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칠이 (211.♡.125.32)
2026년 7월 27일 PM 11:16
1980년 서울의 봄.
전두환의 광주학살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쯤-
서울대 관악캠퍼스에 학생회관에 연락이 갑니다
-밤 9시가 지나 학생회 사무실로 여러 곳에서 주로 기자라고 하면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밤 군이 출동한다는 긴박한 정보였다.”-
모두 그 소식을 듣고 피신했지만
78학번 유시민옹은 (당시 22세) 피신하지 않고
혼자서 학생회관을 지켰습니다.
유시민옹의 그 결기는 2026년에도 여전한것 같습니다.
이재명 정권에서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것도 용기가 필요할텐데 유시민옹은 좌고우면 하지않고 민주시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시원하게 옳은 소리를 해주시니까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있습니다.(한홍구님은 유시민의 대학 동기)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열린우리당의 386 형님들에게 ‘친구 유시민’을 말하다
종이 신문은 외면했지만, 지난주 내내 인터넷에서는 유시민 의원이 스타가 되었다. 요즘은 둘 다 바빠서 통 볼 수 없는 처지지만, 그와 나는 대학 동기다. 유시민군이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그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다. 386 의원들이 벌떼처럼 그의 말투와 ‘싸가지’ 없음을 비난해도 이 기억이 있는 한 나는 386 의원들의 비판을 수긍하지는 못할 것이다. 유시민이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에서 “잊을 수 없는 그 봄”이라 단 한 줄로만 표현했던 1980년 5월의 일이었다.
벌써 25년 전의 일이라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광주 학살이 벌어지기 1주일 전쯤인 5월11일이나 12일이었을 것이다. 이른바 ‘서울의 봄’ 당시의 복잡했던 정세를 여기서 설명하려면 너무 복잡해지니 간단히 넘어가기로 하자. 당시 서울대에서는 학생들이 거리로 나가기에 앞서 학내에서 농성 중이었다.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주기를 고대하고 있던- 그래야 ‘혼란’이 조성되고 군이 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 생각했기에- 군부에서는 학생들을 자극하기 위해 여러 가지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공작을 벌이기도 했다. 계엄군(10·26 사건 당시 선포된 계엄령은 당시에도 살아 있었다)이 먼저 학교로 쳐들어와 학생들을 잡아갈 거라는 흉흉한 소문도 많이 돌았다.
그날 서울대에서는 300∼400명의 학생들이 철야 농성을 하면서 학교를 지키고 있었는데, 밤 9시가 지나 학생회 사무실로 여러 곳에서 주로 기자라고 하면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밤 군이 출동한다는 긴박한 정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보안사의 역정보였던 것 같다. 나는 그날 무슨 일 때문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학생회 주변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다가 유시민군을 만났다. 그는 당시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으로 그날 당번이 되어 농성을 이끌던 중이었다. 그날따라 복학생 선배들도 4학년 선배들도 보이지 않았는지, 그는 군이 쳐들어온다는데 농성 중인 학생들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의견을 물어왔다. 군이 쳐들어온다는 게 확실한 정보라면 1·2학년이 대부분인 농성 학생들을 빨리 해산시켜야지 별수 있겠는가? 힘든 결정이야 그의 몫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답했던 것 같다. 아무튼 유시민군은 해산 결정을 내렸고, 우리는 학교를 빠져나왔다.
그런데 그날 밤 늑대는 오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유시민군과 나는 다음날 아침 7시 조금 넘어 몇몇 친구, 선배들과 함께 학교에서 만났다. 민망하고 쪽팔려 그저 얼굴만 쳐다보며 웃기만 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날 아침 강의실마다 돌아다니며 양떼를 쫓아버린 전날 밤의 소동에 대해 사과와 해명을 하느라 혼이 났다. 그리고 5월14, 15일 가두시위에 이어 유명한 서울역 회군이 있었고, 운명의 5월17일이 왔다. 그날도 나는 무슨 일인지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대낮에는 이화여대에서 각 대학 총학생회장들의 회의가 경찰의 습격을 당해 참석자 대부분이 연행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학교로는 시시각각 군부대의 이동에 관한 제보가 빗발쳤다. 각 언론사 출입기자들도 오늘 밤 상황 발생이 100% 확실하다고 했다.
밤 10시가 다 되어 학교를 나오다가 유시민군을 만났다. 빨리 나가자는 말에 뜻밖에 그는 자기는 학교에 남겠다고 했다. 어떻게 군인들에게 텅 빈 학교를 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일단 피해야지 무슨 얘기냐는 내 말에 유시민군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본의 아니게 양치기 소년이 됐던 그날, 학생회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던 나는 그저 민망한 일로 여겼던 반면, 대의원회 의장인 그는 군인들이 의기양양하게 텅 빈 학교에 주둔하는 광경을 그렸던 것이다. 망해가는 나라에서 황현과 같은 선비가 목숨을 끊은들 그게 대세에 무슨 영향이 있겠냐마는, 황현처럼 목숨을 끊는 선비 하나 없었다면 조선의 망국이 얼마나 더 참담했을까? 유시민군을 남겨두고 통금이 다 되어 집에 들어와 텔레비전을 켜니 긴급 뉴스로 비상계엄 전국 확대의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그 뒤로 나는 현실에서건 역사에서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일을 보게 될 때면, 광주 학살의 전야에 그 넓은 관악캠퍼스의 불 꺼진 학생회관에 홀로 남은 유시민을 떠올렸다. 스물두살 어린 나이의 그는 다가오는 카타필라의 굉음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중략
아래 링크에 들어가시면 더 자세한 이야기를 읽으실수 있습니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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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슬리아
07.27 · 220.♡.2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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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돌아온칠이
→ 시슬리아 작성자
07.27 · 211.♡.125.32
그것도 찾아봐야겠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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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슬리아
→ 돌아온칠이
00:12 · 220.♡.25.200
다 읽어보았습니다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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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뇌공앙
01:53 · 125.♡.61.188
그 넓은 캠퍼스에서
한밤 중에 홀로 있을 때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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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작가님이 유희열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나와서 직접 하신 말씀이 담긴 영상 1,2편에 나눠져있는데 몇번 봤는지 모르겠어요 생각나면 봐서요 ㅋ
제정원신부 이야기하는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고, 그 뒤로 두려움을 없애고 싶어 찾아갓던 제정구신부님의 말씀... 김문수 같은 인간들(김문수라고 찝진 않았던 거 같기두요)...
정말 정말 귀한 영상이죠.
한홍구교수님의 시각으로 본 유작가님도 좋을 거 같네요.
감사합니당