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사회와 그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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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1994년 중국 출장 갔던 얘기를 한 적이 있죠?
그때 만났던 사람이 후베이성 외교부 과장과 주임이었습니다. 과장은 예전에 홍위병 출신이어서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나서 반성 차원으로 농촌 하방을 7년인가 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나서 북경외국어대 졸업을 한 후 후베이성 외교부에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조선족 통역을 통해 얘기하기 부담스러운 주제가 많아져 못하는 영어지만 영어로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눴습니다(그는 영어가 능통했고, 저는 정말 초등학교 수준 영어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는 자신이 홍위병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 얘기를 하더군요.
여러 얘기를 했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게 북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북한에 대해 물으니 부자 세습은 사회주의가 아니라며 맹렬히 비판을 하더군요. 그때는 3대 세습이 아직 이뤄지기 전이었는데 만약 3대 세습까지 봤으면 더 뭐라 했겠죠. 그에게 이게 당신만의 생각이냐 소위 당 고위층의 일반적인 생각이냐 물으니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아마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이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이 손발을 맞췄지만 결코 용인할 수는 없었을테고 지금 북한과 중국이 등진 이유 중에도 이런 시각이 자리잡고 있을 겁니다.
그때 저도 동의한다고 답을 했었습니다. 어떻게 공화국이라고 말하는 나라에서 부자 세습이 이뤄지느냐구요.
얼마 전 민주노총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간첩 협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더군요. 북한과 내통했다구요. 새로운 일은 아닙니다. 얼마 전에도 다른 단체가 조사를 받았고, 10년 전에는 통합진보당 내란음모사건으로 여러 사람이 감옥에 갔었죠. 물론 더 전에도 꽤 이런 사건은 많았습니다. 예전에는 조작이라고 했지만 그러기엔 증거가 너무 많아서 옹호해주기는 힘듭니다. 일부에서는 정보기관이 모든 걸 파악하고 있지만 그냥 놔두다가 곶감 빼 먹듯 주기적으로 잡아 들인다고 하죠.
5.18 광주민중항쟁 이후 미국의 역할을 둘러싸고 반미자주화 투쟁이 이뤄지며 북한과 연계해 정권은 물론 미국과 싸우려는 일련의 그룹들이 나왔죠. 김일성이 독립투쟁을 벌였으며, 해방 이후 북은 친일파를 청산했고 미국과 맞서 싸웠다는 정통성을 인정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은 전향했지만 김영환의 강철서신이 그 대표적 예일 것입니다. 그를 시발점으로 많은 소위 자주파가 형성됐고, 북한과 연계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라 이들은 학생회를 장악하고, 노동조합을 장악하려 했습니다. 나중에는 정당을 만들려고 했죠.
1980년대부터 이들의 존재를 많이들 알고 있었고 문제가 있다며 지적하던 사람들이 많았지만(조국 씨도 이들을 맹렬히 비판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죠), 바보과대표론으로 대표되던 그들의 품성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조직보다 훨씬 조직력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들이 사회현상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어느 순간엔가 정(情)으로 접근하다가 종교적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들 손에 끌려가 잠깐 공부를 한 적이 있었는데 광신도같다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선배에게 질문을 하자, 질문을 하지 말고 일단 무조건 수령님을 믿으라는 소리 듣고 대판 싸우고 정리했었죠. 사상이 아니라 종교이기에 기나긴 생명력을 가지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이비 종교 교주가 죽어도 금방 사이비종교가 사그러들지는 않죠. 그 후계자를 중심으로 목숨을 이어가니까요.
이들은 진보적으로 보일 지 모르지만 실제 같이 뭔가를 해보면 전혀 진보적이거나 인권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정말 비민주주의적인 사람들이죠. 겪어본 사람들은 그래서 다들 우려하는데 문제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여기저기 뿌리를 내리려 한다는 거죠. 요즘 떠오르는 신흥 사이비종교만 뭐라 할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폭로하자니 동지를 팔아먹는 것 같이 저어된다고들 합니다. 저는 이들이 과연 동지인 지 모르겠습니다. 3대 세습과 검열, 봉쇄, 감시로 이뤄진 북한 사회가 우리와 어떻게 동반자적 관계를 맺고 이들을 추종하는 세력이 어떻게 동지일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시국에 이런 말하는 게 수상하고, 뭐하는 거냐 하실 분도 계시지만 이럴 때라서 더욱 이들의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사회는 사회적 격차가 크게 벌어지지 않는 평등한 사회여야 하는 동시에 인권이 존중되고 감시와 검열이 없는 열린 사회여야 합니다. 설득과 토론으로 차이를 극복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북한 사회가 문제이고 개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북한과 한 판 뜨자는, 전쟁하자는 소리에 동조하는 건 아닙니다. 절대 전쟁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남북 간에 벌어지고 있는 풍선, 확성기 모두 중지하고 평화를 유지해야 합니다. 북한 정권이 너무 한심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바꿔야 할 문제입니다. 저희는 평화를 유지하며 그들 스스로 변화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저는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이런 세계관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걸러낼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국가보안법으로 해결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모두 잡아들일 수도 없을 겁니다. 북한과 직접 내통하는 사람들은 소수일테고 동조자가 많을테니까요. 정확하게 제 입장을 말씀드리자면 이런 사람들을 단체, 정당에서 축출해야 합니다. 이들은 열린 사회의 적들입니다. 동지가 아니구요. 사이비종교에 대해서는 뭐라 하면서 왜 이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해서는 안됩니까? 다들 쉬쉬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한 마디 해봅니다.
홍성아재님의 댓글의 댓글
우리는 이런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유럽 학자들이 제기한 문제입니다.
사회적 다양성을 용인하지 않는 사람을 우리 사회는 용인해야 하는가. 유럽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얘기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에 대한 얘기일 수 있습니다. 사상의 자유를 핑계로 외면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유럽에서 다양성, 다문화사회를 주장하다가 극우 세력이 득세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람파이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