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현이 말한 중과부적 : 군의 태도를 보며 걱정하시는 분이 좀 계신듯해서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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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이 말한 중과부적 : 군의 태도를 보며 걱정하시는 분이 좀 계신듯해서 적어봅니다
말 그대로 적은 숫자로는 많은 숫자에 맞서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적어도 많은 국민들이 지금껏 밤잠 설치며 걱정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지금의 상황이 실패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친위 쿠데타이고, 그 쿠데타에 직접 동참이든 암묵적 동조 지원 세력이든 대부분의 기득권 세력과 권력기관 & 무력사용이 가능한 집단이며 그들이 언제든 다시 발호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과정을 되짚어 보면 계엄해제에 관한 국회의결이 있고서도, 내란 일당은 군을 완전히 물리지 않고, 대책을 세우는데 부산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수 시간 후에 계엄해제 발표를 했고, 김용현은 ‘중과부적’이었다는 라는 말을 남기고 얼마 뒤 본인이 가장 포근하게 느꼈을 검찰에 자진(?) 출석을 했습니다.
분노와 울분으로 밤을 새웠던 국민들 입장에서 볼 때, 국민들 편에는 200석이 채 안되는 야당 의원들과 국민들 뿐이었고, 무력을 앞세우는 그들에 비해 오히려 힘에 있어서는 중과부적이라 느꼈을 법 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윤석열과 김용현도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윤석열은 몰랐을 수도 있겠습니다. ㅋ)
그럼에도 왜 그들은 어떤 힘을 느꼈길래, 그런 말을 했을까요? 제 생각에는 그들의 우군이 생각보다 강하고 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 봅니다. 그들 입장에서 볼 때 더 많은 우군을 동원할 수 있었으나 은밀성을 확보하기 위해 실제 생각했던 인원보다 더 적은 인원이 투입될 수밖에 없었고, 당초의 디데이와 달리 때가 앞당겨진 원인도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군일 수는 없겠으나, 강한 대립 위치에 설 것이라 판단하지 않았던 미국의 강경한 태도도 있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넘기 어려운 벽은 시민들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국민이라는 존재로만 인삭되고 있었다면 그들은 별로 두려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국민이라고 하면 단어를 읽고 읊조려봐도 특별한 감흥이 일지 않는 단어입니다. 어떤 나라를 구성하는 인적 자원 정도의 수동적 의미로도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시민은 능동적이고 역동적입니다. 민주공화주의적 가치를 이해하고, 수호하려는 덕성을 갖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뜬 구름 잡는 소리로 보실수도 있겠지만, 12월 3일 장갑차와 완전무장한 군인들을 막아선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또 한 축에는 내란세력의 불의한 명령에 태업으로 맞선 군인과 경찰들이 있었습니다. 상명하복이 절대적인 그들은 왜 그런 모습을 보였을까요? 그들 다수는 그 자신이 시민이기도 하며, 적어도 시민적 덕성을 가진 가족, 친구, 이웃들과 관계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내란일당은 그 날! 어쩌면 그들에게 가장 호기였을 그 날, 2차 계엄과 3차 계엄을 고민했던 그 날. 결국 그 벽을 넘지 못한 것입니다. 내란 일당도 고민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힘이라는 옵션은 그 날이 최대치이고 그 이후는 점점 소멸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믿음을 강변할 수는 없지만, 저는 내란 일당 혹은 군경찰, 언론, 여러 권력기관에 남아있는 잔존 내란세력의 2차 계엄, 혹은 무력 반란을 그렇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상선약수’라는 말이 생각보다 무섭고 강한 의미라는 것을 되새겨보기 때문입니다.
일찍 주무시고, 몇 시간 안 남은 새벽을 즐겨보시죠.
유예된다면 최선을 길을 찾아 또 걸으면 됩니다. 따박따박 뚜벅뚜벅.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