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불났다니 아버지가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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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는 포스코에 근무한 적이 없지만 근무할 뻔은 했었습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 초창기 핵심 중화학공업인 비료공장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70년대가 시작되자마자 포스코, 당시 포항제철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습니다. 공장 보일러 기술자였던 아버지를 채용 후 일본에 1년간 기술연수 시킨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연수할 때 급여를 지급하고(급여도 굉장히 높았답니다) 사택도 주는 조건이어서 아버지는 엄청 마음에 들어했는데 어머니가 결사 반대하셨대요. 그 이유가 바로 포스코에서 사고가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포항제철 건설 당시에도 사고가 많았나 봅니다. 어머니도 아실 정도였으면. 물론 아버지와 1년간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셨구요. 애들도 잔뜩 있어서.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비료공장에서 산업재해를 입어 실명할 뻔 했던 큰 위기가 작용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달 넘게 입원했다가 다행히 낫기는 하셨지만 그때 저희집 큰일날 뻔 했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반대로 포항으로 가지 않고 울산에 있는 공장으로 자리를 옮기셨죠. 그래서 울산 공장은 별로 사고가 없는 줄 알았지만, 아버지랑 같이 일했던 육촌형 얘기로는 초창기 울산 화학공장에서 사고가 많았답니다. 아버지가 어린 자식들에게 얘기를 안했을 뿐이지. 당시 또다른 육촌형은 현대조선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거기도 마찬가지였다고 해요.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 갖다주러 현대조선 갔다가 엄청난 규모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1970년대에는 공장에서 사고가 나도 언론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들 잘 몰랐죠.
우리 사회의 근대화, 현대화가 이러한 노동자들의 희생 속에 이뤄졌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중화학 노동자 뿐만아니라 구로공단이나 청계천에서 열악하게 일했던 노동자들까지 포함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종종 뉴스에 나오는 발전소 사고, 제철소 사고가 없어졌으면 합니다. 안전이, 사람 목숨이 제일 중요합니다.
예전에 아버지가 일한 비료공장이 독일 차관으로 지어져서, 독일에서 근로감독관이 와 있었답니다.
그 사람이 항상 속도보다는 안전이라며 속도를 채근하는 한국 관리자들을 뭐라고 했었대요. 그러다 공장에서 벌어진 사고 대처 과정에서 한국 노동자를 구하고 대신 죽었다며 안타까워 하셨어요. 그러한 의식이 없으면 우리나라 산업 발전이 없다고 생전 아버지가 강조하셨습니다.
규링님의 댓글
저런 내용은 진짜 여러모로 보기 힘드네요.
하늘걷기님의 댓글
꼭 위험한 환경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이 가진 기술을 연마한 시간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아니, 기술이 없더라도 그 사람이 신체와 시간을 이용해서 하는 노동을 너무 우습게 생각합니다.
사람을 돈으로 보는 세상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돈을 너무 박하게 쳐주는 건 안 될 일입니다.
사람이 없으면 돈은 휴지 조각이고 인터넷 어딘가에 있는 데이터 쪼가리에 불과한데
그 숫자는 신처럼 섬기고 사람을 우습게 보는 건 너무 의아합니다.
본말이 전도 된 세상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