은 가장 정(情) 있는 사람이 보는 중에, 또는 가장 한 있는 사람이 보아 주고, 또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많이 보아준다.


내가 만일 여자로 태어날 수 있다 하면,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객창한등(客窓寒燈) - 객지의 여관에서 쓸쓸하게 보이는 등불



<만월> 

김동리 저


나는 지금 보름달 아래 서 있다.

한 깊은 사람들은 그믐달을 좋아하고, 꿈 많은 사람들은 초승달을 사랑하지만, 보름달은 뭐 싱겁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나 맞는다던가?

한이 깊은 사람, 꿈이 많은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그보다는 아무래도 싱겁고 평범한 사람이 더 흔할 게고, 그래서 그런지 보름달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물론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나는 아직까지, 내 자신이 싱겁고 평범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잘 모른다. 그러나, 보름달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예외없이 싱겁고 평범하게 마련이라면, 나는 내가 그렇게 싱겁고 평범한 사람이 되어도 할 수 없다.

내가 가진 새벽달의 기억은 언제나 한기와 더불어 온다. 나는 어려서 과식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 하얗게 깔린 서릿발을 밟고 새벽달을 쳐다보는 것은, 으레 옷매무시도 허술한 채, 변소 걸음을 할 때였다. 그리고, 그럴 때 바라보는 새벽달은, 내가 맨발로 밟고 있는 서릿발보다도 더 차고 날카롭게 내 가슴에 와 닿곤 했었다. 따라서, 그것은 나에게 있어 달의 일종이라기보다는 서슬 푸른 비수나, 심장에 닿은 얼음 조각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게다가, 나는 잠이 많아서, 내가 새벽달을 볼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선잠이 깨었을 때다. 이것도 내가 새벽달을 사귀기 어려워하는 조건의 하나일 것이다.

새벽달보다는 초승달이 나에게는 한결 더 친할 수 있다. 개나리꽃, 복숭아꽃, 살구꽃, 벚꽃들이 어우러질 무렵의 초승달이나 으스름달이란, 그 연연하고 맑은 봄 밤의 혼령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소식의,



봄 저녁 한 시각은 천 냥에 값하나니,

꽃에는 맑은 향기, 달에는 그늘.


이라고 한 시구 그대로다. 어느 것이 달빛인지 어느 것이 꽃빛인지 분간할 수도 없이 서로 어리고 서려 있는 봄 밤의 정취란, 참으로 흘러가는 생명이 한스러움을 느끼게 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단들 초승달로 보름달을 겨룰 수 있으랴? 그것은 안 되리라. 마침 어우러져 피어 있는 개나리꽃, 복숭아꽃, 벚꽃들이 아니라면, 그 연한 빛깔과 맑은 향기가 아니라면, 그 보드라운 숨결 같은 미풍이 아니라면, 초승달 혼자서야 무슨 그리 위력을 나타낼 수 있으랴? 그렇다면, 이미 여건 여하에 따라 좌우되는 초승달이 아닌가?

보름달은 이와 달라 벚꽃, 살구꽃이 어우러진 봄밤이나, 녹음과 물로 덮인 여름밤이나, 만산에 수를 놓은 가을밤이나, 천지가 눈에 싸인 겨울밤이나, 그 어느 때고 그 어디서고 거의 여건을 타지 않는다. 아무것도 따로 마련된 것이 없어도 된다. 산이면 산, 들이면 들, 물이면 물, 수풀이면 수풀,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로서 족하다. 산도 물도 수풀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라도 좋다. 머리 위에 보름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고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고 황홀하고 슬프고 유감한 것이다.

보름달은 온밤 있어 또한 좋다. 초승달은 저녁에만, 그믐달은 새벽에만 잠깐씩 비치다 말지만, 보름달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우리로 하여금 온밤을 누릴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보름달은 온밤을 꽉 차게 지켜 줄 뿐 아니라, 제 자신 한 쪽도 귀도 떨어지지 않고, 한쪽 모서리도 이울지 않은 꽉 찬 얼굴인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좋은 시간은 짧을수록 값지며, 덜 찬 것은 더 차기를 앞에 두었으니 더욱 귀하지 않으냐고 하지만, 필경 이것은 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행운이 비운을 낳고 비운이 행운을 낳는다고 해서, 행운보다 비운을 원할 사람이 있을까?


나는 초승달이나 그믐달같이 불완전한 것, 단편적인 것, 나아가서는 첨단적이며 야박한 것 따위들에 만족할 수는 없다.

나는 보름달의 꽉 차고 온전한 둥근 얼굴에서 고전적인 완전미와 조화적인 충족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예술에 있어서도 불완전하며 단편적이며 말초적인 것을 높이 사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기발하고 예리할지라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완전성과, 거기서 빚어지는 무게와 높이와 깊이와 넓이에 견줄 수는 없으리라.

사람에 있어서도 그렇지 않을까? 보름달같이 꽉 차고 온전히 둥근 눈의 소유자를 나는 좋아한다. 흰자위가 많고 동자가 뱅뱅 도는 사람을 대할 때 나는 절로 내 마음을 무장하게 된다. 보름달같이 맑고 둥근 눈동자가 눈 한가운데 그득하게 자리잡고 있는 사람, 누구를 바라볼 때나 무슨 물건을 살필 때, 눈동자를 자꾸 굴리거나 시선이 자꾸 옆으로 비껴지지 않고, 아무런 사심도 편견도 없이 정면을 지그시 바라보는 사람, 기발하기보다는 정대한 사람, 나는 이러한 사람을 깊이 믿으며 존경하는 것이다.


보름달은 지금 바야흐로 하늘 가운데 와 있다.

천심에서 서쪽으로 기울어지는 시간은 더욱 길며 여유 있게 느껴지는 것이 또한 보름달의 미덕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서 다릿목 정자까지 더 거닐며 많은 시간을 보름달과 사귀고자 한다.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


<그믐달>은 어쩐지 소수와 진보의 정서, <보름달>은 온건한 중도/보수의 정서같습니다.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잡은 무슨 한(恨)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 주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믐달은 새벽녘까지 잠 못 이루고 뜬 눈으로 창을 열어야 볼 수 있는 달이네요. ^^;

마음이 평안하고 꿀잠자는 사람은 볼 수 없는 달이예요.


나도향의 <그믐달>을 처음 읽었을 때는

왜 새벽녘에 잠 못 이루고 심신으로 배회하는 자들의 달이 되고 싶지..? 라고 생각했는데요.

알고보니 작가 본인의 삶도 순탄치 않았더라고요.

http://eng-ebook.korea.ac.kr/ebook/ebook_detail.asp?goods_id=7824412


김동리 역시 수필 <보름달>에서 새벽달(그믐달)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네요.

“서슬 푸른 비수나, 심장에 닿은 얼음 조각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김동리가 서슬푸른 그믐달보다 충만한 보름달을 좋아하는 이유 중


“사람에 있어서도 그렇지 않을까? 보름달같이 꽉 차고 온전히 둥근 눈의 소유자를 나는 좋아한다. 흰자위가 많고 동자가 뱅뱅 도는 사람을 대할 때 나는 절로 내 마음을 무장하게 된다. 보름달같이 맑고 둥근 눈동자가 눈 한가운데 그득하게 자리잡고 있는 사람, 누구를 바라볼 때나 무슨 물건을 살필 때, 눈동자를 자꾸 굴리거나 시선이 자꾸 옆으로 비껴지지 않고, 아무런 사심도 편견도 없이 정면을 지그시 바라보는 사람, 기발하기보다는 정대한 사람, 나는 이러한 사람을 깊이 믿으며 존경하는 것이다.”


음.. 이 부분을 보고, 저는 나도향의 <그믐달>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이해했습니다.


보름달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에

덩그러니 떠 있어도 홀로 그 자체만으로 충만하고 완전하고

보는 이까지 가득채워주는 느낌이지만,

저는 결핍이 많고 사람을 똑바로 시선을 맞추는 것조차 어려워 하는 극소심 내향형이거든요.


아무래도 그런 소수/덜떨어진? 사람들에게 더욱 소속감을 느끼는 마이너 정서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보름달 아닌 그믐달 사람들도 불완전한 그대로

보름달도 사랑하고 동경하고 아파하면서도 아름답게 살 수 있다고 다독이고 싶습니다.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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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님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벗님 (106.♡.231.242)
작성일 10.29 11:46
// 한 늙은 학자가 젊은 청년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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