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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으로 중앙대 이리분교에 다녔던 외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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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홍성아재
작성일 2025.03.27 07:27
1,159 조회
6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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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글 쓰기조차 힘들 정도로 암울해서 게시판에 글 안올리다가 간만에 글 올립니다.


요즈음 중앙대 출신들이 언론에 많이 오르내리네요.

90살이 훌쩍 넘으신 제 외삼촌이 한국전쟁으로 생겼던 중앙대 이리분교에서 법학을 전공하셨습니다.

전주와 익산을 본거지로 해서 살았던 저희 외가집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가지 않아서 전주고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야하는 외삼촌이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없었다고 해요. 그나마 다행히 중앙대학교가 임시로 이리분교를 만들어서 외삼촌을 비롯해 외삼촌 전주고 동기들이 모두 중앙대로 진학했답니다. 당시 전북에서 갈 수 있는 최상위권 대학은 오직 중앙대학교뿐이었대요. 다른 대학들이 피신한 부산까지 가기에는 다들 부담이었으니까 이리에 있는 중앙대를 갔다는 겁니다.

외할머니가 정말 땅 팔아가며 외삼촌을 공부시키셨죠. 외삼촌 등록금, 고시 공부할 돈 마련한다고 외할머니 동생이 하는 건설사에 투자했다가 부도나서 외가집이 몰락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때 외할머니 동생이 건설한 다리는 지금도 전주 한옥마을 부근에서 볼 수 있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삼형제 막내였는데 큰외할아버지는 충남 논산 연무대에서 양조장을 하셨어요(물려받은 재산이 꽤 있어 양조장을 인수한 겁니다). 황화주조장이라고. 논산훈련소 방문한 사람들에게 막걸리를 팔아 큰돈을 버셨죠. 옛날에는 연무대가 전북이어서 전북 출신들이 많이 옮겨가 살았습니다. 둘째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큰 외할아버지가 둘째 자식들을 돌봤다고 하시더군요. 그 둘째 자녀 후손 중 한 분이 연무농협 조합장을 아주 오래 하셨어요. 지금은 없어진 LGIBM 초대 사장을 하신 저희 육촌형님도 그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저희 외할아버지는 증조 할아버지가 물러주신 재산을 방탕하게 까먹고 살다가 외할머니의 투자 실패로 말년이 힘드셨어요.

한국전쟁 과정에 대학을 다닌 외삼촌은 대학 다니면서부터 친구들과 사법고시 준비를 하셨다고 해요. 그옛날에 고시원이라는 게 없으니 쌀 짊어지고 절에 들어가 공부를 했답니다. 같이 공부한 친구 5명인가는 모두 붙어서 나중에 검사장을 하기도 했는데 외삼촌은 오랫동안 공부했음에도 결국 합격을 못해서 공립학교 국어교사로 일하시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썼지만 그러다 1975년 일본에 파견교사로 다녀오시기도 했구요. 중앙대학교 역사를 찾아보면 한국전쟁 당시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중앙대와 사법고시까지 요즘 어떤 인물을 연상시키는 키워드와 많이 닮았죠?^^ 물론 결과는 다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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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1 페이지

제프리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제프리
작성일 03.27 07:50
익산(구 이리)에 중앙대 분교가 있었던 때가 있었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의과대학생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의과대학생
작성일 03.27 08:17
중앙대 익산분교라는게 있었군요.
처음 알았네요.

통만두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통만두
작성일 03.27 08:40
외삼촌께서 차기 대통령님과 동기시군요 부럽습니다 ㄷㄷㄷ
61 랜덤 럭키포인트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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