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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경상도의 구분은...

페이지 정보

작성자 FV4030
작성일 2025.04.29 17:55
702 조회
1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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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 PK의 구분이 아니라, 낙동강 기준으로 경상좌도와 경상우도의 구분이었죠. 이에 따라 학문적 라이벌 구도도 있었고, 정치적 라이벌 구도도 있었습니다.

- 남명 조식(경상 좌도) vs 퇴계 이황(경상 우도)

- 북인(경상 좌도) vs 남인(경상 우도)

하지만 경상 좌도의 경우 임진왜란 후 북인들이 대거 몰락하면서 그 명맥이 흔들려버렸지요. 경상우도야 오래 갈 수밖에 없었죠. 그 도산서원 등 유명 사액서원이 워낙 많아서 유림의 기세가 끝까지 남은 곳이었으니 말입니다. 영남만인소가 그 한 예시죠.

그런데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대구가 근대 지역 중심지가 되고, 유림의 힘이 빠지고 이런 와중에도 경상우도의 흐름은 TK로 어찌저찌 간 반면, 경상좌도의 명맥은 일부는 PK 쪽으로 옮겨갔지만, 현대까지 잘 이어지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주기철 목사라든지 조국 교수 집안에서 그 흔적이 좀 있는 거 같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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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 1 페이지

moho님의 댓글

작성자 moho
작성일 04.29 18:08
저... 저기... 조선시대에는 서울 기준으로 좌우를 나누기 때문에...
굳이 학파로 나눈다면
남명(우도) / 퇴계 (좌도) 로 구분을 해야 합니다.

FV4030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FV4030
작성일 04.29 18:10
@moho님에게 답글 아 맞다 저도 헷갈리네요. 으어... 경상좌수영이 부산이었고, 경상우수영이 거제였죠.

수정도 안 되고 말이죠 ㅠㅠ

miragefire님의 댓글

작성자 miragefire
작성일 04.29 18:08
역사적인 부분까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아는 한에서는 김영삼이 야당이었을 때에는 경남(특히 바닷가 쪽)과 부산은 야당 성향이 크게 묻어나던 곳이었습니다. 김영삼이 대통령 자리에 눈이 멀어 갑자기 군부독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김종필, 노태우와 합당을 하고나니 그 동안 김영삼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많은 수가 하루아침에 붕 떠버렸고(?) 지역감정에 영향을 받던 시절이라 소수는 김대중을 지지했지만 일부는 사람을 따라 여당 지지로 바뀌고 상당 부분의 지지층은 부동층으로 변해버렸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바닷가 특유의 야성은 점점 잊혀져 갔습니다.  그나마 내륙쪽(?) 보다는 경남, 부산쪽이 여전히 당선은 못시키더라도 야당을 지지하는 비율은 더 높기는 할 것 같습니다.(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FV4030님의 댓글의 댓글

대댓글 작성자 FV4030
작성일 04.29 18:12
@miragefire님에게 답글 바닷가의 야성도 있지만 개항장의 영향으로 새 문물의 유입이 큰 도움이 되었죠. 아무리 바다라도, 폐쇄적이면 썩기 마련인 거 같고... 바다보다 아파트를 더 사랑하니 이대로 가면 더 답이 안 나올 거 같습니다.

Erdenet23Tokki님의 댓글

작성자 no_profile Erdenet23Tokki
작성일 04.29 19:00
글을  잘 읽었습니다. 다만 몇 가지 덧붙이고자 합니다.
우선 경상좌도와 우도 및 경상북도와 남도의 변천을 단편적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임진왜란 이후부터 보겠습니다.
인조반정으로 경상우도 그 중에서도 현재의 서부 경남 지역을 근거로 했던 북인들이 중앙정계에서 몰락한 것은 맞습니다.

그렇다고 경상좌도, 특별히 지금의 경북 북부에 해당되는 지역이 주기반이었던 퇴계 학파, 즉 남인이 승승장구 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숙종 대의 몇차례 환국을 거치면서 남인들은 서인 계열에게 정치적 입지를 내주면서, 중앙정계에서 많이 밀려났습니다. 그리고 영조 대에 일어난 소론 강경파가 일으킨 이인좌의 난에 영남 지역도 휘말리면서 더욱 큰 화를 입습니다. 영남 지역에서도 이인좌에게 동조한 몇몇 남인 강경파가 조정의 관군에 끝까지 저항하는 바람에 영남 지역은 반역향으로 낙인찍히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대구에 "평영남비"라는 비석이 세워질 지경이었습니다.)     
 
이후로 중앙정계를 주도했던 것은 경화사족(서울에 근거한 양반 가문) 및 기호학파(경기/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한 학파, 서인 노론 계열이 많음)였습니다. 물론 정조 대에 남인들이 다시금 등용되기는 했지만,,, 이제는 그닥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세도정치 시기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이해할 때에 우리가 오늘날의 정치 지형에 대입해서 조선 왕조의 역사를 이해하면 안됩니다. 경상도가 다 이권을 독차지했다는 '경상도 패권주의'의 시선으로 조선 왕조 역사를 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는 뭐냐?" 이러실 수 있는데, 그 안동 김씨들은 경북 안동의 안동 김씨들이 아닙니다. 세도정치를 한 그 가문은 서울에 뿌리를 내린 신 안동김씨의 분파로서, 서울 종로의 장동에 살았다고 해서 장동김씨라 불리던 일족입니다. 

오히려 안동 지역의 많은 양반 가문들은 남인 계열이었던지라, 중앙 정계를 향한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물론 꾸준히 관직 진출은 합니다만, 기호지방 노론 중심의 분위기를 역전하진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향촌 사회를 기반으로 가문의 전통과 학문적 전통에 잇는 일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아이러니하게도 경북 북부 지역에 유독 강력한 유교적 전통 유산을 보존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은 훗날 경북 북부 출신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한 뿌리가 되기도 합니다.
(상해임시정부 국무령 이상룡, 저항시인 이육사, 영화 '암살'의 여주인공 '안옥윤'의 모티프가 되는 남자현, 영화 '밀정'의 남주인공 ‘김우진‘의 모티프가 되는 김시현, 파락호 김용환 등등) 

이처럼 영남권 학풍과 지역색은 생각보다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도 이해를 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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