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필 친구야,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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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필아,
너랑나랑 나이가 엇비슷한거 같아 말을 놓고 편하게 이야기한다. 니가 재판정에서나 대법관이지 세상 속 사회에서는 그냥 나이 비숫한 친구또래 아니냐,
넌 도대체 어떤 세상을 살아왔니?
1979년 박정희가 총맞고 죽었을 때 넌 아마 초등학교 5-6학년쯤 되었겠구나. 난 그날 장중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던 흑백티비 장면이 아직도 생각난다. 시커먼 헤드라인을 달고 ‘대통령 서거’라고 쓰인 신문들, 구국의 영웅이라고 전두환이를 칭송하던 조선일보도 생각나고. 부끄럽지만 난 그날 눈물을 조금 흘렸더란다. 나랏님이 죽고 없어서 어른들이 슬퍼하는 통에 내 마음도 거기에 휩쓸렸나봐.
그런데 시간이 흘러 대학에 갔더니 그 박정희가 사실 자기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을 숱하게 때리고 가두고 고문하고 심지어 죽게 하였다는 것을 알고 그 자가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잡혀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골방에 모여앉아 총에 맞아 머리가 터지고 깨지고 죽은 사람들 모습이 가득했던 518 광주민주항쟁의 그 비참하고 잔혹한 상황이 담긴 영상을 보면서 마음 속에서 비명을 몇 번이나 질렀던지 숨이 막혔더란다.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지르는지 인간에 대한 회의감과 권력의 무서움이 가득했단다. 너는 전두환을 향해 독재타도를 외치며 최루탄 냄새 맡으면서 뛰어다니던 선배 동료들이 떠오르지 않니? 사람죽이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대통령을 맞이하고 시민이 주인되는 민주주의를 만들자고 외쳐보거나 들은 적이 있지 않니?
1987년 전두환이 국민에게 항복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하겠다고 했을 때 난 이젠 정말 나라가 바뀌는 줄 알았다. 그런데 또다른 군인 정권이 들어서더라. 여전히 대학과 사회 생활은 위축되고 조심스러웠단다. 입조심, 사람조심, 행동조심하면서 살았어야 했다. 계엄군, 공수부대, 중앙정보부, 안기부, 백골단같은 무시무시한 기억이 여전히 20대의 뇌리에 박혀있어서 말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서 비로소 민주주의 시대의 국민이 어떤 것인지 주권자가 어떤 것인지 조금 맛보았단다. 이명박과 박근혜 시대에 역행해버렸지만 말이다. 철학이 없는 지도자가 나라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여실히 보았더란다. 총칼이 없이도 천박한 물질숭배 사상과 그릇되고 왜곡된 의식을 조장해 사회에 분열을 일으키고 혐오와 증오의 시선으로 나라를 갈라지게 하더구나. 우리 사회는 지금도 여전히 그 그림자 속에 놓여있는거 같아.
문재인 정부에 이르러 비로소 나라의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국가와 국민의 운명이 어찌 달라지는지를 체험했단다. 누군가는 지도자의 공도 얘기하고 과도 얘기하겠지만 문재인 정부 시대에 나는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던 미국, 영국, 프랑스가 선진 한국을 말하고 우리 문화가 세계의 문화가 되고 경제, 외교, 국방의 최정점에서 남북한 통일을 바로 눈 앞에 보고 있는 듯했어. 근데 지금 이게 뭐니, 상필아.
이제 한번 봐 봐, 상필아.
나 어렸을 때 사람죽이고 고문하던 박정희가, 공수부대를 동원해 총칼로 사람 죽이던 전두환노태우가, 제 주머니 채우려 나라 세금을 빼먹던 이명박이, 그리고 독재자 애비의 후광에 쌓여 권력을 놓지 못하던 박근혜가 어떻게 그 위세를 누리며 권력을 유지했을까 박정희, 전두환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같은 자들이 개인적으로 뛰어나서 그랬겠니? 다 군인, 경찰, 검사, 그리고 너같은 판사들이 앞장서 그들의 욕심많던 권력의 길을 터주고 뒤를 봐주었기 때문이 아니니? 그들이 왜 뒤를 봐주었을까? 독재자의 꽁무니에서 흘러나오는 더러운 똥물을 이권이라고 받아 삼켰기 때문이잖니.
상필아 너는 똑똑해서 공부 잘하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서울대학교 법대를 나왔더라. 법을 공부하여 민주주의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큰 공적을 세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너는 법률가도 아니다. 그냥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지금 윤석열의 뒤를 봐주며 흘러나오는 이권을 챙겨먹는 권력의 하수인, 개밖에 되지 못했구나.
누가 그러더라, 너는 재판에서 "피해여성이 술에 취해 ‘필름’이 끊겨 성관계 했더라도 적극 저항하지 않았다면 준강간 아니다."라는 황당한 판결을 했다면서. 오늘 조국 대표에게 자녀 입시비리를 저지르고 청와대 민정수석으로서 감찰을 불법하게 무마했다고 유죄를 선고했더라. 세상을 등지고 너만의 세계 속에서 너같은 자들의 카르텔 속에서 사람을 평가하고 상황을 재다보니 사람사는 세상이 어떤건지 이제는 아주 잊어버렸나보다, 상필아.
사람이 사는건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받지않고 늘 얼굴에 미소를 띄기 바라는 것이고, 아기의 깊고 맑은 눈동자를 감탄하며 바라보는 것이고, 길 가다가 아스팔트를 뚫고 조고만치 올라온 잡초의 새 잎을 보고도 그 생명력에 감탄하는 것이고,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이 맑아지는게 기쁘고 가슴벅차다고 느끼는거란다.
사람이 사는건 말이다, 상필아,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고 나서다가 도적떼들에게 온 가족이 도륙당한 한 교수가 잘못된 건 바꾸자고 큰 목소리 내다가 그 도적떼들에게 되려 다시 잡혀가는 걸 보고 분노하는 것이고, 정신나간 지도자를 물러나게 하자고 외치며 쇠파이프도 화염병도 아닌 촛불과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들고 노래부르고 춤추는 남녀노소 시민들에게 감동하고 그 함성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고, 차가운 길거리에 나간 시대의 동지들이 안쓰러워 따뜻한 커피 한잔, 달콤한 빵 한조각으로 속을 뎁히라고 미리 결제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사하는 그런게 사람 사는 거란다.
상필아, 너를 비롯해서 자기만의 왜곡된 세상 속에서 사람사는 길을 경험해보지도 감싸 안아보지도 못하고 사는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말이다, 종국에는 시들어 말라죽어갈 뿐이란다. 사람이 사람사는 길을 포기하면 그건 짐승이나 벌레, 아니 귀신이나 악귀라는 말과 다르지 않잖니. 아무리 권력의 뒤를 빨아먹는 더러운 삶의 길을 택했다 해도 우리는 사람이지 악귀는 아니지 않냐.
상필아 악귀가 되지 말자, 이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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