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과 후단협 (ChatGPT 정리)
공돌스

Lv.1 공돌스 (49.♡.67.3)

2026년 7월 25일 PM 12:02

조회 453 공감 0

김민새라고 불리는 김민석의 과거중 후단협과 연관지어 GPT가 정리한 내용입니다.

왜 김민석에 비호감이 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김민석과 후단협을 이해하려면 2002년 한 해를 시간순으로 보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중요한 점은 김민석의 탈당과 정몽준 지지는 후단협 사태와 같은 흐름에 있었지만, 김민석 본인은 "후단협 소속은 아니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는 점입니다.


① 2002년 초: 김민석은 민주당의 차세대 주자였다

당시 김민석은 30대 후반의 재선 의원으로, 김대중 정부의 대표적인 젊은 정치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2002년 4월에는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승리하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상대는 한나라당의 이명박이었습니다.

당시 민주당 내부에서는

  • 노무현 : 대통령 후보

  • 김민석 : 서울시장 후보

라는 구도가 만들어졌고, 두 사람은 함께 선거운동도 했습니다.


② 2002년 6월: 지방선거 패배

6월 지방선거에서

  • 김민석은 이명박에게 패배

  • 민주당도 전국적으로 크게 패배

했습니다.

이후 민주당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커졌습니다.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 이회창(한나라당)

  • 정몽준(무소속)

  • 노무현(민주당)

순으로 지지율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3위권까지 밀리는 조사도 있었고, 민주당 내에서는 "이대로 가면 대선에서 진다"는 분위기가 확산됐습니다.


③ 여름~가을: 후단협 등장

이때 민주당 의원 일부가 만든 것이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입니다.

이들의 논리는 단순했습니다.

"노무현으로는 어렵다.
정몽준과 단일화를 해야 한다."

처음에는

  • 단일화를 촉구

수준이었지만,

점점

  • 노무현 후보 사퇴론

  • 후보 재선출론

까지 나오게 됩니다.

노무현 캠프에서는 이를

"당이 공식 후보를 흔드는 행위"

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④ 김민석의 선택 (2002년 10월)

가장 큰 사건입니다.

2002년 10월 17일, 김민석은 민주당을 탈당합니다.

그리고

정몽준의 국민통합21에 합류합니다.

김민석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 정몽준 중심의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노무현 후보를 중심으로 선거를 치르자는 입장이 아니라,

정몽준이 중심이 되는 단일화가 현실적이라고 본 것입니다.


⑤ 왜 후단협과 함께 묶이는가?

흥미로운 점은

김민석은 후단협의 공식 명단에 있었던 인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점이 거의 같습니다.

후단협 의원들은

  • 집단 탈당

  • 국민통합21과 연대 추진

을 시작했고,

김민석도

  • 민주당 탈당

  • 국민통합21 합류

를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는

"후단협 세력"

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김민석은 최근에도

"후단협 소속은 아니었다."

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⑥ 반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11월이 되자 상황이 바뀝니다.

노무현과 정몽준은 국민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후보를 뽑기로 합의했습니다.

결과는

노무현 승리

였습니다.

즉,

정몽준이 아니라

노무현이 단일후보가 됩니다.

이 시점부터 후단협의 정치적 명분은 크게 약해집니다.


⑦ 선거 직전의 또 다른 반전

대선 전날 밤,

정몽준은

노무현 지지 철회

를 선언합니다.

당시 민주당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은 다음 날 대선에서 승리합니다.

이 사건 이후 민주당 지지층은

"당을 끝까지 지킨 사람"

"중간에 떠난 사람"

을 강하게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⑧ 김민석에게 남은 정치적 이미지

이 사건은 김민석 정치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민주당 친노 진영에서는

"노무현이 가장 어려울 때 떠난 사람"

이라는 기억이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반면 김민석은

  • 정권 재창출을 위한 현실적 판단이었다.

  • 결과적으로 판단이 틀렸다는 점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사과했다.

  • 하지만 후단협의 정식 구성원은 아니었다.

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건 중심 연표

시기

사건

김민석의 위치

2002년 4월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선출

노무현과 같은 민주당 진영

2002년 6월

지방선거 패배

이명박에게 패배

2002년 여름

노무현 지지율 하락

민주당 내 위기감 확대

2002년 가을

후단협 결성

김민석은 공식 회원은 아니라고 주장

2002년 10월 17일

민주당 탈당

정몽준 국민통합21 합류

2002년 11월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노무현가 단일후보 선출

2002년 12월

대선

노무현 당선

핵심적으로 기억할 점은, 후단협은 '노무현 후보를 교체하거나 정몽준 중심의 단일화를 추진한 당내 조직'이었고, 김민석은 공식 후단협 소속 여부와는 별개로 같은 시기에 탈당해 정몽준 진영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후단협 사태와 함께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댓글 (6)

  • 공돌스

    공돌스 Lv.1 작성자

    12:04 · 49.♡.67.3

    후단협 과정에서도 (후단협 명단에 올리려다) 간을 보다가 탈당한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 앙뤼777

    앙뤼777 Lv.1

    12:23 · 211.♡.193.150

    "새"가 딱 어울리죠... 요즘 얼굴만 나와도 보기 힘듭니다.

  • 놀아보자9 Lv.1

    12:58 · 211.♡.148.172

    김민석이 김대중 대통령 정권 재창출로 성공이라고 하는데 그게 사실은 노무현 대통령 개인 업적이에요.

    2002년 김민석이 서울시장 진 것부터 당시 민주당은 인기없었어요..

    저걸 가지고 정권 재창출이 성공이라는 것은 저 인간 특유의 거짓말이죠.

  • Holywater

    Holywater Lv.1

    13:04 · 58.♡.123.35

    다시는 정치를 하지 못하게 했어야 했는데... 그때만 생각하면 울분이 뻗쳐옵니다.

  • SevenSign

    SevenSign Lv.1

    13:05 · 116.♡.45.100

    철새 박쥐도 아니고 그래서 김민새 김민새 하는거였군요 ㅎㅎ

  • 그대로멈춰라 Lv.1

    14:20 · 14.♡.37.253

    그냥 새입니다. 철새…

    20년 잠잠하길래 달라졌나? 했는대 역시 사람은 바뀌는거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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