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당전쟁 당시 당나라가 신라에 애먹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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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01.2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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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외교술이 워낙 예측불허여서 그렇습니다.
신라는 고구려 멸망 후 바로 고구려 부흥운동을 지원하면서 고구려 유민들을 부추겨 당나라를 두들겨패면서도
사절단을 보내서 우리도 고구려 부흥운동 때문에 죽겠다고 자기가 지원한 걸 숨긴다거나
신라와 당이 한창 전장터에서 전쟁을 벌이는데도 외교관들은 아 이건 우리 신라의 본 뜻이 아닌
과격한 군인들이 멋대로 일을 벌인 거다 미안하다 도게자 박을게 이렇게 오리발을 내밀고
신라가 불리해지면 우리 이쯤 합시다 사과의 의미로 선물 가져왔어요 하며 울며 불며 쇼를 하고
신라가 유리하면 그래도 당나라가 우리보다 더 땅도 넓고 물산도 많은데 좀 저에게 양보하면 물러날게요 이런 식으로
한쪽으로는 죽빵을 날리면서 한쪽으로는 사랑해요~ 이렇게 가스라이팅을 합니다.
당나라 입장에서 이런 신라를 눌러주기에는 토번이나 돌궐 등 외부의 적들 때문에 신경쓰이기도 하고
일단 나당전쟁도 당나라가 먼저 약속을 어기고 시작한 거라 무작정 강경책으로 나가면 국가의 위신이 손상되죠.
신라는 이런 당의 약점을 잘 파악하고 온갖 수를 쓴 거죠.
언듯 보면 비겁해 보이긴 한데 외교에서 중요한 건 바로 국가의 이익이고, 신라는 그 목적을 충실히 달성했습니다.
전 그래서 이런 마키아벨리적인 신라의 외교술은 오히려 지금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또 이러는 신라가 무슨 외세에 사대주의적이고 의존적이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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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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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눈님의 댓글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춘추가 있었죠
김춘추(무열왕)가 그 기틀을 마련했고
거기에 맞춰서 아들(문무왕) 때 정점을 찍었습니다.
김춘추(무열왕)가 그 기틀을 마련했고
거기에 맞춰서 아들(문무왕) 때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대의벗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