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시민강좌, '민주주의가 문학에 던진 질문' 후기 2
아기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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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7일 PM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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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다녀온 시민강좌 '민주주의가 문학에 던진 질문'의 후기를 작성하고 있는데요. 1편은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https://damoang.net/free/6729576

3부 1970~80년대 민중시 - 한 시대, 여러 목소리 - 풍자, 서정, 투쟁, 노동의 시

민중시의 출발점으로 1960년대가 남긴 두 유산인 김수영, 신동엽 시인을 소개하셨습니다.

김수영은 급진적 시민 민주주의자로 이루어질 수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꿈을 노래한 시인이라 평하셨습니다.

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혁명은 고독한 것으로 표현한 시인데요, 내가 스스로 혁명적으로 바뀌어야하고, 내가 먼저 투철한 시민이어야한다는 개인주의적인 관념, 서구민주주의가 획득한, 시민이 주체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입니다.

반면 신동엽 시인의 시는 다릅니다.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醮禮廳)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이 시에는 개인은 없고 민족만 있습니다. 민족적 정수만 존재하는데 '근대 이후 침략 받고 억압 받은 민족적 정수가 훼손 됐다, 알맹이가 침해당했다.'는 메시지로, 뿌리뽑힘, 고향 상실의 정서가 들어있는 민중민주주의 시인이라고 평하셨습니다.

1970년대 민중시의 중심으로 두 시를 소개하셨습니다.

김지하의 담시 '오적'은 민중주의적으로 지배계급을 풍자하였는데,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을사오적에 빗댄 정치 풍자로 판소리 가락을 빌린 독창적 형식의 시입니다.

오적(일부)

김지하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죽

남북간에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 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 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뻔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狾䋢), 국회의원(匊獪狋猿), 고급공무원(跍礏功無獂), 장성(長猩), 장차관(瞕搓矔)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 소굴이렷다.

어제 설명을 듣진 못 했지만, 오적을 나타내는 한자가 왜 저런가 했더니, 일부러 바꿔쓴 거라고 하네요.

김지하는 대한제국에서 을사늑약 체결에 찬성했던 ‘을사오적’(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의 다섯 사람)을 빗대어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다섯 명의 도둑’으로 풍자하여 담시 ‘오적’을 썼다.

김지하는 오적을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의도적으로 ‘개견(犬)’을 변(犭)으로 하여 ‘개’를 연상하게 하고 또 ‘원숭이(오랑우탄)’를 뜻하는 단어를 만들어(조어(造語)) 사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재벌의 재(財)는 미친개 제(狾), 국회의원의 회(會)는 간교할(교활할) 회(獪), 의(義)는 개 으르렁거릴 의(狋), 원(員)은 원숭이 원(猿), 고급공무원의 원(員)은 돼지 원(獂), 장성의 성(星)은 성성이(오랑우탄) 성(猩), 차관의 차(次)는 개미칠 차(犭差)를 차용하는 식이다(송영순, 2007)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 https://www.min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82

위의 기사에서 '오적'이 실린 사상계(1970.05) 본문에 실린 그림 뿐만 아니라 이 시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길

김지하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 길

몸 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 길

몸 팔러 간다

이 시는 죽지 못해 끌려가는 정서, 비통하고 비극적인 정서를 그린 시입니다.

민중은 순결하고 착하고 가난하고 올바른데 착취하고 억압하는 지배계급으로부터 벗어나길 꿈꾸는 정서가 70년대 정서라고 하셨습니다.

​유신체제에 맞선 저항시로 양성우의 '겨울공화국'도 소개하셨는데 여기 옮기려니 시가 너무 길군요...;;

그래서 일부만 짧게 가져옵니다.

겨울공화국(일부)

양성우

날마다 우리들은 모른 체하고

다소곳이 거짓말에 귀기울이며

뼈가르는 채찍질을 견뎌내야 하는

노예다 머슴이다 허수아비다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잠든 아기의 베개맡에서

결코 우리는 부끄러울 뿐

한 마디도 떳떳하게 말할 수 없네

물려 줄 것은 부끄러움 뿐

잠든 아기의 베개맡에서

우리들은 또 무엇을 변명해야 하는가

조태일의 '국토'(1975)는 국토와 민중을 노래한 시로 '국토'는 고통 받는 민중의 삶, 억압 받는 역사를 상징합니다.

정호승은 서정적 민중시를, 김명인·김창환 등이 참여한 반시(反詩) 동인은 저항과 풍자를 중심으로 한 실험적인 시를 선보이며, 민중시는 저항·서정·풍자·실험 등 다양한 갈래로 확산되었습니다.

신경림의 '농무'도 소개하셨는데요. 제1회 만해문학상(1974)을 수상한 작품으로 농민적 전통에 뿌리내린 민중미학, 김지하와는 결이 다른 공동체적, 낙관적 민중정서를 표현하였고, 70년대 김지하적인 경향과 신경림적인 경향으로 크게 두 부류로 시가 나뉘었다고 하셨습니다.

광주 민주화항쟁 이후 80년대의 시로 전투적 지식인의 시, 시가 곧 무기였던 자리라며 김남주 시인을 소개하셨습니다.

좋은 시절은 오질 않고 군부독재가 다시 계속되어 허탈하고 박탈감과 억울함을 느껴 죽기 살기로 싸워야하고, 적들을 물리치지 않으면 내 삶이 의미가 없다는 정서가 80년대를 지배했고, 성숙함, 온건함, 무게 있는 정서는 없고 분노의 정점에 김남주 시인이 있었습니다.

관장님께서 개인적으로도 잘 아시는 분이셨는데 원래 성격은 순둥순둥하시지만 시는 서슬퍼런 내용이 많았고, 남민전 사건 때는 최원석 회장 집에서 강도짓까지 하셨다고, 관장님도 곱고 여린 학생이셨지만 이런 분들마저 혁명투사가 되던 시대에 분노, 개탄, 탄식, 슬픔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고, 가장 뜨거웠던 시대였다고 회고하셨습니다.

'종과 주인'이라는 시에서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고 무시하고 멸시하던 주인을 낫으로 죽인 극단적인 스토리가 있었고, '나의 칼 나의 피'(1987)에서는 죽음 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줬습니다. '진혼가'(1984) 역시 옥중에서 펴낸 시집이라는데 구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박노해, 백무산은 노동자 자신의 목소리를 낸 시인인데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1984), 백무산의 '만국의 노동자여'(1988)을 소개하셨습니다.

박노해의 '대결'은 계급 대립을 노래한 시고, 백무산의 '만국의 노동자여'에는 격렬했던 시대정신이 담겨있으며 노동자 자신이 노동 현장의 언어로 목소리를 냈습니다.

80년대 3저 호황으로 경제는 발전했지만 문화적 분위기는 강렬한 분노, 허탈감, 너 죽고 나 죽자, 망한 세상 분위기였다고 하셨어요.

음... 지금과는 환경이 좀 다르지만 '강렬한 분노, 허탈감'은 2026년에도 계속되는군요. ㅠㅠ

정리하자면 여러 갈래의 민중시가 1970~80년대에 있었고

김지하의 풍자, 신경림의 농민 서정, 김남주의 전투적 지식인 시, 박노해, 백무산의 노동시가 있었고, 그 외 고은, 김용택, 이산하, 도종환, 이시영 등이 민중시의 폭을 넓혔습니다.

시 몇 편을 더 소개하셨는데요.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황동규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다른 새떼 지저귀던 앞뒷숲이

보이고 안 보인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 노점에 쌓여 있는 귤,

옹기점에 엎어져 있는 항아리, 둥그렇게 누워 있는 사람들,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바퀴는 구르는 것이 본질이고 자연스러운 것인데, 독재와 억압이 못 구르게 하고 있고, 그런 세상에 대한 저항을 나타낸 시입니다.

고통의 축제, 편지

정현종

계절이 바뀌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생(生)의 기미(機微)를 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말이 기미지, 그게 얼마나 큰 것입니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만나면 나는 당신에게 색(色)쓰겠습니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시(空是).

색공지간(色空之間) 우리 인생. 말이 색이고 말이 공이지 그것의 실물감(實物感)은 얼마나 기막힌 것입니까.

당신에게 색(色)쓰겠습니다. 당신에게 공(空)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편지란 우리의 감정결사(感情結社)입니다. 비밀통로입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식자(識者)처럼 생긴 불덩어리 공중에 타오르고 있다.

시민처럼 생긴 눈물 덩어리 공중에 타오르고 있다.

불덩어리 눈물에 젖고 눈물덩어리 불타

불과눈물은 서로 스며서 우리나라 사람 모양의 피가 되어

캄캄한 밤 공중에 솟아 오른다.

한 시대는 가고 또 한 시대다 오도다, 라는

코러스가 이따금 침묵을 감싸고 있을 뿐이다.

나는 감금(監禁)된 말로 편지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감금된 말은 그 말이 지시하는 현상이 감금되어 있음을 의미하지만, 그러나 나는 감금될 수 없는 말로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영원히. 나는 축제주의자(祝祭主義者)입니다. 그 중에 고통의 축제가 가장 찬란합니다. 합창 소리 들립니다. <우리는 행복하다>(까뮈)고. 생(生)의 기미를 아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안녕.

아, 이 시는 너무 어려운데요. ㅠㅠ 타이핑을 직접 하고 여러 번 읽어봐도 잘 와닿지가 않아요.;;

정현종 시인은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라는 짧은 시, '섬' 으로 유명하시다는데 '고통의 축제, 편지'는 암튼 어렵습니다.

제목에서부터 뭔가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 말고는 통 모르겠습니다. 잠깐 딴 생각이라도 했는지 이 시에 대한 메모는 없네요.;;

황동규, 정현종 두 분은 대학교수, 중산층이었지만 독재로 인해 답답한 정서를 표현했다는 설명만 기억 납니다.

몇 편 더 가져오겠습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80년대에 영화관에 가면 애국가가 나왔는데 그럼 자리에서 다 같이 일어나야했고, 화면에서는 을숙도 새들이 날아가는 장면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 장면을 보며 날아가고 싶어도 현실은 날아갈 수 없고 애국가가 끝나면 자리에 앉아야했던 모습이 시에 담겼다고 합니다.

태극기 하강식 때 일제히 경례를 하던 전체주의 사회의 특징을 영화관에서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하네요.

그날

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역전(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미수금未收金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愛人과 함게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 점占 치는 노인과 변통便桶 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市內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것은 속으로 썩어있다는 의미이고, 세상은 건강한 노래만 들으라 하고 고래 사냥 같은 노래는 금지시키고, 모든 게 금지 사회를 뜻한다고 합니다.

올 여름의 인생 공부

최승자

모두가 바캉스를 떠난 파리에서

나는 묘비처럼 외로웠다.

고양이 한 마리가 발이 푹푹 빠지는 나의

습한 낮잠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사라졌다.

시간이 똑똑 수돗물 새는 소리로

내 잠 속에 떨어져 내렸다.

그러고서 흘러가지 않았다.

엘튼 존은 자신의 예술성이 한물갔음을 입증했고

돈 맥글린은 아예 뽕짝으로 나섰다.

송X식은 더욱 원숙해졌지만

자칫하면 서XX처럼 될지도 몰랐고

그건 이제 썩을 일밖에 남지 않은 무르익은 참외라는 뜻일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감추는 법 건너뛰는 법 부정하는 법.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손가락으로 후벼 팔 것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아이처럼 웃을 것.

정체, 고여있는 것은 썩는다는 뜻으로, 독재정권 물러가라는 것보다 더 근원적인 저항정신, 정신적 레지스탕스를 보여준 것이라고 합니다.

시 소개는 여기까지이고 다음 편에서 1970~80년대 민중소설에 대한 후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아마도 내일 밤이나 모레가 될텐데, 내일도 모레도 각각 다른 주제의 강연을 들을 거라서 후기가 계속 밀릴 것 같습니다.;;;)

벌써 자정이 다 되었는데 모두 앙녕히 주무세요.

댓글 (3)

  • 7번교각

    7번교각 Lv.1

    00:10 · 59.♡.32.196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ㅜㅜ

  • 아기고양이

    아기고양이 Lv.1 → 7번교각 작성자

    00:37 · 14.♡.156.50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시대를 버티고 수 많은 희생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은 또 다른 병이 들어가는 것 같네요.

    저 시절의 시가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더 막막하고 답답해지기도 하는 느낌입니다. 일년전 이맘때였다면 전혀 그렇지 않았을텐데요.

  • 7번교각

    7번교각 Lv.1 → 아기고양이

    00:50 · 59.♡.32.196

    그래도 희망을 가지자구요ㅎ

    때로 시 한 편이 희망을 주기도 하죠^^

    절반의 희망으로

    7번 교각

    언제나 아침은

    절반의 희망

    많이 아팠을 때

    힘겹게 깨어나 몸을 둘러보면

    잠들기 전의 희망은 곧 절망이 되곤 했지만

    그러나

    그 절반의 희망들이 저수지의 물처럼 쌓이고 고여

    부평초도 갈대도 살려 내었듯이,

    이제 나는 걷고 뛰고

    산 위에 올라 일출도 보며 이렇게

    친구여, 너의 절망을 나는 이해하네

    보고 싶잖은 것들

    세상에 있지 말아야 할 것들의 축제를

    매일 아침 보아야만 하는 네 절망을 나는 이해하네

    그러나 친구여,

    우리 함께 울었던 그 밤들을 떠올리면

    새벽조차 올 것 같지 않던 그날들을 떠올리면

    이제는 아침에 태양, 저 햇살

    비록 아직 찬란하지 못할지라도

    아직 아주 뜨거웁지 못할지라도

    고개 들어 바라볼 하늘만은 있지 않은가

    친구여,

    그 어느날 저 태양이 찬란하고 뜨겁게 타오른다 해도

    세상에 있지 않아야 할 모든 것들을 불사르지는 못할  터이니

    절반의 희망으로 서는 법을 배우고

    남은 삶의 절반은

    너와 나의 술잔으로 채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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