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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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FV4030

작성일
2025.04.1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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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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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 1 페이지
에스까르고님의 댓글
작성자
에스까르고

작성일
04.16 14:38
제 외할머니는 평생 큰 아들, 그러니까 제 큰 외삼촌을 마음에 품고 사셨습니다.
남편을 여의고 얼마 되지 않아 큰 아들, 다정다감하고 서울대 법대(요즘은 내란과라고 한답니다마는)에 다니다 입대했던 그 아들이 군에서 돌아오지 못할 줄은 모르셨겠지요.
광주 출신에 어머니 얘기를 들어보면 사찰, 감시당하고 있던 큰 외삼촌이 입대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공교롭게도 1980년 7월에 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어쨌든 외할머니는 항상 그 아들을 마음 한 켠에 품고 사셨지요.
가장 후회되는 건 그 아들의 졸업사진을 항상 책장에 두셨는데 제가 그 사진 볼 때마다 무서워했던 거지요.
흑백사진에, 내 기억에는 없는 외삼촌,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 탓에 그랬겠지만
그 말을 듣는 할머니 마음은 어떠셨을까, 자금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언젠가부터 그 사진은 치워졌고 기억에서도 잊혀졌지만
가끔 외할머니 생각하면 따라 드는 생각이에요.
남편을 여의고 얼마 되지 않아 큰 아들, 다정다감하고 서울대 법대(요즘은 내란과라고 한답니다마는)에 다니다 입대했던 그 아들이 군에서 돌아오지 못할 줄은 모르셨겠지요.
광주 출신에 어머니 얘기를 들어보면 사찰, 감시당하고 있던 큰 외삼촌이 입대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공교롭게도 1980년 7월에 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어쨌든 외할머니는 항상 그 아들을 마음 한 켠에 품고 사셨지요.
가장 후회되는 건 그 아들의 졸업사진을 항상 책장에 두셨는데 제가 그 사진 볼 때마다 무서워했던 거지요.
흑백사진에, 내 기억에는 없는 외삼촌,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 탓에 그랬겠지만
그 말을 듣는 할머니 마음은 어떠셨을까, 자금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언젠가부터 그 사진은 치워졌고 기억에서도 잊혀졌지만
가끔 외할머니 생각하면 따라 드는 생각이에요.
FV4030님의 댓글의 댓글
작성일
04.16 14:41
@에스까르고님에게 답글
저 아는 선배도 백일 휴가 나와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그것도 제 마음의 상처가 되어 있습니다. 후.... 어떻게 보면 학벌이 문제가 아닌거죠.
포크리스님의 댓글의 댓글
작성일
04.16 15:13
@에스까르고님에게 답글
ㅠㅠ 폭삭 속았수다에서도 먼저 보낸 자식은 평생 가슴속에 묻지요. 외할머님께서도 세월호부모님들께서도 얼마나 가슴이 아프실까요..
에스까르고님의 댓글의 댓글
작성일
04.16 15:19
@포크리스님에게 답글
꽤 오랫동안 외할머니께서는 매년 현충일에 현충원에 올라가셨습니다.
이제는 하늘에서 함께 계시겠지요.
제가 서울에 있던 시절에는 빼놓지 않고 갔었는데요.
코로나19 시절인 2020-2022년까지는 가지 못했지요.
지난해 5월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외삼촌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온 것이 아직도 마음에 걸립니다.
이제는 하늘에서 함께 계시겠지요.
제가 서울에 있던 시절에는 빼놓지 않고 갔었는데요.
코로나19 시절인 2020-2022년까지는 가지 못했지요.
지난해 5월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외삼촌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온 것이 아직도 마음에 걸립니다.
바탕골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