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0년대 대학 운동권 사수대 중 가장 강력하다 소문난 두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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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LunaMaria® 112.♡.61.31
작성일 2024.12.23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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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오월대

조선대 녹두대


막상 조선대 다닐때는 왜 저렇게 까지 할까라며 제대로 이해를 못했지만...

(김영삼 때까지 최루탄 날아다녔죠)


졸업하고 나니 저 선배들이 이해가 가더라구요. 물론 운동권 중에 나중에 길을 엇나간 사람도 일부 있지만....

저 사람들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매우 늦어졌을겁니다.

댓글 19 / 1 페이지

slowball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slowball (223.♡.79.56)
작성일 어제 22:52
저 전경일 때 제일 겁났던 곳이 조대 입니다.
90년대 중반입니다.

LunaMaria®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LunaMaria® (112.♡.61.31)
작성일 어제 22:53
@slowball님에게 답글 시위가 있는 날이면 쪽문에서 매번 검문 받았었네요... 90년대...

slowball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no_profile slowball (223.♡.79.56)
작성일 어제 22:54
@LunaMaria®님에게 답글 그 땐 그게 일상이었죠.

eject님의 댓글

작성자 eject (61.♡.239.125)
작성일 어제 22:57
학교 선배가 경영 88학번인데 전경일 때 조선대 진압 나갔다가 방패로 엄청 큰 돌맹이 막다가 엄지가 꺾여서 영구 장애가 생겼드랬어요 ㅠㅠ 본인은 잘 얘기 안 하려고 하는데....ㅠㅠ 이번에 국회 진입한 현명한 군인들처럼 행동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때는 그런 시절이 아니어서 ㅠ

주먹먼저님의 댓글

작성자 주먹먼저 (1.♡.12.142)
작성일 어제 22:57
당시 광주 소재 대학 시위는 단연 제일 강도가 강했어요. 경찰들도 힘들었을 지역이라 생각합니다.
그때에 모습들이 아련히 기억나네요.
경찰들 투입되는 병력수와 최루탄차 등 어머어마 했습니다.

kikki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kikki (211.♡.37.122)
작성일 어제 23:00
국민학교 시절  가족과 밥먹고 있는데 최류탄 냄새가 진동했던 그 시절의 사진같네요
저 당시 대학생들이 보도블럭 뜯어서 던지고 화염병에 백골단들...몸서리쳐지는 기억입니다

사찰금지님의 댓글

작성자 사찰금지 (121.♡.188.235)
작성일 어제 23:01
제가 저때 중학생이었는데 버스타고 전남대, 조대 부근 지나면 멀리서부터 최루탄 냄새가 바로 느껴졌어요.
그땐 그게 싫었는데, 최루탄을 버티며 민주화를 이룬 선배님들 덕에 편하게 응원봉 흔들면서 시위하고 있게 됐어요.
언젠가 만나면 고생하셨다 수고하셨다 고맙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부산혁신당님의 댓글

작성자 부산혁신당 (121.♡.122.153)
작성일 어제 23:07
남태령 대첩때 저 때 선배들같은 사람들이 경찰 상대로 참교육 들어갔으면 지들이 교대하고 귀대할 버스가 사라졌을겁니다. 지들이 오히려 추운데서 벌거벗겨져 혹은 옷을 벗을 수밖에 없게(방법은 상상에 맡깁니다) 해서 덜덜 떨다 지독한 감기에 걸리든지 했어야 했는데, 국민들이 착해서 다행인줄 알아야죠.
어떤 벌레가 미국이나 유럽이었으면 총쏘네 어쩌네 하는데 그 미국 경찰도 그짓거리하다 주방위군이 경찰 진압한 적 있는것도 모르죠. 유럽에선 소방관 파업에서 경찰 상대로 화재진압용 소방수로 물대포 쐈습니다.
국민 무서운줄 모르고 자꾸 깝치니 역시 윤석열과 한덕수 노상원 김용현 기타등등을 모조리 사살해서 국민의 무서움을 제대로 보여줘야죠

농약벌컥벌컥님의 댓글

작성자 농약벌컥벌컥 (104.♡.68.24)
작성일 어제 23:13
학창시절시위때 저분들 상경한다며 급방긋하던 선배가 기억나네요

redseok0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redseok0 (118.♡.12.67)
작성일 어제 23:13
저는 어릴적 전철역 승강장에서 청자켓 그리고 헬멧과 한손에 몽둥이들고 서있는 사람들을 본 기억이 있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수도권 또는 지방에서 올라는 학생들 잡으려고 한거 같습니다.

뱃살대왕님의 댓글

작성자 뱃살대왕 (223.♡.24.169)
작성일 어제 23:18
오월대 녹두대..오랜만에 들어보네요
각 학교마다 사수대가 있었죠 ㅎㅎ

륜일베매국노2찍꺼져님의 댓글

작성자 륜일베매국노2찍꺼져 (58.♡.151.117)
작성일 어제 23:22
중학교도 전대사대부중에 대학도 전남대 다니면서
최루탄 지라~~ㄹ탄 많이 마시고 만져보기도 하다가
오월대는 안하고 따꺼리 정도 하면서
최루탄 정점으로 마셨던 기억이 거의 30년이 되어가네요 ㅠㅠ

바다땅하늘님의 댓글

작성자 바다땅하늘 (59.♡.154.210)
작성일 어제 23:25
우리때 최우탄은 일상 아니겠습니까. 벽돌은 학생만 던진게 아니라 백골단도 준비하더라구요.

울산총각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울산총각 (211.♡.130.171)
작성일 어제 23:32
부산대에도 있었습니다. 시월대라고 ㅎㅎㅎ

kes5713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kes5713 (39.♡.227.111)
작성일 어제 23:36
오월의 사회과학이라는 책을 보시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게 당시 광주는 학생들이 많은 도시 (인구의 1/7이 학생)이었고, 아직 농촌 공동체 문화가 남아 있어서 연대가 강했다고 합니다

932608b9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932608b9 (125.♡.240.204)
작성일 어제 23:36
조대부중 출신입니다. 88 89 90 매년 5월 이면 점심 이전에 하교하곤 했죠. 최루탄.. 지 랄탄.. 형님들 많아 봤습니다. 중학생이지만 대학생 형들이 학교 운동장 가로 질러 후퇴하면 응원하기도 하고.. 전경들한테는 우유갑도 던지고...

알쓸정모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알쓸정모 (218.♡.22.82)
작성일 00:07
일명 전투조직, 전조라고도 불렀죠
남총련 전조들이 타지역에 가끔 지원나갔다고 들었습니다

AlexYoda님의 댓글

작성자 AlexYoda (125.♡.79.65)
작성일 00:11
오월대에 쇠파이프를 잘 다루는 여학우를 20미터 안에서 같이 싸운적이 있었습니다. 검도 선수인줄... 오월대 스카프와 티셔츠가 멋있었습니다. ㅋㅋㅋ

돈쥬앙님의 댓글

작성자 돈쥬앙 (75.♡.130.180)
작성일 01:29
저 분들의 정신이 계승되었다면 계엄실패 후 바로 국민들이 석열이랑 건희 찾으러 다니고 모가지 잡고 광화문에 꿇렸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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