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중국인이 한국이 자기네 속국이었다고 해서, 공부 좀 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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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는 사이는 아닌데 중화주의 사상이 있어서 중국과 조선이 조공책봉 관계였다고 자주 그래서, 그때마다 조공책봉은 형식적이고 실제로는 독립적이었다고 해도 잘 먹히지 않더군요. 그래서 공부를 좀 해 보고 의외의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19세기가 끝나기 직전에 청나라와 조선이 근대조약체제에서 통상조약을 맺으면서 공식적으로 이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고 서로 대등하게 대하기로 했다는 사실입니다. 즉, 1899년 大韓國大淸國通商條約을 맺는데 그 문서에서 청나라는 조선(대한제국)을 大韓國으로 고종은 大皇帝로 호칭하고, 조선은 청나라를 大淸國, 청나라 황제를 大皇帝로 대등하게 호칭합니다. 이때 청나라 황제는 光緖帝였고, 유명한 서태후가 실권을 잡고 있을 때였습니다. 1903년 광서제가 고종, 즉 大韓國 大皇帝에게 문안하는 국서도 남아 있고요.
저는 그냥 조공책봉체제 상태에서 청일전쟁에서 진 청나라가 조선에 대해 종주권을 포기하고 얼마 안 있어 청나라와 조선이 망하면서 조공책봉체제가 비공식적으로 와해된 걸로 알았었는데, 두 나라가 망하기 전에 과거의 관계는 확실히 공식적으로 정리를 했더군요. 이 통상조약 문서를 보여주니까, 이런 게 있었냐며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니 다음부터는 속국 운운하지 않더군요. 비공식적으로 끝난 게 아니라 공식적으로 끝난 거니 ...^^
둘째는 조공책봉관계를 바꾸자고 고종이 먼저 그래도 청나라에 넌지시 말은 걸어보았다는 점입니다. 청나라 조정에 이제는 사신 보내지 말고 양국 수도에 외교관을 상주시키고, 무역도 서양과 하는 것처럼 육상보다는 해상 항구를 통해 자유무역을 하자고 했는데, 이게 청나라와의 관계를 서양 나라들과의 관계처럼 변화시키기 위한 빌드업임은 청나라도 직감했죠.
Saracen님의 댓글

어떤 대국이던 대국으로 지위를 유지하려면, 상당한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로마도 그랬고, 중화도 그랬고, 미국도 그렇습니다. 원래 조공 무역이란게, 물건을 바치는 게 아니라, 중국이 상당한 답례품을 내려주고, 당시의 선진국이었던 만큼 그 답례품의 가치가 상당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은 오히려 조공을 많이 하려고 했고, 청나라가 거부할 정도였습니다. 이런걸 지금 중공인들 (이 사람들이 숫자만 많지, 오히려 중국 문화를 계승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할만큼 다르죠)이 오히려 모를 겁니다.
트라팔가야님의 댓글

조공-책봉 관계는 형식적인 외교 관계일 뿐, 속국 관계가 아니었죠!!!
“명나라 홍무제(태조)는 조공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조선은 스스로 그 나라 법을 지키며, 명이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명실록》, 1393년) → 즉, 명은 조선을 직접 통치하지 않았으며, 조선 내부 정치에는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반건조우주오징어님의 댓글

댓글의 다른 분들의 접근으로 보완이 필요하지 않을까합니다.
츄하이하이볼님의 댓글의 댓글
sequ님의 댓글의 댓글
별멍님의 댓글

그럴땐 엉뚱한 질문을 던지면 딱 좋아요
어 구글알아? Facebook 트위터는? 바로 입꾹닫합니다.
sooo님의 댓글

너도 21세기 사는 사람이고 생각이란게 있으니
이제는 바꿔서 니들이 속국 좀 하지....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니...
물론 몬 알아 듣겠죠..
약? 올려도..
그런 강대국 나라가 어째 국민들이 투표도 못하냐??. 라고 해주시면.. ㅋ
크리안님의 댓글

문화대혁명 후 증거도 다 불태웠습니다.
지금 중국도 예전엔 대만이 중국
현재 중국은 중공이었죠 ㅎㅎㅎㅎ
생각필수님의 댓글

당시의 조공은 일종의 공적 영역의 무역입니다. 조선 조정에서 물건을 보내면 그에 상응하는 것을 보내는 방식이죠.
버미파더님의 댓글
전광훈 등에 세뇌당한 사람들이 머 알아 먹기나 하나요.
중국 땅의 역사를 모두 한족의 역사라고 확대해석하는 애들이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