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재판관의 껍질을 벗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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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비세스의 재판] 제라드 다비드 그림
1498년 그려진 이 그림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는 어느 날 재판관 시삼네스가 뇌물을 받고
부패한 판결을 했음을 알게 됩니다.
분노한 왕은 그 불의한 재판관에게 산채로 살갗을 벗기는 처벌을 내렸죠.
그리고는 그 벗긴 살가죽을 재판관의 의자에 씌웠고
후임 재판관으로 처형당한 그 재판관의 아들 오타네스를 임명했습니다.
왕이 내린 교훈은 이러했던 거죠.
'누군가 너에게 악을 행하도록 충동한다면 네 아버지의 운명을 기억하라.
네 아버지의 운명을 내려다 보고 그의 운명이 너에게도 닥치지 않도록 경계하라'
현대적 감각으론 지나치게 가혹한 감이 있지만 재판관이란 자리의 의무와 책임
그리고 바른 판결에 대한 엄격한 주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래로부터 재판관이 가진 크고 결정적인 권한에 대해 엄격한 경계가 필요했던 것은
이 외에도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삼권분립을 기본으로 하는 현대의 통치 및 법 체계 아래서 독립성과 권위가
더욱 강화된 사법권의 행사에 있어서 이에 대한 제대로 된 경계가 쉽지 않습니다.
비근한 예로 브라질에서 룰라에게 가해졌던 사법적 왜곡 행위와 폭력은
국민으로부터 비롯되는 민주공화국의 국가 통치 시스템에 대한 심각한 도전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윤미향 전 의원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은 다시 한번 이 시대 우리나라
사법권의 불의한 작태에 대한 의심을 되새기게끔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있을 이재명 대표에 대한 판결에 대해서 불의한 사법권력의
행사가 작동하지 않을까 심각한 우려를 가질 수 밖에 없죠.
만약 이재명 대표에 대한 불의한 판결이 시행된다면 우리나라 국민 권력에 대한
사법권력의 심각한 침해 및 도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때는 정말 광화문 네거리에에서든 어디에서든 모두가 들고 일어나
불의한 사법권력의 껍질을 제대로 벗겨내야 할 것입니다.
법원에서 흔히 말해지는 '존경하는 재판장님'에서 존경하는이란 수식은
법전 공부로 따낸 알량한 판관이란 직책을 향하는 것이 아니고
다수 국민 권력이 합의한 법 체계와 그 법 체계 실행에 동의하고 힘을 실어주는
그 뒤의 국민에게 향한 수식어란 것을 제대로 알려줘야 합니다.
** 글 쓰는 중간에 김혜경님에 대한 유죄 판결 소식이 있었네요.
정말 저 불의한 판결을 얼마나 더 용납해야 하는지요.
네로울프님의 댓글의 댓글
구운계란님의 댓글
삼권분립 어쩌고 해봐야 견제가 되는게 있나 싶고, 역사적으로도 늘 그랬거든요.
정말 순수히 개인의 양심에만 맡긴... 어찌 보면 상당히 전근대적인 방식인데 왜 이게 현 상태로 계속 유지되는지 의문입니다.
장승업님의 댓글
가시나무님의 댓글
TheBirdofHermes님의 댓글
부일 매국노 최선봉엔 언제나 판검새가 앞장섰죠.
이것들은 진짜 사회생활도 안해보고 그저 고시 하나로 판새가 되어 사람과 국가의 안위를 개판으로 만들고 오로지 견제받지 않는 오물폐기물 그 자체죠.
요것들 대가리도 선출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강제로 사회생활 2~3년은 국선변호인이든 뭐든 사회 생활과 거기서 오는 일상 생활의 전반적인 것들 봐야 저따구로 판결안하죠.
그리고 대한민국 서울대 법대의 전신 경성제국대학의 부패한 카르텔을 깨는게 가장 시급하다고 봅니다.
비글은스누피님의 댓글
진짜 본보기로 몽둥이 찜질을 하건 발가벗겨 매달아놓건 뭔가 해야합니다.
그리고 시민들이 법원을 견제할수 있는 수단을 반드시 만들어 놔야겠어요.
X같이, 병X같이 판결을 때려도 아무 책임도 안지는게 애초에 말이 안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