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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 1 페이지

JuneEight님의 댓글

작성자 JuneEight
작성일 03.31 15:07
계보가 확실하네요.

무텐님의 댓글

작성자 무텐
작성일 03.31 15:12
뿌리부터 썩었단 이야기 군요

routing님의 댓글

작성자 routing
작성일 03.31 15:12
쪽바리들 거둬내야됩니다.

Gesserit님의 댓글

작성자 Gesserit
작성일 03.31 15:16
진지한 댓글 달자면, 최초 검사는 헤이그 열사로 알려진 이준입니다. 근대 법률 학교인 법관양성소를 나와서 처음 임용되었죠. 그 전에 있던 대부분의 조선시대 및 대한제국 검사, 판사들은 그냥 예전에 관직 하던 사람들을 그대로 판사, 검사로 겸직시켜서 일하게 한 것이라서 사또가 하던 소위 '원님 판결'과 다르지 않았죠. 즉, 법관양성소가 세워지고 거길 나와서 판사, 검사로 임명된 사람들을 진짜 판사, 검사들로 부를 수 있죠. 이 법관양성소는 1909년에 법학교로 바뀌고 나중에는 서울대 법대의 전신이 됩니다.

을사오적이 모두 판사였다고 하지만, 앞에 적었다시피 그냥 당시 고위 관직 또는 지방관으로 있던 관료들이 그냥 판사, 검사를 겸직해서 일했던 것입니다. 근대 사법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재판정 체제를 만드는데 법학 양성 기관을 통해 인재가 배출되려면 한참 걸려기 때문에 그랬던 거죠. 전국 지방 행정기관이 330개였는데, 330개 재판소에 판사 1명만 배치하려고 해도 법관이 330명 필요하거든요. 일단 임시로 지방관(사또)에게 판사를 겸임시켜서 간단히 해결합니다. 당시 대부분 관료들은 지방관을 경력상 1회 이상은 역임했고요. 암튼 정식 재판관 임명은 법관양성소가 재대로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부터 시작되죠.

하늘기억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하늘기억
작성일 03.31 15:59
@Gesserit님에게 답글 좋은 의견이십니다.
그냥 기회주의자들이 다 헤처먹다가 나라까지 팔아먹은겁니다.

kissing님의 댓글

작성자 kissing
작성일 03.31 15:28
시작이 나라 팔아먹은 놈들이라 그런지 지금 판검새 놈들의 근본이 저거였군요. 반세기 이상이 지나도 똑같네요.

말없는님의 댓글

작성자 말없는
작성일 03.31 15:37
친일파와 독재의 부역자들은 뿌리를 뽑았어야 합니다.

가시나무님의 댓글

작성자 가시나무
작성일 03.31 15:44
종일 세력죠. 조말 말기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 기생한 진류일본인의 핏줄 또는 정치경제공동체 주축이라 생각합니다.

레이디오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레이디오
작성일 04.01 02:30
동학운동이 일어난 배후엔 명성황후 민씨 일가의 횡포가 있었죠.. 참 지금이랑 비슷해요. 잘 못하면 건희 미화 시킬 수도 있어요. 이번엔 역사의 실수를 막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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