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엘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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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01.12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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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적 어른들은 양코배기라고 불렀다. 서양인이면 모두 미국인인 줄 알던 시절이었다.
흑백TV로 미드 컴뱃을 보며 미군을 정의의 사도쯤으로 여겼고 미 고문단에서 흘러나온 햄 맛에 "역시 미제가 최고야"를 따라하며 자랐다.
헐리우드산 영화가 돌아가는 스크린은 바깥 세상으로 열린 창이었고 미인은 금발에 푸른 눈을 가졌어야 했다.
세상은 불순한 사상이라고도 했다. 내 사고와 인식 속에 그 불순물이 끼면서 의혹과 불신이 또아리를 틀었다.
청춘은 반항을 자양분으로 삼는다. 돌아보면 영문도 모르고 "미제타도"를 외쳤던 것 같기도 하다. 미제(美帝)를 미제(美製)와 혼동했는지도 모른다.
근시인줄 몰랐다가 부동시로 어지럼증을 느끼고 마침내 교정시력을 찾은 건 마흔 무렵이었다.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랬다는 말이다.
책과 역사 공부가 안경이었고 세계 여행이 조명이 되어 주었다.
미국을 보는 내 안경 렌즈는 양측 도수 차이가 심하다. 부동시였으니 그래야 균형이 잡힌다.
원주민을 몰아낸 침탈과 사기의 역사, 극심한 인종차별과 빈부격차 그리고 범죄를 부추키는 총기와 마약이 난무하는 '근본없는 상것들의 나라', 최근에는 거기에 트럼피즘까지 더해졌다.
그럼에는 불구하고 나는 미국을 부러워하고 질시한다. 세계사적 고비마다 적중한 운과 배팅, 외적을 막아주는 천혜의 지리적 조건, 인류 종말의 최후보루일 것 같은 풍부한 천연자원이 내장된 광대한 영토, 전세계 인재를 끌어모으는 막강한 부와 오대양육대주를 누비는 엄청난 군사력. 헤아려보자면 열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그런데 정작 가장 부러운 건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같은 것이다.
그 편안함은 세속의 모든 타락이 소용돌이 치는데도 광석처럼 빛나는 청교도 정신, 불협화음 속에서도 극단과 대립보다는 절충과 타협으로 공존의 길을 트는 정치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만연한 부정과 부패, 도덕적 해이와 불공정 속에서도 중심을 잡아주는 주류 엘리트 집단의 존재에서 기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나 국가운영의 근간이 되는 정치인을 비롯한 관료, 경찰, 군인등 공직사회 엘리트들의 수준과 청렴도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집단이 유능하고 건강하다면 최고권력자의 전횡이나 무지 더 나아가 무속 통치가 국가적 재난사태를 가져오는 일은 근대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집단이 미국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것 같다.
우리 사회 일각에는 트럼프와 윤석열을 한 부류로 엮고 미국과 한국의 극우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열하거나 사악하거나 둘 중 하나다. 저열함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고 사악함의 근저에는 이기심과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
거짓말과 임기응변, 불법과 선동이라는 공통점이 있다손치더라도 근본적으로 트럼프는 자국 이기주의자이고 윤석열은 집단 이기주의자다.
게다가 세계 어느 우익이든 국수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다. 외세와 결탁하고 자국의 존립을 위협하며 정통성을 부정하는 우익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설사 그 두 사람이 똑같이 시한폭탄같은 성정을 가졌고 순간적인 오판을 하게 될지라도 미국은 주류 엘리트집단이라는 안전핀이 걸려있고 한국은 없다는 사실이 이번 내란 사태로 증명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특이하게도 불행하면서 희망적인 나라다.
계엄을 동조하고 지금도 내란에 부역하는 엘리트 공직자 집단과 장갑차를 막아서고 눈보라에도 꿈쩍하지 않은 민주시민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나는 무능하고 비양심적이며 거짓말을 일삼는 부패하고 무력한 주류 집단이 망가뜨린 나라를 시민들이 이토록 굳건하고 오래도록 지탱해주는 사례를 일찌기 세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나는 여전히 미국을 부러워하고 질시한다. 그런데 미국인이 되고 싶지는 않다. 미국은 시민이 폭동을 일으키지만 한국에서는 시민이 폭동을 진압한다.
나는 한국사회에서는 거의 유일한 초엘리트 집단인 시민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ps.
아이러니하게도 반국가내란동조세력인 그들은 하나같이 서울대와 육사를 나왔으며 수석이 아니면 입학과 졸업을 하지 않았고 동기 중 선두주자가 아니었던 적이 없던 자들이다.
윤석열과 그를 따르는 괴뢰집단이 우리나라에 끼친 뜻하지 않은 선한 영향력이 있다면 시험성적은 인성과 별개이며, 학벌은 지적수준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걸 증명한 것이다.
페친 문성훈님 글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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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hind님의 댓글
저쪽은 엘리트들이 이끈다면, 우리는 국민이 끌어가는거죠. 엘리트는 그냥 편승. 엘리트가 저쪽처럼 조금이라도 이끄련 순풍인데, 이게 아주 드물죠. 신과 자연의 섭리인가부다 싶습니다. 너무 잘나가면 주변의 침탈이 심해질까봐 이런 역경을 만들어주나.. 싶습니다;;;;
볼통통오동통통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