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리 미노그 콘서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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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리 미노그(Kylie Minogue)의 열 여섯번째 세계 순회공연 Tension Tour를 보고 왔습니다. 2025년 3월 14일 오후 7시 30분 대만 가오슝 아레나에서 열렸고 저로서는 세 번째 보는 카일리의 콘서트였습니다.
이번 순회 공연은 2월 말 호주에서 먼저 시작 되었습니다. 카일리가 데뷔한지 벌써 37년인 만큼 오랜 세월을 함께 같이 해 온 열성 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보통 언론에서 카일리에 대해 혹평하면 팬들이 방어해주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공연 직후 올라온 유튜브 영상을 본 팬들이 충격과 우려를 표한 것입니다.
화려한 의상, 조명, 안무 등으로 관객을 사로 잡았던 예전의 공연과는 달리 매우 단촐하다못해 저예산으로 보일 법한 무대, 싸구려로 보이는 의상, 무언가 엉성해 보이는 안무 등 팬들이 혹평이 이어졌습니다. 저 또한 충격을 많이 받은지라 정말 이번 공연에 가야하나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다만 카일리가 벌써 56세라는 점, 그렇기에 70번 이상 공연을 하는 이런 대규모 세계 투어를 다시 보지 못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에 공연을 가는 쪽으로 더 마음이 기울어졌습니다. 팬들의 원성이 계속 이어지는 와중에 언론에서는 공연에 대해 최고의 호평을 연달아 내놓았고 무엇보다도 팬들이 지적한 사항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공연이 개선 되는 것을 보며 결국에는 콘서트 표를 예매 하게 되었습니다.
공연을 3주일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예매 했기 때문에 가장 비싼 표 와 가장 무대에서 가까운 쪽 좌석 등은 모두 매진 되었고 결국 약 20만원짜리 두 번째로 비싼 좌석을 예매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운이 좋아서 무대에서 꽤 가까운 곳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공연이 열린 가오슝 아레나는 평소에는 농구 경기가 많이 열리고 음악 공연도 자주 열리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오슝이라는 도시 자체가 요새는 음악 공연을 많이 유치하여 이것이 도시의 커다란 산업으로 성장해 있다고 합니다. 제 입장에서는 볼 것이 더 많은 타이페이에서 공연이 열렸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정말로 볼 것이 없는 이 도시에 오로지 공연을 보기 위해 간 셈입니다. 타이페이로 출발하는 마지막 고속 열차도 밤 10시 10분 경에 끊기기때문에 현지인이 아닌 이상 가오슝에서 일박을 해야 하고 결국 이것이 가오슝의 경제의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저로써는 이해가 안 되지만 대만에 오래 산 제 친구의 아래 따르면 대만의 현 집권당의 지지기반이 이 동네이기 때문에 요새는 큰 국제 행사를 가오슝에 많이 몰아주는 것 같다고 합니다(?).
카일리 미노그를 유럽이나 호주까지 가지 않고 그나마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긴 하지만 아시아에서 열리는 공연은 늘 원래 공연보다 무대 규모가 축소 되어 열리곤 합니다. 팬으로써 이미 겪은 일이기에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예상 했고 역시나 그러 했습니다.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아시아 공연도 다른 지역 만큼 신경써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이번 공연이 겉보기로는 워낙 단촐해서 아시아 버전으로 축소 되어봤자 호주 버전과 크게 다를 것도 없었습니다.
개선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춤추는 사람들의 복장에 대체로 어두운 색이 많이 쓰였습니다. 무대 배경이 검은색인데 이들의 복장이 검은색과 은색이었죠. 무대 위에서 흥을 돋구어야 하는 이들의 역할을 생각해 본다면 매우 이상한 결정입니다. 국제적인 수퍼스타에 어울리는 별다른 무대장치도 없고 어디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LED 화면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카일리 미노그가 입은 복장조차 별로 비싸 보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공연에 사용된 노래도 이번 투어를 위해 새롭게 리믹스 된 것도 있지만 예전 공연에서 이미 선보인 버전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불만사항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제가 본 카일리 미노그의 공연 중 이번 공연이 단연 최고였습니다. 댄서가 잘 안 보이니 오히려 카일리가 무대에서 돋보였습니다. 7kg이 넘는 옷과 모자를 벗어버리니 자유롭게 무대를 돌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케이팝에 길들여진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춤동작이 정확하지 않고 힘이 덜 들어가 보였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공연 중 쉬는 시간이 거의 없이 두 시간동안 지난 38년간 선보인 스물 입곱개의 히트곡을 꾹꾹 눌러담아 선보였습니다. 스피커 성능은 최고였고 LED 화면의 화질도 매우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카일리 미노그의 존재감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활동 초기에는 라이브 공연 실력이 그닥 좋지는 않았고 시간이 지나며 비음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해서 제가 실망하기도 했습니다만,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녹음하는 기술을 익히며 연습을 거듭한 결과 예전에 비해훨씬 더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이브와 애드립 실력이 일취월장했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고음을 내는 것은 물론 두성도 구사합니다.
여기에 대해 열성적인 대만 팬들의 반응도 광란에 가까웠던 공연의 분위기에 매우 큰 몫을 했습니다. 같은 아시아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크게 히트하지 않았을 것 같은 노래도 많이 따라불렀습니다. 절대 다수의 관객이 다 좌석에서 일어나 춤을 추며 공연을 즐겼습니다. 반응이 정말 뜨거워서 카일리가 살짝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대만 관객의 호응이 좋은 것도 사실이겠으나 아시아 곳곳에서 모여든 열성 팬들이 많기도 했을겁니다. 이번 순회공연중 대만 공연이 유일하게 아시아에서 열리는 주말 공연이었습니다. 방콕과 도쿄는 모두 평일이었습니다. 35년동안 팬을 하는 저 같은 아저씨 팬들이 주관객층이 될 것이라는 제 예상과 달리 젊은 팬들이 훨씬 많았고, 그날 밤 만큼은 공연장이 아시아 최대 규모의 게이바가 될 것이라는 제 예상과 달리 여성 관객도 매우 많았습니다.
1990년에 팬이 된 후 카일리 미노그의 음반을 사는데에 적지 않은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국내 음반사에서 발매한 앨범 속지를 만드는 데에 감수를 해보기도 했고 팬클럽 활동도 해봤구요. 우리나라에서는 참 인기가 없는 가수라 친구들 사이에서 신기한 놈 취급도 많이 받았죠. 카일리가 세월이 흘러도 일에 중독되어 정말 쉼 없이 일을 하는 덕분에 팬으로서 여전히 신곡이 발표될 때 마다 설레일 수 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선택한 가수가 여전히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해주니 그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제 선택이 옳았다는 자부심도 얻게 되었고 이번 공연에 가기로 결정한 것도 옳았습니다. 이번 공연은 카일리 미노그라는 가수의 존재감과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버리신 카일리 미노그 팬클럽의 주인장 Moonlight 님을 추모합니다.)
(이제는 아이폰 프로를 사야겠습니다!)
PWL⠀님의 댓글의 댓글
쟤 왜 저러냐고 다들 싫어했어요.
간만에 전신으로 춤추고 소리 질러봤습니다.
아기고양이님의 댓글

레드향님의 댓글

가끔 기분이 다운 될 때 유튜브 켜고
Especially For You (BBC 방송 공연 Live In Hyde Park 2018.)를 듣는 1인입니다.
그럼 감쪽같이 기분이 좋아집니다.
올려주신 글을 보며 PWL님 경험하신
감동과 기쁨이 저에게도 전달되는 느낌이라
감사 인사 드립니다.
참~ 더불어 대만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작년에 두 번이나 방문했는데
기회되면 공연과 함께 하는 여행도 생각해봐야겠습니다.
PWL⠀님의 댓글의 댓글
오로지 국립고궁박물원에 다시 가보기 위해 심야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그곳에서 인간의 집념과 광기를 보았습니다!!!
diynbetterlife님의 댓글

mongolemongole님의 댓글

PWL⠀님의 댓글의 댓글
누님 덕분에 영어 배웠으니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ㅎ
queensryche님의 댓글

짧은 글에 공연을 본 느낌입니다, 이제부터 저축 열심히 하셔요!!
PWL⠀님의 댓글의 댓글
누님을 더 가까이 볼 그 날까지 돈을 모으겠습니다(!!!)
거덜리우스님의 댓글
이미지와 정말 찰떡입니다
최근 뮤비들 보면 대단하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좋은 공연 관람 하신거 축하드립니다
좋은 공연 관람만큼 좋은 활력소도 없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