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개신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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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가 영 맛이 가버린 근원적 문제 중 하나기도 합니다. 그건 믿음에 대한 확신의 상실이죠. 제가 만든 말이 아니라, 헤르만 바빙크라는 저명한 네덜란드 현대 신학자가 말한 겁니다.
개신교는 원래 확신의 종교입니다. 사람들이 이신칭의로 많이 축약해서 말하기도 하는데, 마르틴 루터부터 칼뱅에 이르기까지 이신칭의가 중심이 된 복음에 대한 확신은 16C 종교개혁자들의 공통된 특징이었어요.
그런데 17C에 들어가면 그 확신이 흔들립니다. 확신은 주입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는데, 그게 잘 안 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 확신을 대체한 게 '교리'였습니다. 그런데 교리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확신을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교리 중심의 신앙에 회의감을 가진 사람들은 감성적이고 개인주의적 신비주의 계열 개신교 그룹을 이루게 됩니다. 18C에 들어서면 존 웨슬리 같은 사람이 감리교 운동을 벌이는데요, 이들은 일종의 성령체험, 특히 거듭남(born again)을 강조합니다. 이게 영국-미국 대각성 운동과 맞물려서 잘 되었어요. 그런데, 감정이나 성령체험 같은 경험은 확신을 주는 것은 아니었어요. 사람이 늘 컨디션이 좋은 건 아니잖아요. 감정이나 경험은 오래갈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19C에 들어가면 슐라이어마허라든지 슈바이처 박사라든지, 이런 이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도입해서 합리성으로 이 부분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여기에서 신학이 맞니 틀리니 하는 건 의미가 없구요, 중요한 건 이건 확신을 줄만한 게 아니라는 거죠. 합리성은 20C에 들어가면 양차대전으로 완전 개발살이 나니 말이죠.
한국 개신교회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해요. 처음 한국교회 시작점에서 평양 중심으로 교세를 넓히기 시작하고, 3.1운동이나 독립운동도 참여하며 에너지를 있었지만, 집요한 일제의 공격과 포섭으로 한국 개신교회는 확신이라는 날개가 꺾여버립니다. 해방 이후 교회는 또 급격하게 양적으로 확대되면서 확신이 복음에 대한 확신보다는 '신도 수'에서의 확신으로 점점 변질되었어요. 그러니깐,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이 점점 에너지가 없고, 개신교 가정에서 난 아이들 입장에서는 교회는 확신을 외치는데, 확신을 발견할 수 없으니깐, 대체물을 찾기 시작한 거죠.
그 확신의 대체물이 무엇이었냐. 온갖 오대양 사건들을 일으킨 사이비들, 그리고 90년대는 휴거론, 21세기 들어와서는 신천지 이런데 빠지는 것입니다. 이게 논리상으로는 더 그럴싸해보였거든요. 암튼 이 태생적 문제를 개신교회가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비슷한 일이 계속 벌어진다 봅니다. 이미 전광훈, 전한길, 손명보 이런 작자들이 득세하지 않습니까? 이들의 태극기, 성조기, 스탑 더 스틸은 이 확신의 그럴싸한 대체물이거든요. 개신교인들은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노마드님의 댓글

사회 통치를 위해 종교가 사용되었고 지금도 지구 전체로 보면 반 이상이 아직 종교를 국가의 지배 도구로 사용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도 조금만 변형되면 파시즘과 일체가 되기에 지금 전광훈, 세이브코리아 등 기독교세력이 극우로 선동하는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이킬수 없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고이 심어가고 있는거 같아 씁쓸합니다.
FV4030님의 댓글의 댓글
유비현덕님의 댓글

블루모카님의 댓글

트럼프가 실존하는지 어떻게 믿져?
지구가 둥글다는 걸 못 믿는 사람들도 많져.
그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고 하는 사람들을 광신도나 속았다고 이해 못한다고 하겠져.
문재인 금궤 2톤도 믿고.
우리가 진짜 인간인지는 어찌 믿져?
혹시 npc인가?
FV4030님의 댓글의 댓글
aicasse님의 댓글의 댓글
반대로 _모든_ 종교에 대한 _개인적인_ 믿음의 정당성으로 나아가게 되죠.
누구는 알라를, 누구는 야훼를, 누구는 제우스를, 누구는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을 믿어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신학적 존재론이 아니라 지구가 둥글다거나 하는 과학적 사실에 대해서도,
아무거나 상관없다라는 입장이 되어 버립니다. 아니 내가 믿는다는데, 어쩔티비?
호교론적인 관점에서는 매우 방어적인 입장인데, 반대로 모든 것을 방어하게 되죠.
뭐, 재미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입장이 절대 진리를 숭상하는 기독교와는 대체로 잘 맞지 않죠.
제가 기독교인이 아니다 보니, 딱히 그래서 제우스를 믿으면 안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에 대해 어떤 가정이든 동일하게 받아들일
만하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친 허무주의입니다.
FV4030님의 댓글의 댓글
감정노동자님의 댓글

개신교의 경우 우상숭배라는 명목으로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일체의 감각적 행위를 배제하고 오직 신앙,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신앙을 강조하다보니 사람들이 뭔가 감각을 통해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것을 요구하게 되고 대표적인 것이 부흥회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성령의 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인간 정서를 건드리고 감각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치유활동, 언어, 춤이나 음악같은 공연 동작 등을 동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신학적 이성과 합리성은 점점 멀어지고 감각적 만족감을 믿음의 희열, 확신, 성령의 거듭남으로 인식하는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감각에 몰두하다보면 종교적 리더의 주관적인 개입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쉽게 죄자우지 하게 만드는것이 아닐까요 대표적인 것이 전광훈이나 손현보같은 정통 교회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있는 이단 사이비 교주들인거 같습니다.
결국 교회에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신학교육과 신학적 내용을 삶으로 표현해내는 예배, 믿음생활의 규정들이 필요해보입니다. 이것들이 소홀해지거나 벗어나면 이단, 사이비가 되는거죠
FV4030님의 댓글의 댓글
밝은계절님의 댓글의 댓글
예수님이 태어나신지 2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아마 우리가 상상도 못해본 많은 종교적 사건ㅇ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 간의 사건들로 인해 좀더 합리적인 방향을 찾은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눈가리고아앙님의 댓글의 댓글
돌무더기님의 댓글

기독교는 예수의 존재와 가르침을 신의 세 존재 중의 하나로 격상시키면서 의미를 강조하며 시작했지만.. 예수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에 관심 갖고 그걸 지키겠다는 사람은 더욱 줄고 있죠..
십자가는 선한 삶을 지키기위한 선한 희생의 상징이 아니라, 예수가 우리죄를 사하였으니 그걸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식의 알맹이 빠진 교리가 되어 버린지 오래고요..
의미를 거세하고 빈공간을 목사와 기득권의 입맛에 맞는 마타도어들로 채운 것이 지금의 개신교라...
FV4030님의 댓글의 댓글
돌무더기님의 댓글의 댓글
기독교는 탄생이래로 교조화 교리화를 통해 예수의 존재 의미를 희미하게 하려는 세력과 그 와중에서도 본질을 쫓는 사람들의 대결이었던 것 같습니다.
빅머니님의 댓글

신앙은 모순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르네상스 이후 본격적으로 과학적 사고를 하게 된 인간들이 그 모순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어 버린 거죠.
당장 삼위일체만 해도 셋이 하나라는 모순을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면 절대 이해 못합니다. 부처님이 꽃을 들자 마하가섭만 그 의미를 알아차리고 웃자 염화미소라는 말이 나온 것처럼, 종교적 가르침의 정수는 침묵하는 가운데 마음으로 깨달음으로써 언어도단의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로 쉽게 설명하면 신비라고 부를 수가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원래 고대로부터 주요 종교들은 참선, 명상, 묵상 등 다양한 이름이 있기는 하지만 고요히 홀로 앉아 내면으로 파고드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기독교도 성경에서 "하나님은 네 안에 계시고, 너는 하나님 안에 있다."라고 가르치고 골방에서 은밀히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WinterIsComing님의 댓글

종교서가 아니라 철학서, 자기개발서 느낌이 들어서요.
마을이님의 댓글

종교의 필요성은 점점 더 사라질테고
좁아진 폭만큼 남아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광신도가 되어갈 거라고 봅니다.
다만, 종교가 아예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 봅니다.
인간 본성 자체가 자기 신뢰가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의지해야 그 삶을 유지해 갈 수 있는데...
가장 의지하기 쉬운 것이 종교인 탓이지요.
곰팅이1님의 댓글

어쨌든 매우 좋은 지적이었죠. (물론 지금도 가나안 신자인척 살고 있습니다만..)
"창세기 1장 1절을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FV4030님의 댓글의 댓글
aicasse님의 댓글의 댓글
얼마 전에 우연히 사도신경을 다시 외워봤는데, (네, 아직 외우고 있습니다.)
그 많은 구절 중에서 믿는 구절이 정확히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가 유일하더군요. :)
힛힛츄님의 댓글

성경의 양떼비유처럼 양인 성도들이 목자인 예수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수시로 지금 잘 따라가고 있는지 비판적 사고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확신해서 가던 길이 잘못된 길이었음을 깨달았을 때도 다시 길을 찾아갈수 있죠.
FV4030님의 댓글의 댓글
TokayDrago님의 댓글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가 수천억 번 반복되었다는 것이니 말이죠.
FV4030님의 댓글의 댓글
부서지는파도처럼님의 댓글

성경을 읽다가, 혹은 설교 가운데 생겨난 궁금증을 물어보았을 때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냥 믿으라'던지, '의심이 생기는 건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 그런 건 아닐까요.
사유 없는 맹신은 [광신도]가 되기 딱 좋쥬... ^^;
FV4030님의 댓글의 댓글
한편, 확신이 흔들리는 걸 개신교인이 두려워한다는 것이야말로, 이미 확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죠.
DavidKim님의 댓글

FV4030님의 댓글의 댓글
queensryche님의 댓글

Java님의 댓글

어릴때부터 거의 골수 무신론자였던 저였지만,
청소년기에 꿈이라긴 뭐하고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 교주였습니다.
내 말에 꺼벅 죽는 최소 수백명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죠.
그냥 가볍게 생각만요. ㅋㅋ
그런데 저 스스로를 아무리 봐도 사람들을 휘어잡는 매력, 말빨, 기타 등등 교주로서의 재목이 안되더라고요.
가만 보니 신학대 정도는 갈 수 있는데,
한번도 스스로 용납 못할 거짓과 사기를 맨날 치는 것은 절대 안될 일이고,
내앙인 성격상 사람들 대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죠.
해서 가볍게 생각해보고 접었습니다.
근데 지금 보니 교세가 쟁쟁한 개신교는 거의 모두 사이비 교주들이 다스리고 있네요.
그때 성격을 바꿨어야 했나 싶습니다.
까마긔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