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있음) 아마 다모앙 분들 중 극소수만 공감할 외국어 공부의 이점
코미

Lv.1 코미 (211.♡.64.83)

2025년 12월 15일 PM 12:25 · 수정됨(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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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외국어를 업무나 여행에 필요한 정도, 즉 유럽 공통 언어 기준으로 B1~B2 수준까지 익힌 경우에는 이 이야기가 크게 와닿지 않거나 “아,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외국어를 끝까지 파본 사람, 대략 C1~C2 수준까지 도달한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이해하실 겁니다.

외국어를 B1~B2 수준까지 배웠을 때까지만 해도 언어는 주로 ‘외국인과 소통하기 위한 도구’로 인식됩니다.
문법과 단어, 일상 대화는 충분히 가능하고 업무나 여행에서도 큰 불편은 없습니다.

그러나 C1 이상을 넘어서는 순간, 외국어는 단순한 통역이나 번역의 대상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와 집단의 정서, 사고방식, 문화적 전제를 직접 체감하고 이해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영어의 경우, B2 수준까지는 문법과 어휘, 회화 자체는 비교적 잘 되지만 한국어적 사고방식과 감성을 그대로 옮기는 경우가 많아서 아무리 발음이 좋고 말이 유창해도 원어민에게는 외국인 티가 납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종종 오해가 발생합니다.

영국인 교수가 “리포트는 작성했나?”라고 물었을 때 한국인은 흔히 “지금 자료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영국인 교수의 입장에서는 이 답변이 ‘리포트를 작성 중이다’가 아니라 ‘아직 안 했고, 설명이나 핑계를 늘어놓는다’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영어권에서는 “네, 리포트를 작성 중입니다(I’m working on the report).”처럼 주체와 행위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신뢰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영어는 주체, 사건, 책임, 주장을 분명히 드러내고 되도록 이를 문두에 제시한 뒤 근거를 설명하는 언어입니다.

그래서 한국식 완곡 표현, 주어 생략, 결론 미루기는 영어권에서는 오히려 신뢰를 해치는 요소가 됩니다.

이를 통해 영국과 미국 사회가 계약, 사실관계, 책임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지닌 사회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일본어를 보면 사역형, 수동형, 사역수동형, 그리고 복잡하게 발달한 경어 체계 속에서 일본의 역사와 사회질서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일본어에서는 능동형이 상황에 따라 상대에게 공격적이거나 오만하게 들릴 수 있기 때문에 보고나 의견 표명에서 의도적으로 회피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를 입었을 때는 수동형을 사용해 가해자를 명시하지 않고 피해 사실을 강조하고, 자기 의지와 다르게 일을 했을 때는 사역형을 사용해 ‘시키셔서 했다’는 구조를 만들며, 억지로 술을 마셨을 때는 사역수동형을 사용해 ‘(마시고 싶지 않지만) 마시게 되었다’는 식으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가해자나 상위자를 직접 지목하지 않음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언어적 전략이며, 봉건제가 오래 유지되고 무사 계급의 지배를 받았던 일본 사회의 역사적 경험과도 연결됩니다.

경어의 발달 역시 이러한 봉건적 질서와 신분 구조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오늘날에도 일본 사회가 수직적 위계질서에 민감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한국어에도 경어는 존재하지만 일본어의 경어가 비교적 고정된 사회적 위치를 반영한다면 한국어의 높임말은 정서적 거리와 관계 변화에 따라 유동적으로 사용됩니다.

또한 한국어는 주어 생략이 잦은데, 이는 화자와 청자가 같은 민족,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으며 지식·문화·정서를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다는 전제를 무의식적으로 깔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특성은 두레나 품앗이와 같은 상호부조 문화가 발달한 공동체 사회에서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섭섭하다, 미묘하다, 한, 눈치, 감, 정과 같은 정서·관계·평가 어휘가 다른 언어에 비해 풍부하게 발달했으며, 이는 한국 사회가 감정과 관계를 중시해 왔음을 잘 보여줍니다.

이 점에서 한국 사회가 상대적으로 수평성과 공동체성을 중시해 왔다면, 일본 사회는 질서와 위계를 더 중시해 왔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중국어의 경우에는 다민족·다인구 사회, 그리고 오랜 혼란과 상업의 역사 속에서 실용주의적이고 현실 적응적인 사고방식이 언어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중국어는 영어·한국어·일본어에 비해 시제가 단순하며 시간 정보는 필요할 때만 표시됩니다.

이는 시간의 흐름 자체보다 현재 상황과 실질적인 결과를 중시하는 사고와 맞닿아 있습니다.

또한 주어가 약화되거나 생략되는 경우가 많고, 화제를 먼저 제시하며 추상적인 논리 전개보다는 구체적인 사례, 비유, 일화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경어와 위계 표현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대신 맥락과 상황 판단을 통해 관계를 조정합니다.

이는 혼란스러운 역사 속에서 겉치레나 형식에 집착하기보다는 상황을 읽고 현실적으로 처신하는 능력이 생존과 직결되었던 사회적 경험의 반영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상황 판단과 처세를 중시하는 성향을 지닌 사회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외국어를 배우면서 그 언어의 어휘, 문법, 표현 습관을 깊이 파고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언어 집단의 사고방식과 사회 구조, 정서까지 간파하게 됩니다.

외국어 하나를 제대로 익힌다는 것은 세계를 하나 더 갖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통역이나 번역은 대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와 공감을 위한 외국어 학습 자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약 : 외국어를 유럽언어기준 C1~C2 수준까지 익히면,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 그 언어를 쓰는 사회의 역사와 정서, 사고방식까지 함께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씨, 실수로 삭제 눌러 추하게 제업합니다. 

댓글 (14)

  • 흐린기억

    흐린기억 Lv.1

    25.12.15 · 211.♡.200.67

    예전에 미국인 영어 회화 선생님이 중국애들은 시제 구분없이 막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시던데 이게 중국어 자체하고도 연관이 있는 경우군요. 덕분에 오래된 궁금증이 해결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코미

    코미 Lv.1 → 흐린기억 작성자

    25.12.15 · 211.♡.64.83

    네, 맞습니다. 단순히 개인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어 자체가 시제보다 상황과 맥락을 중심으로 표현하는 언어라 그런 경향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 배경을 알고 나면 영어에서의 시제 사용 방식도 훨씬 이해가 잘 되죠. 오래된 궁금증이 풀리셨다니 기쁘네요.
  • 왁스천사

    왁스천사 Lv.1

    25.12.15 · 125.♡.210.135

    좋은 내용이네요. 사실 언어는 관문이고 문화와 배경 지식을 충분히 이해해야 외국인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때가 있죠.

    저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이슬람 문화권과 일을 하다 보니, 다들 이상하게 하기 싫을 때 " can't" 로 많이 표현한다는 느낌을 받아서 같이 오래 일한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종교적인 이유로,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걸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알려 주더군요.
  • 코미

    코미 Lv.1 → 왁스천사 작성자

    25.12.15 · 211.♡.64.83

    맞는 말씀입니다. 언어는 관문일 뿐이고, 그 뒤에 있는 종교와 문화 및 사고방식을 알아야 왜 그런 표현을 쓰는지 이해가 되죠.
    말씀하신 이슬람 문화권에서 하기 싫을 때도 “can’t”로 표현하는 것도, 의지의 문제를 직접 드러내기보다 신의 뜻이나 상황의 한계로 돌리는 문화적 배경을 알면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이런 맥락을 파악하고 이해한다면 그 문화와 언어에 대해서는 전문가라 볼 수 있죠.
  • 깨몽

    깨몽 Lv.1

    25.12.15 · 112.♡.219.24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마침 요즘 제가 관심가지고 있는 언어 사이의 정서 차이에 대해 잘 정리를 해 주셨네요.
    얼마전 일본어의 '수수동사'(계급적 위계에 따라 주고 받는 표현을 달리함. 우리말에도 아주 약간 남아 있음)라는 걸 알고는 일본 사람들이 정말로 여전히 힘들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이지 언어를 보다보면 그 문화권의 속성과 역사를 알 수 있고 또 그 속성과 역사를 알지 못하면 언어가 참 생뚱맞아 보인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 같습니다.
  • 코미

    코미 Lv.1 → 깨몽 작성자

    25.12.15 · 104.♡.68.24

    맞아요. '주다(あげる, くれる)'와 '받다(もらう)' 같은 표현에 경어까지 합쳐진 버리에이션을 봐도 일본어의 표현을 넘어 일본 사회의 위계와 역사, 삶의 방식이 그대로 보이죠.
    그래서 문화와 배경을 모르면 언어가 낯설게 보이고, 반대로 언어를 들여다보면 그 사회가 보인다는 말이 참 맞는 것 같습니다.
  • 치미추리

    치미추리 Lv.1

    25.12.15 · 106.♡.1.109

    아직 그정도 수준은 못되나 봅니다. ㅠ
  • 코미

    코미 Lv.1 → 치미추리 작성자

    25.12.15 · 104.♡.68.24

    사실 B2(영어로 치면 수능 1등급 수준) 수준만 되도 그 언어로 발목 잡힐 일 없고 C1 이상은 취미나 전문가 영역이니까요..
  • 치미추리

    치미추리 Lv.1 → 코미

    25.12.15 · 106.♡.1.109

    객관적으로는 영어 C1 점수를 갖고 있지만, 여전히 언어에 그 문화를 녹여내는 수준까진 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글을 보고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지네요. 감사드립니다. ㅎㅎ
  • 꿈꾸는식물

    꿈꾸는식물 Lv.1

    25.12.15 · 106.♡.203.22

    이 글을 우리 직은딸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아주 핵심적인 글이네요.
    [https://s3.damoang.net/data/editor/2512/7be7b3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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