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새벽의 일기 입니다.
페이지 정보
본문
어제 큰 일이 있었죠. 그 때 저의 생각과 상황을 정리 해보려 일기를 써봤습니다.
일기이기 때문에 경어체가 없습니다. 문제가 된다면 수정 또는 삭제 하겠습니다.
2024.12.03
퇴근하고 집에와서 씻고 나와 얼마전에 사 놓은 저렴한 위스키를 반 잔 정도 마셨다. 유튜브를 보는데 믿기지 않는 영상이 나왔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실제 상황일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믿기지 않았다.
다른 방송들과 커뮤니티의 사진들을 봤다. 국회 안팍에서 촬영된 영상들이 몇몇 있었고 헬기가 국회로 오고 군인들이 진입해서 대치중이었다. 무력 충돌은 보이지 않았지만 군인들이 국회 창문을 부수고 진입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을 생각했다. 민주당에서는 여의도당사 또는 국회로 빨리 와달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머뭇거렸다. 챙길것도 많고 준비도 해야하니까 준비하면서 계속 생각했다. 만일을 대비해서 여벌의 옷과 비상약품 등을 챙겼다. 겨울이니까 두꺼운 옷과 양말, 속옷. 핫팩, 반창고와 각종 상비약을 되는대로 가방에 넣었다. 지금 가지고 국회로 갈 건 아니지만 왜인지 준비를 해놔야 할 것 같았다.
이런 것들을 챙기면서 “정말 가야하나? 갔다가 다치면? 큰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조금만 있다가 갈까? 상황보고 괜찮아지면?” 이런 생각을 계속 했다.
핸드폰이 충전이 안돼서 배터리가 얼마 없었다.
충전만 하고 가야겠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으면 아껴 놓은 좋은 술 마실걸… 지금이라도 따서 맛만 볼까? 어쩌면 못 먹을수도 있는데… 아니다. 술을 더 마시면 안될 것 같다…
밖이 춥고 언제까지 있어야 할지 모르니 타이즈를 입고 바지를 입었다. 롱패딩을 입으려다가 어쩌면 뛰어야 할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니 짧은 패딩을 입었다. 목도리는 두 개가 있었는데 얼마전에 산 새놈으로 둘렀다. 아끼고 싶지 않았다. 장갑도 챙기고, 비니는 어디에 뒀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핸드폰 충전은 생각보다 빨리되지 않았다. 51퍼센트가 충전 됐을때 이렇게 미적거리면 안된다는 생각에 몸을 움직여 집 밖으로 나왔다. 밖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부모님께 연락 드려야하나? 많이 걱정 하실테니까 하지말자고 생각했다.
술을 반 잔 정도 마셨으니 운전은 안되고 택시를 잡아보려 큰 길로 나갔다. 이 상황에서 국회로 데려다줄 택시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안되면 따릉이라도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좀 걷다가 택시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기사님은 어디 가냐고 먼저 물어봤다.
국회요!
타세요.
택시기사님이 출근하냐고 물어보셨다.
이 상황을 모르시나?
뉴스 안보셨냐고 물어봤는데 상황른 알고 계셨다. 아무래도 내가 시민이 아니고 국회 직원이라서 달려가는 줄 아셨나보다.
아마 국회까지는 못 갈거에요. 그냥 근처에서 내려 주시면 걸어갈게요.
국회 근처에 가니까 이미 교통이 마비된 상태였다. 나보다 빨리 결심을 하고 도착한 시민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
다가가기 전에 멀리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평소에는 전자담배를 피우는데 일부러 연초를 챙겨왔다.
내가 처음 도착한 곳은 정문은 아닌 옆쪽이었는데 거기에도 이미 수십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국회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은 담을 넘어 들어가려고 했고 경찰이 이를 막았다. 경찰은 국회를 빙 둘러서 빼곡하게 봉쇄했다. 몇몇 사람들은 경찰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어떤 사람들은 시민들에게 밀어 부쳐서 들어가자고 했지만 시민들이 그를 자제 시켰다. 시민들, 국회 직원들 그리고 경찰들은 서로의 선을 지켰다. 말투는 정중했고 침착했다. 서로 싸워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게 입구를 차와 사람으로 막고 있는 경찰들이 야속했다.
한 참 뒤에 머리위로 헬기가 지나갔다. 국회에서 떠나는 헬기 세 대였다. 헬기를 보니 조금 두려웠다. 군대가 국회에 들어오다니…
잠시 뒤에 계엄 해제 가결 되었다고 소식이 들려왔다. 옆에서 유튜브를 보고있는 친구들이 있어 눈길을 주니 나에게 잘 보이라고 핸드폰을 내쪽으로 내밀었다.
정문으로 갔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훨씬 많이 모여 있었다. 깃발들이 흔들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나도 합류해서 구호를 외쳤다. 방송사에서도 보도를 하고 있었고, 개인 방송, 외국인까지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어디선가 헬기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다시 헬기가 돌아 온거라면 상황이 좋지 않은건데… 라는 생각을 했다.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그 소리는 오토바이에서 나는 소리였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화장실이 급해져서 경찰들에게 화장실을 물어봤다. 자기들도 지금 급한데 못가고 있다는 말과 함께 멀리 있는 건물 쪽으로 가보라고 했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시 본대에 합류했다. 한참 지나고 경찰 병력이 하나 둘 씩 철수하는게 보였다. 입구를 막고 있던 경찰버스도 모두 치워졌다.
새벽 네시 쯤이었고 나는 조금의 안도감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이젠V7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