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hingTrue (210.♡.222.10)
2026년 6월 5일 PM 05:33
선거가 끝나고, 헛헛한 마음에 끄적여 본 글을 옮겨봅니다.
1988년
대학생 형을 둔 친구가 어느 날 들고 온 흑백 사진집 한 권.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흑백 속에서도 선명했던 핏빛 광주의 아픔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거의 일주일 동안 제대로 밥을 넘기지 못하고 구토와 어지럼증에 시달렸을 정도니까요.
강원도 촌구석에서 어른들의 "김대중은 빨갱이"라는 말을 당연하게 듣고 자랐던 제게, 친구 형이 들려준 광주의 진실은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처음으로 심어준 사건이었습니다.
대학 시절과 IMF
문화적, 경제적 풍요 속에서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대학 시절이었습니다. 잠시 기웃거렸던 운동권 모임이나 매년 봄이면 연례행사처럼 열리던 등록금 투쟁보다는, 잔디밭에서 마시는 막걸리 한 잔과 따스한 햇살 아래 즐기는 낮잠이 훨씬 소중했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곧 IMF가 터졌습니다. 그 시절의 20대들이 으레 그랬듯, 제게도 한없이 팍팍하고 어려운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이후 군대에서 처음 치른 대통령 선거. 당시 제 선택은 일종의 사춘기적 반항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주입했던 "김대중은 빨갱이"라는 맹신에 대한 반발이었고, 결국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었습니다. 복학 후 마주한 현실은 여전히 냉혹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졸업과 취업, 그리고 노무현
IMF의 굴레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적응하기 시작한 회사 생활. 고향 집에 갈 때면 여전히 "빨갱이" 타령을 하시는 어르신들과 말을 섞기 싫어 점차 발길을 끊게 되던 무렵이었습니다.
그리고 월드컵과 노무현으로 기억되는 2002년. 제게 정치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동지의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아, 정치인이 저럴 수도 있구나, 정치인의 말이 아닌, 대중의 말을 하는 정치인이 있긴 하는구나.'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그의 동지가 되어 연설을 찾아 듣고, 그가 전하고자 하는 가치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이때가 실질적인 출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고관여층이나 강성 지지자라기보다는, 그저 TV 속에 나오는 좋아하는 '누군가'를 열렬히 응원하는 시민에 가까웠습니다.
2009년 5월 23일
네, 바로 그날입니다. TV 속의 '누군가'가 비로소 나의 아버지가 되고, 나의 할아버지가 되고, 나의 가족이 된 날.
세상이 온통 노랗게 물들고, 며칠 동안 종일 눈에 초점조차 맞추지 못한 채 멍하니 흘려보냈던 그 시간들. 저는 그날을 기점으로 정치 고관여층이자 강성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이후는 2009년 5월 23일 이후의 대다수의 민주당 지지자들과 비슷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최근의 지방선거와 보궐선거 과정과 결과에 더욱 화가 납니다.
대부분의 민주당 지지자들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일종의 부채의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끝내 지켜주지 못했다는 뼈아픈 부채의식. 그 마음이 지금껏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지켜왔고, 지금의 이재명 대통령을 지켜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우리에게 보여준 메시지는 "그래서 어쩔 건데?, 그래서 국힘 뽑을거야?"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은 가치와 사람을 지킬 생각이 없구나. 이들이 지키려고 하는 건 오직 자기 자신의 이익뿐이구나."
어쩌면 그동안 늘 그래왔는지도, 모르겠네요. 다만 흐린눈으로 보고 있었던 건지도. 앞으로는 더욱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볼 것입니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대조하고, 내뱉은 말과 실제 행동이 일치하는지 면밀히 살필 것입니다. "민주당"이라는 깃발이 아니라, 진짜 "민주당스러움"이라는 가치 그 자체에 더욱 집중할 것입니다.
계속 "민주당원"으로 있을 겁니다.
매달 몇천원의 당비를 꼬박꼬박 내면서, 때론 떠들어대면서, 필요한 순간 나의 한표를 행사하는,
저들이 그렇게 뭐라 하는 고관여 강성지지자가 되어서...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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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tarLeo
06.05 · 210.♡.4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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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NothingTrue
→ StarLeo 작성자
06.05 · 210.♡.222.10
글쵸...민주당은 고쳐쓰는 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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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레베카미니
06.05 · 221.♡.25.227
정치고관여층이라고 불리는 저도 이번 지선은 신나서 투표하러 가질 못했습니다
정청래 당대표 연임 성공하면 좀 치유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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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NothingTrue
→ 레베카미니 작성자
06.05 · 210.♡.222.10
역대 투표중에서 가장 투표하기 싫었던 투표였어요.
- 비
비오는날
06.05 · 1.♡.229.179
정치만큼 중요한 게 없는데 그넘이 그넘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거 넘 싫어요. 이 투표권 하나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는데... 저두 늘 정치고관여층이 되어있을꺼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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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NothingTrue
→ 비오는날 작성자
06.05 · 49.♡.223.207
저 한장의 투표권을 얻기 위해 흘린 피를 알면 그무게를 알겠지만,
그러지 못한 이가 너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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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이 지나도 유효합니다. 고쳐쓸수 있도록 해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